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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4. 22:55
당신이 감동할 때는 언제인가?

나를 눈물짓게 하는 첫 번째 덕목은 단연 희생과 헌신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희생과 헌신,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개인의 희생과 헌신, 자기가 믿는 신념이나 종교에 대한 희생과 헌신,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에 대한 희생과 헌신 등을 접하고 그것이 진심이라고 느껴질 때 나는 코끝이 찡해옴을 느낀다. 비록 그런 행동들의 대부분은 일시적인 충동이나 변덕, 뿌리깊은 착각이나 망상, 문화적 유전요소에 대한 반복적 학습이나 세뇌에 기인한다는 평소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이기심이라는 운명적 굴레를 벗어난 듯한 모습을 볼 때면 마치 마약에 취한 듯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마음이 고양되는 것이다.

희생과 헌신 이외에 대가 없는 자선이나 관용도 인간의 이타적 행태의 하나지만 유독 희생과 헌신에만 내 교감신경계가 쉽게 반응하는 사실 역시 일종의 학습에 의한 결과일 테고 그런 감정이 발생하는 기제의 과학적 구조도 매우 분명해 보인다. 때로는 인간이 보여주는 다양한 이타주의 행태를 생물학적 종의 영속을 위한 유전자 단위의 이기주의와 그에 맞춰 진화적으로 안정된 생존 전략의 발로로 보는 관점이 감정적 몰입에 방해가 되기는 하지만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위해 남겨둔 가능성의 영역을 통해 그 차갑고 황량한 메시지는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를 감동케 하는 두 번째 덕목은 존중과 배려이다. 낯선 이에 대한 토박이의 존중과 배려, 상대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존중과 배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존중과 배려를 볼 때면 가슴 한 편이 훈훈해짐을 느낀다. 이 또한 희생이나 헌신과 마찬가지로 의례적이거나 가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난 진심을 통해 전해져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이 존중과 배려를 통해 내가 감동을 느낄 때는 평화로운 평소의 상황이 아닌 힘들고 어렵거나 위급한 상황일 경우가 많은데 그런 때가 바로 학습된 당위를 막연히 따르기 보다는 그 당위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동정이나 연민에 기인한 존중과 배려는 비록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다. 주어진 운명과 환경의 차이에서 눈을 돌려 동등한 한 명의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인정할 때에야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존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일시적인 감상적 충동은 냉정한 외부의 현실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을 때 후횟거리를 하나 더 보태는 것에 불과하며 독버섯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은 편견에 꿋꿋이 맞서는 모습 또한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존중과 배려를 행하는 사람을 볼 때는 마치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상을 타기에는 부적격한 사람이 상을 받는 걸 지켜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심정이 된다.

세 번째 나를 감동케 하는 덕목은 유머다. 그것도 그냥 보통의 유머나 재치가 번뜩이는 냉소적인 유머가 아니라 극도의 슬픔이나 분노를 승화시키는 유머다. 유머의 진정한 원천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고 그래서 천국에는 유머가 없을 것이라고 누군가 말하기도 했지만 악몽 속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하는 유머만큼 인생의 비애를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게 없다. 하지만 그 유머의 배경에 대해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그 유머의 배경이 슬프면 슬플수록 운명을 거스르려는 인간의 의지는 더욱 또렷해지고 나는 더욱 감동에 휩싸인다.

네 번째 나를 감동케 하는 것은 바로 뜨거운 열정이다. 무언가에 미련스러울만치 혼신의 힘을 다해 매달리는 것을 보면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감동을 줄 만큼 열정적이려면 편견이나 광기에 사로 잡힌 상태와 구분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의 열정으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입는 게 아니라면 무아지경의 상태에 이르도록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모습은 충분히 아름답다.

다섯 번째 덕목은 소위 말하는 미적 감동, 즉 아름다움이다. 사실 앞서 말한 네 가지 모두가 인간의 내면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내면을 매개하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그저 미추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편견일 뿐이다. 인간의 감동은 오로지 인간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다. 가령 위대한 자연의 신비를 통해 느끼는 감동은 스스로의 한계와 왜소함을 자각함으로써 새삼스레 느끼는 겸허함일 뿐이지 여기서 말하는 감동은 아니다. 또 제 아무리 뛰어난 기교를 통해 만들어진 예술작품이라 하더라도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정신을 느낄 수 없다면 감동을 줄 수 없는 한낱 인공물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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