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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31. 22:25
누군가 내게 거미공포증이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일 것 같다. 어떤 특정한 대상을 비정상적으로 무서워하는 것에 대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러이 이해하는 편이지만 내가 저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거미를 보며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정말 두려움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과연 나의 그런 감정이 정말 거미 때문에 느껴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감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거미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곤충과 개구리나 두꺼비 등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두려움' 또는 '공포'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굳이 '불편한' 감정이라고 하는 이유는 나는 그들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을 쉽게 앗아갈 수 있는 우리 인간의 비대칭적 힘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손이나 발로 가볍게 누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몸뚱아리를 끈적끈적한 체액으로 뒤범벅된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만 그런 감정을 느낀다. 개구리를 발로 밟아 터지게 한다든지 파리를 붙잡아 날개를 뜯어 내고 달리기 경주를 시키며 놀다가 결국엔 파리채로 때려 피떡이 되게 한다든지 잠자리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가 살짝 잡는다는 게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손바닥에서 뭉개졌다든지 등 어렸을 적에 온갖 종류의 곤충들 또는 작은 동물들이 발에 밟히거나 손으로 짓이겨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어떤 덩어리가 되곤 하는 광경을 종종 목도했던 일이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기억에 새겨졌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방금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 화면에 열중에 있는데 뭔가 목덜미를 잰 걸음으로 기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어른 엄지 손가락만한 거미였다. 화려한 무늬나 색깔은 없고 다리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보통의 검은색 거미였는데 산이 아닌 집에서 본 것치곤 크기가 너무 커서 난감했다. 화장지를 두어 장 꺼내 손가락으로 꾸욱 눌러준 후 펴보지 않고 바로 휴지통에 버리면 간단하겠지만 거미줄로 인한 미관상의 문제만 제외하면 이런 종류의 거미가 사람에게 전혀 해롭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할진대 어찌 그리 간단히 생명을 빼앗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도 얼핏 들고 또 현실적으로도 크기가 상당한 만큼 불룩한 몸뚱아리를 터뜨렸을 때 나올 체액을 생각하면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원래 바퀴벌레나 파리, 모기, 개미 같은 해충들에 대해서는 '불편한 마음'에 비해 빨리 없애야 한다는 당위감이 훨씬 크기 때문에 아무 고민 없이 바로바로 즉결처분을 시행하지만 거미는 오히려 그런 해충들을 잡아먹는 이로운 동물이기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살아남과 동시에 역시 망설여지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내 뒷덜미를 습격했던 검은 불청객은 나를 비웃 듯 어느새 침대 밑으로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휴, 굿바이 아라크네! 거미라면 습격당해도 괜찮아, 응? 괜찮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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