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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2. 22:36
고등학교 때 '독서토론회'라는 모임에 가입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 모임을 대체 왜, 어떻게 가입했는지조차 기억이 안나지만 딱 한 가지 뚜렷하게 생각나는 일이 있다. 당시 학교에는 상당한 장서를 보관하고 있던 꽤 오래된 도서관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도서관을 관리하던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늘 도서관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책을 보곤 했다. 학생들이 입시 공부를 하는 열람실용 도서관은 따로 세 개나 있었고 그 건물은 오래된 책들과 학교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서 일반 학생들은 드나들 수 없었기에 곰팡내 나는 책들 사이에서 마치 특권처럼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하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어떤 단편소설집을 읽고 있었는데 그 선생님께서 옆으로 다가와 무엇을 읽고 있냐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때 마침 '목넘이마을의 개'라는 작품을 읽은 터라 황순원의 단편을 읽었다고 하니 단편소설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다시 스땅달은 읽어봤냐고 하면서 '적과 흑'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을 해주셨다. 난 스땅달 뿐만 아니라 체호프의 단편집도 모두 재밌게 읽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적과 흑'은 처음 들어본 책이었기에 그저 알겠다고만 답하고 말았더니 친절히 책이 꽂혀있는 위치까지 일러주시는 게 아닌가. 첫눈에 나는 그 책이 단편소설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일관성이 없던 대화에 조금 불만(단편소설 얘기를 꺼내놓고 장편을 권하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 하는 불만)을 가진 상태에서 건성으로 '적과 흑'을 펼쳐들었다가 눈에 띄는 장면을 발견하고는 쭉 읽어 나갔다. 그것은 바로 작품의 여자 주인공인 레날 부인이 자신의 발로 남자 주인공인 줄리앙 소렐의 발을 탁자 밑으로 은밀히 희롱하는 장면이었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 그 부분만 몇 번을 반복해 읽은 후 그냥 책을 덮고 말았는데 며칠 후 그 선생님이 다시 다가와 자기가 추천해준 책이 어땠는지,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어디였는지 등을 세세히 물어 보는 게 아닌가.

안타깝게도 천연두는 아직까지도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한다. 코르테스가 잉카 문명과 조우하기 십 년 전으로 타임슬립을 하면 가장 먼저 천문학적 지식을 앞세워 잉카의 지식인 및 성직자 층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환심을 산 후 약 5년 정도는 그들의 언어와 습관을 우선 배우고 마침내는 십 년 후에 그들에게 닥칠 비극에 대비할 계획을 세우고자 하였는데 아까 검색을 해 보니 우주를 정복하고 있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천연두는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니 오늘 자면서 처음부터 틀을 다시 짜야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