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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30. 18:45


리처드 도킨스와 똑같이 다윈주의의 신봉자이면서도 종교에 대해서 만큼은 사뭇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신을 믿는 사람이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는다'고 주장하는 발생 생물학자 루이스 월퍼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자신의 저서 '믿음의 엔진(원제 Six Impossible Things Before Breakfast: The Evolutionary Origins of Belief)'에서 그는 인간이 진화를 통해 자신의 뇌속에 믿음 엔진(Belief Engine)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종교 활동은 심적 스트레스를 줄이고 행복감과 낙관론을 고취시킴으로써 심장에의 부담 같은 신체상의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는데 일조하며, 따라서 종교적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218쪽)

즉 믿음 또는 신앙은 각 개체에게 생존 경쟁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해주며 이는 진화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그는 '나는 내 아들이 열성 기독교 신자가 됐을 때도 말리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아들은 스스로 선택한 믿음으로 인해 더 안온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암시를 던진다(다시 말해 자신은 그런 믿음을 절대 인정하고 가질 수 없었기에 평생 고통을 받았다거나 또는 어떤 정신적 불이익을 감수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주장은 리처드 도킨스에게 쏟아지는 항의편지에서처럼 종교적 믿음이 없으면 불안, 절망, 우울, 고통 등을 야기한다는 말과 동일한 논리값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풀리지 않은 질문들에 대해 그것들을 안고 살아갈 만큼 지적인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볼 때 루이스 월퍼트 역시 그런 주장에 대해 완강히 부정하지는 않을 것 같다.

논의를 단순화시켜 몇 가지 핵심적인 질문으로 요약시키면 다음과 같다.

1. 믿음 또는 신앙이 없거나 목적론적 세계관에 대한 부정을 감내할 만큼의 충분한 지적인 용기가 없으면 불안, 절망, 우울, 고통 등이 야기된다고 할 수 있는가?

2. 믿음 또는 신앙은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각 개체의 생존에 유리할 것이라는 월퍼트의 주장과 전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존의 생물학적 진화의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적 진화까지 모두 고려해야하며 따라서 수천 년전 수만 년간 축적된 지혜를 통해 창안(루이스 월퍼트는 이 부분을 생물학적 진화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되었으나 끊임없이 말을 바꾸며 체계화된 거짓 환상이 끼치는 불필요한 사회적 해악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도킨스의 주장은 서로 대립되는 것인가?

3. 루이스 월퍼트와 그의 아들의 모습은 일견 황량한 들판을 방황하는 우울한 소크라테스와 소박한 우리에 갇혀 배부르고 행복하게 사는 돼지의 모습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과연 이런 비유는 올바른 것인가? 또 최소한 선택의 기회(예를 들자면 종교와 무신론 사이의 선택)라도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도킨스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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