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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8. 11:01
최근 구태의연한 권위주의나 부패한 시스템을 부정하고 안에서 저항하거나 밖으로 뛰쳐나온 이들(서기호, 박은정, 장진수 등)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서태지 세대'라는 점이다. 당시 X 세대라고 불리웠던 이 서태지 세대를 이해하려면 그 세대의 배경, 시기, 위치, 이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먼저 이 세대(30대~40대 초반)가 윗 세대와 구별되는 특별함은 지금의 486 세대(40대 후반~50대)와는 다른 풍요로움 속에서 자랐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X 세대가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게 된(상대적으로 건강하다는 의미) 가장 큰 원동력이지만 역으로 IMF 사태 때 그 윗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더 충격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이런 성장배경이다.

X 세대는 가정과 학교라는 온실로부터 사회로 진출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시기에 IMF 사태와 인터넷 혁명, 최초의 정권교체라는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기존 질서나 구조들의 사상 초유의 급격한 해체를 맞이하는데 이 때 X 세대는 정신적 퇴행을 겪으며 동시에 민주주의가 각인되며 내면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민주주의를 내면화시키지 못하고 투쟁의 도구나 목표, 이상으로만 간주하는 486 세대와는 이 부분에서 다르다. 486 세대는 비민주적인 공동체 생활에 익숙한데 486 세대가 소속되었던 거의 모든 공동체나 조직에서는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횡행하고 효율성을 위해 조직 내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반면 X 세대 때부터 이러한 권위주의를 시대착오적인 행태로 받아들이며 이에 대한 부정과 배격이 표면화된다.

정치적으로는 그동안 철옹성이었던 신한국당이 몰락하여 정권을 내주면서 6월 항쟁의 혁명이 비로소 완성되고 사회경제적으로는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가 자리를 잡고 수많은 회사의 파산 및 가정의 해체를 통해 기존 체제를 지탱하던 거짓과 위선의 질서가 일순간에 무너지는 변혁의 회오리가 몰아칠 당시 486 세대는 사회의 허리로서 그 중심에 서 있었다. X 세대도 그 회오리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대부분의 X 세대는 시스템의 지엽말단에 서 있거나 현실에서 한발짝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또다른 차별화가 이뤄지게 된다. 변혁의 과정에서 유리(alienation)되거나 끄트머리에서 조망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시스템 자체에 대한 통찰력이 남다르다는 뜻(우열의 의미가 아니라 다름, 세대별로 각기 다른 통찰력이 있음)이다.

그렇다면 X 세대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X 세대의 지향점은 바로 민주적 가치와 진실이다. 민주적 가치와 진실을 희구하지 않는 세대는 없을 테지만 그 반응하는 정도나 우선 순위가 486 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 진실에 대한 X 세대의 열광은 문화적으로는 나는 꼼수다, 나는 가수다, 무한도전, 1박2일 따위의 리얼 버라이어티, 디씨 인사이드나 엽혹진 따위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고 정치적으로는 거짓과 위선이 가득한 기존 정치판에 대한 냉소와 불신, 한편으로는 안철수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고 있다. IMF와 카드대란을 겪으며 주먹구구식의 거짓과 부채를 디딤돌로 삼았던 질서가 무너지는 경험을 한 X 세대가 특히 열광적으로 진실된 것, 참된 것을 좇고 있다는 것을 모든 문화적 사회적 현상이 보여주고 있다. X 세대 때부터 패러디나 풍자가 특히 만연한 것도 진실에 대한 게걸스러운 욕망을 비틀어 표현하고자 하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에 대한 X 세대의 열광은 그가 참신하다거나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점에 방점이 찍히지 않고 대신 그가 진실의 아이콘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사상과 이념으로부터도 매우 자유롭기 때문에 극단적이지 않은 한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며 정책의 방향이나 노선도 어떤 의미에서는 부차적이다. X 세대에게는 아직 구심점이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심점으로 삼고 싶은 솔직하고 참된 인물이나 세력이 없다는 뜻이다, 안철수를 제외하고는. 안철수의 사고방식은 X 세대와 거의 동일하다. 뀡 대신 닭에 불과한 486 세대의 문재인은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고 보여진다.

다른 관점에서 X 세대를 말하자면 X 세대는 비교적 냉정한 편이다. 윗 세대인 486 세대에 비하면 더 냉정하고 아랫 세대인 20대에 비하면 덜 냉정하다. 이건 진실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될 때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진실은 냉정하니까.

[인터뷰] 강헌 문화평론가 "이것은 서태지가 아니다" ②

[미디어오늘 박새미 기자]

전명산 감독의 다큐멘터리 < 이것은 서태지가 아니다 > (2001년,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는 서태지의 컴백 이후 팬들이 어떻게 새로운 문화와 접하며 변모해 갔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제목은 서태지라는 존재를 둘러싼 수많은 논점들과 대중문화의 과거·현주소 등을 복기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을 짚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서태지의 팬들은 불공정한 언론의 보도에 맞서 서태지를 변호하며,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하고, 새로운 문화 생산을 꿈꾸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히 '서태지'라는 음악인에 대한 팬덤 개념을 넘어서 젊은 세대들의 자발성이나 들뢰즈의 리좀(Rhizome) 개념이 현실에서 실천되는 방법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리좀'이란 철학 상의 하나의 개념을 창조하는 것을 넘어, 사고를 실천하는 양식·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지극히 실천적인 개념이다.

서태지 팬덤은 최근 서태지 20주년 기념 서태지 숲 조성, 서태지 관련 각종 방송·언론 자료를 축적한 '서태지 아카이브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그의 데뷔 이래 공연윤리심의제도 폐지, 사전심의제 폐지, 황색언론 반대연합, 대중음악판바꾸기위원회(대바위),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모임(대개련), 음악저작권협회의 문제점을 알린 올바른 음악저작권문화 챙김이(올챙이) 국회 토론회 등 대중음악 전반의 진보를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이 같은 서태지 팬덤의 활동과 별개로 '서태지 세대'라는 사회적 지층이 존재한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다음은 강헌 문화평론가와 일문일답이다.

-'서태지와 아이들'로부터 시작한 새로운 팬덤 문화는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얘기다. 20년을 이어오며 진화·변모해온 서태지 팬덤은 단순히 한 가수를 아끼는 팬덤으로 국한시켜 보긴 어려운 것 같다. 이 팬덤은 문화·사회적 운동도 독립적으로 해왔는데.

"기억나는 게 2008년 '올챙이 국회토론회'라고 서태지 팬들이 주축이 돼서 음악인 저작권 관련한 문제를 법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일이 있다. 이 차원에서 당시 국회에서 저작권 관련 공청회를 했는데 보통 공청회라고 하면 분위기가 얼마나 삭막한가. 사람도 얼마 없지 않나. 그런데 당시 방청객이 굉장히 많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들이 취재하어 온 상황이 되니 당시 문화부 관련 국회의원들도 공청회 자리에 올 수밖에 없게 됐다. 그때 정말 '피플 파워'라는 것을 느꼈다."

-서태지 팬덤이 문화적·사회적인 운동을 해나가는 것을 보면 매우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며 열정적이다. 그리고 지속적이다. 서태지라는 뮤지션이 은퇴를 선언하고 몇 년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때에도 '서태지기념사업회'라는 것을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했고, 서태지가 컴백한 후 지금까지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권이나 연고에 묶이지 않는 자발적 집단이 이처럼 지속적이고 강력한 유기적 모습과 행동력을 보여왔다. 이는 단순히 일반적 팬덤이라기보다는 마치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처럼 보인다.

"서태지 팬덤은 단순히 우상에 대한 열정, 열광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른바 굉장히 사회적인 행동으로 나가게 만든 굉장히 능동적인 팬덤 문화를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사실은 서태지 만큼이나 서태지 팬덤이 보여준 사회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서태지 등장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대중문화를 한국사회의 담론으로 끌어들인 첫 번째 사건이다. 그 이전에는 대중문화가 사회적 의제가 된 적이 없다. 여기에 서태지 팬덤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대가 주체로 나선 측면이 결정적이다. 당시 90년대의 10대는 한국사회에서 기성세대가 만든 질서, 관행 이런 것에 굉장히 반항적이었다. 이들에게 서태지의 등장은 마치 자신들을 대변하는 듯하고 매우 상쾌했던 거다. 서태지 본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몰고 온 것이다. 팬들의 그런 힘은 잠재해 있으면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대중'이라는 존재의 씨앗으로 작용해왔다고 본다."

-상당히 사회사적 의미 부여가 되는 평가인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있나.

"서태지의 등장 당시 열광적 팬을 이뤘던 10대, 새로운 세대의 기존 사회질서의 구태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그런 힘들이 나중에 등장한 촛불이나 이런 것으로 이어지면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진화 맥락을 가지고 태동하게 됐다고 본다. 수면 밑에서 명맥을 이어가다가 가시적으로 연달아 터진 것이 2002년 월드컵 때 대규모 길거리 응원, 미군 장갑차 사고에 희생된 '효순이·미선이 사건' 촛불 시위, 2004년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 등이다. 각 사건 당시 주체가 됐던 것이 20대와 30대 초반 연령대의 일반 시민이었다. 이것이 또 수면 밑에 있다가 2008년 촛불 사태라는 현상으로 빵 터졌고 다시 드러난 게 작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과 '안철수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서태지 세대'의 변혁에 대한 열망과 힘이 '안철수 현상'까지 이어졌다?

"안철수 바람이라는 것은 기존 정치·사회 체제의 구태와 병폐, 한계를 체감한 이들이 정치적 출구를 찾아낸 게 안철수였다. 안철수 바람의 주체는 현 20대 중후반, 3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까지의 세대이다. 그 이상의 저희 세대에게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이 사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안철수 현상을 보면 90년대 초중반 서태지 열풍 때처럼 그 바람을 일으킨 주역 세대의 '지층'이 존재하고 있다. 서태지 팬 세대를 중심으로 보면 이 현상들이 단절되지 않는다. 서태지에 열광했던 존재들의 대중적 힘이 잔류했다가 각 사건들마다 정확하게 주체 세대로 이어지며 나타나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50대 이상의 세대 대부분이 안철수 현상이나 대중적 운동과 문화에 낯설어하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안철수 대망론은 기존 정당 바깥에서 확 끌어 오른 것이다. 그것은 안철수 개인의 힘이 아니라 대중의 힘에 의한 것이다. 우리 대중이 한편으로는 대단한 게 결정적인 순간에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는 본능적인 힘이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시효가 끝난 구질서를 한 방에 궤멸시키는 구도로 가려는 힘이 현재 계속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들이 굉장히 원하는 시선은 저기 앞에 가 있는데 기존 정치권이나 사회 주류 질서는 계속 여기에서 버벅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태지 세대와, 90년대 초반 이후 20년간 능동적인 사회변혁의 주체로 나서온 세대를 큰 틀에서 '동일시'하며 연결 지은 것이 흥미롭다.

"서태지 20주년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음악사적 회고의 의미를 넘어선다. 서태지 세대는 지금의 정치 현실에 대한 논거를 제시해주는 이들이다. 같은 뿌리로부터 출발한 그 대중이 나이를 먹고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과 대비를 시켜보면 드러나고 있다. 92년 시작한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이 그 당시 중학생, 나이가 많아봐야 고등학생이었다고 하면 이들이 대학생 무렵이 되면서 외환위기라고 하는 한국사회의 큰 위기와 절망을 겪고, 그게 일종의 저항 에너지로 쌓이면서 2002년~2004년경에는 이 사람들이 20대, 30대 초반까지의 연령대에 이른다. 어느 정도 사회를 읽을 수 있는, 그러면서 자기가 거쳐 온 삶의 어떤 부분들을 해석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된 시기가 되면서 기존 질서의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새로운 방법과 힘으로 변화를 끌어내려 하게 된 것이다. 현재는 이들이 이제 많으면 40대 초반 보통은 30대이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웬만큼 경험도 쌓고 세상을 읽을 수 있고 자기 나름대로 살아온 여정이 있고 한 이런 세대의 사람들이 안철수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 매 순간순간 그때 참여했던 사람들의 나이를 시간상으로 대비하면 딱 맞아 떨어진다."

"10대 때 서태지 팬으로 출발한 지층이 사회적 흐름에 개입해서 뭔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들이 된 것이다. 이 주체들은 조작 가능한 기존 주류 질서와, 굉장히 구조적이고 관행화돼있고 퇴행적인 일련의 것들과 뚜렷하게 대비가 되는 존재들이다. 촛불 시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안철수 현상 이런 것들은 본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대중이 만들어버렸다고.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 그만큼 새롭게 부상하는 대중의 열망에 부흥하지 못하면 이제 언제 어디서나 대중적 힘에 의해 사라지고 전복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서태지 신드롬에서 안철수 현상까지 사회사적으로 연결하는 해석적 시도는 참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론의 여지가 많을 것 같은데.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다만 그런 해석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재 정치 구조는 수명이 다했으며 전혀 새로운 질서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상당히 팽창해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한국사회의 구조는 '좌우'로 많이 설명을 한다. 좌우로 구분하는 그런 지층이 하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그 밑에 이 전체를 거부하는 새로운 지층이 형성되고 있다. 2030 젊은 세대들을 포괄하는 융기 지층이다. 기존 지층 전체를 위로 밀어 올리는 이변상을 일으키고 있는 움직임이다. 이들에겐 좌에 있든 우에 있든 말하자면 다 구질서인 거다.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억누르는 구질서. 좌에 있으면 진보고 우에 있으면 보수라는 것 자체가 구질서로 전락하고 있고 여러 가지 구태의연한 행태들을 재생하면서 역주행하는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다."

"물론 새로운 지층들이 솟아오르는 데 한계가 있다. 갈 길의 좌표도 불분명하고 정체성도 뚜렷하지 않다. 지적 자산, 여러 가지 운동의 확산, 그러면서도 기성세대의 틀을 깨고 나오면서 새로운 대립의 네트워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그런 것이 가장 절실한 지점이다. 진취적이고 건강함이 넘치는 이 태동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는 '어떤 유력한 개인의 몫'이 아니다. 현재 이 힘을 어떻게 자산화 하는가, 유실되지 않고 계속 발전가능한 모델로 지키는가 하는 대단히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 공교롭게 서태지 20주년이라고 하는 시기에 이 화두가 서로 연결돼 하나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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