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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0. 17:56
방금 YTN에서 이영호 전 청와대비서관이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기자회견을 하더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준비한 서면을 읽어내려가는데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이 어찌 저리도 딱 들어 맞는지. 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불법사찰 사건에 대해 청와대에 입장 표명을 하라고 요구했던 건 정권 차원에서 엄중히 국민 앞에 사과하라는 뜻이었을텐데 기껏 하수인 한 명을 내세운 기자회견에서는 적반하장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을 만큼 사과는 커녕 아무 관련도 없는 노무현, 김대중, 한명숙을 들먹이며 자기가 몸통이라는 둥 국민과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둥 개소리를 지껄이더라. 이명박, 이상득이나 그 졸개나 정말 똑같은 놈들이다. 후안무치한 철면피들. 공직'윤리'지원관실? 푸하하하...진짜 인간이 아닌 악마, 인두겁을 쓴 짐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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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0. 16:47
어떤 정치인이 '정무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미숙하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면 이는 곧 정치인으로서는 아주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뜻이 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그 정점에 대화와 타협이 있다. 간혹 투쟁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이는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거나 통하지 않는 상대를 위한 특별한 해법일 뿐이다. 대화와 타협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다. 이쪽에서 상대방에게 내놓을 카드가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협상 상대로 여기지 않거나 상대방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렇지만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투쟁이라는 것도 자신이 불리한 경우에 사용하는 하나의 타협 방법에 불과하다. 즉 마땅한 협상 카드가 없을 경우 투쟁의 수위를 조절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일종의 협상 카드로 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투쟁은 많은 경우 운동가(activist)들에게 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투쟁을 잘하는 사람이 곧 신념가라는 뜻은 아니다. 투쟁이 신념을 도드라지게 표출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타협의 선도 신념에 따라 그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신념이 없이 여기저기 타협만 잘하고 정치력만 높은 기회주의 정치인(예컨대 이광재?)들이 많다는 사실이 한국 정치현실에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통합당의 FTA 전면 폐기 주장에 대해 반대한 장하준 교수의 의견에 적극 공감한다. 초지일관 FTA에 반대한 것이 그의 신념이었지만 현 상황(투쟁이 필요했던 시기가 지난 상황)에서 FTA 전면 폐기 주장은 FTA 찬성론자들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그릇된 전략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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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19. 06:30
우리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지요. 사고를 하기는 하되 가게를 운영하는 것처럼 사고를 해요. 하지만 의식은 우리 인간 존재의 부수적인 기관일 뿐이에요. 그러므로 이 의식이 우리의 존재를 통제하게 하면 안 됩니다. 의식은 기가 한풀 꺾인 상태에서 우리 인간성을 섬겨야 하는 존재이지,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해도 좋은 존재는 아닌 것이지요. 의식이 통제하게 될 때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같은 인간이 생깁니다. 이런 인간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것만 편들지요.

- 죠셉 캠벨, '신화의 힘(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대담)(이끌리오 출판사)'

가게를 운영하는 것처럼 하는 사고는 목적론으로는 생존지향적이며 방법론으로는 합리적인 사고를 뜻한다. 의식이라는 기관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의식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생명의 힘, 자연의 힘이다.

생명력이 약해져 의기소침한 상태가 될 때의 원인으로는 무의식 안에 갇힌 생명의 근원 자체가 위축되는 경우와 의식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등의 이유로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을 향해 흐르는 생명력의 통로가 좁아지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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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처럼 은유와 환유의 체계로 구조화해 있다고 본다. 이 무의식은 한 개체 안에서 그를 이끄는 타자(他者 I'Autre)이다. 이 타자는 자아에 앞서서 얘기하며 자아의 욕망을 통제한다. 개인들은 자신이 행위하고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구조가 말하게 하고, 행위하게 하고 욕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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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철학자들이여, 이제부터 '순수하고 무의지하고 무고통적이고 비시간적인 인식의 주관'을 설정한 위험천만하고 낡은 개념적 허구에 대해서 경계하여야 하리라. 또한 '순수이성'이나 '절대정신', 그리고 '인식 자체'와 같은 모순적인 개념들의 올가미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런 개념들은 항상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눈을, 어느 특정한 방향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하나의 눈을 지녀야만 한다고 요구하는데, 이러한 눈에서 본다면, 본다는 것이 또한 어떤 무엇을 본다는 것이 되는 능동적이고 해석력있는 힘은 저지되어야만 하고, 결여되어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눈이 요구하는 바는 언제나 불합리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관점주의적으로 보는 것만이, 오직 관점주의적인 '인식'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어떤 사태에 대해 좀더 많은 정서로 하여금 말하게 할수록, 우리가 그와 같은 사태에 대해 좀더 많은 눈이나 다양한 눈을 맞추면 맞출수록, 이러한 사태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나 '객관성'은 더욱 완벽해질 것이다. 그러나 의지를 모두 제거하고, 정서를 남김없이 떼어낸다는 것은, 설령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그것은 지성을 거세하는 것 말고 또 무엇을 의미할 수 있겠는가?

- 니체, '도덕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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