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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에 해당되는 글 1건
2007. 11. 25. 21:49
[]

시를 읽으며 시인의 눈에 비쳤을 정경을 한 번 상상해 보자. 늪 한 구석 진흙 위에 점점이 흩뿌려진 빗방울 자국들을 보며 생긴지 1억 4천만 년이나 되었다는 이 곳을 차례대로 거쳐갔을 늪의 주인들을 떠올려 본다. 오랜 세월 동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고 후대의 새주인들에게도 여전히 넉넉함을 베푸는 우포늪이기에 혹시 어딘가 옛 주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돌아오는 길, 밤안개 자욱한 길가에는 쑥부쟁이들이 제멋대로 돋아있고 시인이 내쉬는 입김은 그대로 안개가 되어 주위를 맴돈다. 문득 시인은 생각한다. 우리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동안 남기는 흔적이 바로 저 입김과도 같은 게 아닐까. 1억년 전 공룡의 눈물방울이 돌고 돌아 다시 빗방울이 되어 쑥부쟁이 잎사귀를 얼룩지게 하고 지금 나의 입김은 안개가 되어 그 주위를 맴돈다. 결국 자연에게 있어 삶과 죽음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한 마리의 아브락사스일 뿐 아닌가!

창녕 우포늪에 가서 만났지
뻘 빛 번진 진회색 판에
점점점 찍혀 있는 빗방울 화석.
혹시 어느 저녁 외로운 공룡이 뻘에 퍼질러 앉아
감춘 눈물방울들이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 어려우리.
길섶 쑥부쟁이 얼룩진 얼굴 몇 점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가을 저녁 안개
몰래 내쉬는 인간의 숨도
삶의 육필(肉筆)로 남으리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화석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 황동규 '빗방울 화석' :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지성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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