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9. 06:17
[時事]
<출처> http://archives.snu.ac.kr/main/cyber/histo/monu/419_statement.htm
보라색으로 표시된 글귀들은 49년이 지난 지금도 별 무리없이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중 '현실을 뒷골목에서 용기없는 자학으로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라는 문장만 '모두가 뒷골목에 웅크려 앉아 용기없는 자학으로 현실을 되씹는다'로만 바꾸면 되겠군. 이 글을 쓰던 당시의 사람들은 얼마나 순수했을까?
* 이건 약간 충격적일 수도 있는 내용인데 이 글을 작성한 당시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2학년 이수정씨(2000년에 작고)는 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주도한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 때 문화공보부에 근무하면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허문도, 권정달 등 다른 다섯 명과 함께 강제해직된 언론인 94명에 의해 1996년 검찰에 고소를 당했다(무혐의로 종결됨). 그는 그때 부역을 한 대가였는지는 몰라도 6공화국 후반기에는 군사정권의 마지막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고 그 당시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한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에게 불출마를 회유, 읍소했다는 얘기가 이주일 자서전에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다(결론은 이 글을 쓴 사람이 오히려 후일 지독한 언론 탄압의 선봉에 섰고 장관이 되자 정치공작에까지 앞장섰다는 얘기).
* 이수정씨가 1960년 당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그가 신진회라는 서울대 문리대의 좌파 동아리의 회원이었기 때문인데 신진회는 1957년 당시 회원이던 류근일(전 조선일보 주필)씨가 '모색-무산대중을 위한 체제에로의 지향'이라는 공산주의 찬양 논문을 발표했다가 검찰에 구속 기소되는 필화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일시 해산되었다가 다시 재건되었고 이후 4.19 혁명 때 서울대 문리대에서는 이 신진회가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참고로 현재 우리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고 부르는 신입생 환영회는 1961년 서울대 문리대에서 최초로 도입하였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신진회에서 신입생들을 포섭하기 위한 좌파 운동권 전술의 하나로 강력히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 표현은 일제 시대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주축을 담당했던 시인 임화의 시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본문으로]
'時事'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은 모두 국산 이메일을 버려야할 때' (5) | 2009.04.24 |
---|---|
미네르바 무죄 판결을 보고 과연 기뻐할 수 있을까? (8) | 2009.04.20 |
노무현 비리, 이명박 대통령 잘한다, 힘내라 (6) | 2009.04.08 |
조삼모사 패러디 - 진정한 똘마니들 (0) | 2009.02.27 |
MBC 파업 (0) | 2009.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