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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5. 19. 15:34
[]

솔직히 나는 시에 관한 한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도 아니고 시집을 사 본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날 정도로 오래된데다 문학수업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가끔 시를 읽는데 정작 시보다는 반칠환님의 천의무봉한 풀이가 더욱 즐겁다.

달빛 찬 들국화길
가슴 물컹한 처녀 등에 업고
한 백 리 걸어보고 싶구랴

- 함민복 '농촌노총각' :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작과 비평사)중에서

“세상엔 시인이 둘 있다. ‘함민복’과 ‘그 밖의 시인들’”이라고 말하는 함민복 시인의 말을 듣고 홍소(哄笑)를 터뜨린 적이 있다. 대개 동종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칭찬에 인색한 법이다. 같은 ‘시업(詩業)’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저이의 유아독존에 유쾌해 하는 건 내가 너무 속이 좋아서인가? 그러나 시란 무엇인가? 감동의 산물 아닌가? 자본주의처럼 끊임없는 경쟁(競爭)과 불복(不服)의 질주가 아니라 누구든 마음으로부터 심복(心服)을 받아내는 것이다.

단 석 줄에 시는 끝났으나 국보급 범종처럼 여운은 좀체 가시지 않는다. 설마 100리를 업고 가도록 가볍고도 물컹한 처녀가 있을까만, 들국화 한들거리고 달빛 쏟아지는 저 시골길로 달려가고 싶은 사내가 한둘일까? 하나 ‘농촌 노총각’이란 제목이 뭇 총각의 호기로운 발목을 잡는다. 도시화와 근대화가 만든 아릿한 아픔이 저며 든다. 저 농촌총각이 마침내 고샅길로 접어들면 맨발로 달려 나와 가슴 물컹한 며느릿감을 받아 업고 덩실 어깨춤을 출 시어미도 있긴 있을라.

- 반칠환 : 시선집 '내게 가장 가까운 신, 당신'(백년글사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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