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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19. 03:31

감정이입(感情移入; Einfühlung; Empathy)이라는 단어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로베르트 피셔(Robert Vischer)가 자신의 박사논문(On the Optical Sense of Form: A Contribution to Aesthetics, 1873)에서 처음 사용한 신조어였다. 원래 로베르트 피셔는 이 단어를 인간 이외의 대상에 인간의 감정을 투사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으나 테오도르 립스(Theodor Lipps)가 이 감정이입을 우리가 타인의 자아를 알아차리는 방법을 설명하려는 하나의 시도로 또한 미적 감상의 본질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19세기 후반 심리학과 미학에서 동시에 주목받는 단어가 되었다. 립스는 이 감정이입을 공감(Sympathie; Sympathy)이라는 단어와 뚜렷이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였으나 영어로 이 단어(Einfühlung)를 처음 번역한 Edward Titchener는 독일어의 Sympathie와 동일한 단어인 Sympathy를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하여 역시 Empathy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옮기게 되고 이 Empathy라는 단어는 심리학 분야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차츰 널리 영미 일반에 받아들여져 지금에 이르게 된다.
 
아래 이상섭의 문학비평용어사전에서는 공감을 주로 인간끼리 무엇을 함께 느끼는 것으로, 감정이입을 그 이입의 대상의 안으로 들어가서 느끼는 것으로 구분하여 공감을 이자적(二自的) 상태로 설명하는 반면 감정이입은 일자적(一自的) 상태로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심리학에서는 공감(Sympathy)을 괴롭거나 슬픈 감정에 주안점을 두고 대상의 감정에 주로 호응하려는 시도로, 감정이입(Empathy)은 즐겁거나 기쁜 감정이라도 상관없이 감정을 공유하며 대상의 감정을 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로 구분지어 설명하는 의견도 있다.

참고 위키피디아, 구글검색, The Meaning of Art(by Herbert Read) #18 Empathy
검색어 Hermann Lotze, Robert Vischer, Empathy and Sympathy, Theodor Lipps

대상과 인간에 대하여 가지는 자신의 감정을 저도 모르게 다시 그 대상과 인간에게 옮겨 넣고 마치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이 느끼는 것을 감정이입이라 한다. 예를 들어, 흐르는 시냇물은 늘 소리를 내며 흘러가지만, 감정을 느끼는 주체자가 슬플 때는 냇물 소리가 슬프게 느껴져 처량한 소리를 낸다고 하고, 주체자가 기쁠 때는 명랑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한 독자가 소설의 주인공과 자기를 동일시(同一視)하여 그 주인공이 웃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자기도 같은 마음에서 따라 웃었다는 것, 또는 무섭게 찡그린 배우의 얼굴을 보면서 관객이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는 것 등은 다 감정이입의 결과이다.

독일의 헤르만 로체(Hermann Lotze)가 1858년에 처음 예술과 관련지어서 아인필룽(Einfühlung, 감정을 넣어줌)이란 말을 썼고, 후에 테오도르 립스(Theodor Lipps)가 예술의 이론으로 정립시켰다. 그들에 의하면 수사학에서 의인법(擬人法), 비유(比喩) 등은 모두 감정이입의 결과라는 것이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에서 시인은 자기의 정서를 촛불에 옮겨 넣고 있다.)

공감(共感, sympathy)은 주로 인간끼리(또는 인격이 부여된 상상적인 행위자에게) 동류(同類)의식을 가지는 것을 뜻한다. 즉 <햄릿>을 보면서 내가 감정적으로 햄릿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민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제3자의 감정이 공감인 것이다. 감정이입이 결합시키는 것이라면 공감은 나란히 서게 하는 것이다.

공감의 능력이 없으면 작품을 읽을 수 없다. 작중 인물들은 대개 공감 또는 반감(反感)을 사도록 되어 있으며, 그들에게 얼마나 옳게 공감하고, 또 얼마나 바르게 반감을 가지는가가 독자의 질을 결정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공감은 다분히 지적이고 사상적인 것인 반면, 감정이입은 육체적이고 본능적이다.

작품의 전달을 위해 위의 두 가지는 다 필요한데, 감정이입에 역점을 두는 작가는 암시성이 강한 말을 골라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에 치중할 것이고, 공감에 역점을 두는 작가는 인간 본연의 성격을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

- 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민음사, 1976) 중에서

2007. 12. 18. 20:04

마침내 D-Day. 애초에는 기권할 생각이었으나 마음을 돌려 투표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투표를 한 후 동네 사우나탕에나 가야겠다. 벌써 네 번째 겪는 대선이지만 이번처럼 기권의 유혹이 강한 선거는 처음인 것 같다. 과거의 경우 최선인 후보가 없더라도 가급적 차선의 후보를 찍으려 하였고 차선이 없더라도 최악을 피해 차악을 골랐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그 차악마저도 불투명하게만 느껴져 마지막까지도 찍을 후보를 고르기가 너무 힘들다.
 
가령 이명박을 찍자니 도둑놈, 사기꾼을 찍어주는 것 같고 정동영을 찍자니 얼뜨기, 멍추를 찍는 것 같고 문국현을 찍자니 천둥벌거숭이를 찍는 듯 미덥지 못하다. 또 이회창, 이인제는 찍기 싫은 이유를 말하는 것조차 귀찮고 권영길에 대해서는 1997년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표 방지의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노당은 대체 언제쯤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까? 프랑스의 사회당이나 독일의 사민당, 영국의 노동당처럼 집권이 가능한 정당이 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노조의 마인드에서 벗어나 정당의 마인드를 갖출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책과 노선의 초심을 잃지 않고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계속 대변하되 국민 전체에 대한 이해와 통합의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얘기가 옆길로 새려고 하는데 어쨌든 내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인 투표권을 성실히 행사하도록 하자! 결과야 어찌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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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16. 23:07
BBK 논란과 관련하여 얼키고 설킨 여러가지 주장들이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명박 후보가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과 그 거짓말 솜씨가 타고났다는 점이다.

거짓말에 능숙한 사람은 능청스러운 연기를 발판삼아 자신의 거짓말을 성공시키지만 타고난 거짓말장이들은 아예 순간적으로 자기자신을 속임으로써 정상적인 판단의 메커니즘을 일시적 마비상태에 빠지게 한다. 즉 거짓말하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착각하면서 말하게끔 만든다는 뜻이다.

이명박 후보가 바로 그런 타고난 거짓말장이인데 이명박 후보의 경우는 말을 하다가 입맛을 다실 때가 바로 스스로를 속이고자 할 때 또는 확신이 없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강한 자신감을 부여하고자 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