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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22. 19:16

어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오후 늦게 친구를 만났는데 못 보던 작은 손가방을 들고 있었다. 뭐냐고 물었더니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주웠는데 약속 시간에 대어 오느라 파출소에 못 들르고 그냥 왔단다. 가방 안을 대충 훑어봐도 주인의 연락처를 알아내기는 힘든 듯 하니 파출소에 맡기는 게 상책이라 하면서 대뜸 내게 건네는 것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선뜻 열어 보니 만 원짜리 두 장과 상당히 많은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 몇 개, 그리고 여러 장의 영수증을 포함한 개인적인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전화를 한번 걸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수많은 번호들이 빼곡히 적힌 수첩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회포를 푸는 게 우선이라는 마음에 잘 간수했다가 주은 곳 근처 파출소에 갖다 주라는 말과 함께 다시 되돌려 주려고 하니 자기는 들고 다니기 귀찮으니까 내 웃도리 호주머니에 담아 놓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통에 까맣게 잊어 버리고 11시가 다 되서야 집에 돌아와 겨우 두툼한 호주머니를 떠올렸다. 한 번 더 열어서 연락처를 못 찾으면 파출소에 갖다주자고 마음 먹고 영수증들을 곰곰히 들여다 보니 계속 반복되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이 사람이 주인일 것 같네'.
 
다시 수첩들을 펼쳐 보니 의외로 그 이름과 휴대전화번호가 쉽게 발견됐다. 술기운에 시간이 늦은 줄도 모르고 찾아낸 번호에 전화를 걸어 혹시 뭔가 잊어버린 거 없으시냐고 물었더니 반가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전해져 왔다. 전화번호들이 꼭 필요했는데 가방을 잃어버려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단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분실한 장소보다는 우리집이 배나 더 가까운 곳이다. 당장 택시를 타고 근처로 온다고 하니 비록 알딸딸한 상태지만 주섬주섬 다시 옷을 챙겨입을 수 밖에. 여차여차 통화를 거듭하다가 근처 전철역까지 가서 만나 보니 우리 어머니뻘 되시는 분이다. 잃어버린 손가방을 되찾게 되어 너무 기뻐하시는 모습에 절로 흐뭇해진 기분으로 작별을 고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려고 하자 덥석 손을 잡으시더니 손가방에 든 2만원에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꺼낸 2만원을 보태어 사례를 하신다. 댓가를 바라고 전화드린 게 아니라며 한 손을 잡힌 채로 손사래를 치는데 단호한 경상도 사투리가 귓전에 울려 퍼진다.
 
"사람이 오고 가는 게 있어야지"

"아! 그럼 감사히 받아 잘 쓰겠습니다." 마지못해 손을 펴니 4만원을 꼭 쥐어 주고는 그제서야 손을 놓으신다.

'이걸로 가방을 주워 갖다 준 친구에게 삼겹살에 소주나 한 잔 사야겠군.' 속으로 되뇌이며 비틀비틀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암, 사람은 오고 가는 게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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