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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해당되는 글 8건
2008. 9. 25. 18:30
[]
이건 마치 믿음에 대한 불확정성의 원리같군. 나에 대한 너의 믿음을 확인하려는 순간 이미 그 믿음은 변해버린다는 건가? 다른 시인의 입을 빌어 충고하자면 절망할 수 없는 것조차 절망하지 말고 불신할 수 없는 것조차 불신하지도 말자, 너무 쓸쓸해지잖아!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
다만 네가 지금 믿고 있으면서 믿는 줄도 모르고 있는 그걸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주 쓸쓸해도 과장이 없다.


- 정현종 : 시집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문학과지성사)'중에서

2008. 2. 27. 13:07
[]
毒이 발효하면 藥이 되는가?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되지 못했고 슬픔도 증오도 부러움도 탄식도 아니면서 동시에 슬픔이자 증오이자 부러움이자 탄식인 저 복잡하고 뒤엉킨 총체적인 혼란을 벗어나는 유일했던 길은 독기어린 시를 쓰는 것, 시를 통해 독을 뿜어대는 것, 다른 말로 하면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너무 퇴행적이다. 나는 충분히 발효가 됐거든.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된다.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에요.

밝은 거리에서 아이들은
새처럼 지저귀며
꽃처럼 피어나며
햇빛 속에 저 눈부신 天性의 사람들
저이들이 마시는 순순한 술은
갈라진 이 혀끝에는 맞지 않는구나.
잡초나 늪 속에 온 몸을 사려감고
내 슬픔의 毒이 전신에 발효하길 기다릴 뿐

뱃속의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구하듯
하늘 향해 몰래몰래 울면서
나는 태양에의 사악한 꿈을 꾸고 있다.

- 최승자 : 시집 '이 時代의 사랑(문학과지성사)'중에서

2008. 2. 3. 19:07
[]
재미있는 시다. 읽을수록 신이 난다. 단 말장난에 상처받았을 때 읽는 것은 금물.
(페루의 사진들 중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소녀가 많이 등장하긴 한다. 그런 사진 또는 풍경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렇게 고향을 떠올리다가 외국을 돌아다니며 성장한 유목민들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는 고향땅을 밟고 살면서도 고향에 갈 수 없는 자들을 기만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주황 보라. 모두가 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 양은 어떻게 웁니까. 메에 메에. 울음소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머리를 두 줄로 가지런히 땋을 때마다 고산지대의 좁고 긴 들판이 떠오른다. 고산증. 희박한 공기. 깨어진 거울처럼 빛나는 라마의 두 눈.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한다. 내 인식의 페이지는 언제나 나의 경험을 앞지른다. 페루 페루. 라마의 울음소리. 페루라고 입술을 달싹이면 내게 있었을지도 모를 고향이 생각난다.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페루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침마다 언니는 내 머리를 땋아주었지. 머리카락은 땋아도 땋아도 끝이 없었지. 저주는 반복되는 실패에서 피어난다. 적어도 꽃은 아름답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간신히 생각하고 간신히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영영 스스로 머리를 땋지는 못할 거야. 당신은 페루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미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입니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역시 이상한 말이다. 히잉 히잉. 말이란 원래 그런 거지. 태초 이전부터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무의미하게 엉겨붙어 버린 거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미쳐버린 채로 죽는 거지. 그렇게 이미 죽은 채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는 거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있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양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말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비행기 없이도 갈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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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12. 10:17
[]

10여 년 전의 애송시이다. 특히 첫 번째 연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너의 눈이 늘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지.'라는 구절은 여전히 달콤하기 그지없다.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시련과 업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선택하고 죽을 때까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시인의 호흡이 물씬 배어있는 시다.

네 눈의 곡선이 내 마음을 맴돌면,
춤과 부드러움의 둥근 모양,
시간의 후광과 어둡고 아늑한 요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너의 눈이 늘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지.

빛의 나뭇잎들과 이슬의 이끼
바람의 갈대 향기로운 웃음,
빛의 세계를 뒤덮는 날개들
하늘과 바다를 실은 선박
소리의 사냥꾼들과 여러 색깔들의 샘

언제나 별들의 밀짚 위에 누워 있는
새벽의 알에서 부화한 향기
빛이 순수성에 좌우되듯이
온 세상이 너의 맑은 눈에 좌우되고
내 온몸의 피는 그 눈빛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 폴 엘뤼아르(오생근 역) : 시집 '이곳에 살기 위하여(민음사)'중에서


POUR VIVRE ICI
1918

La courbe de tes yeux fait le tour de mon coeur,
Un rond de danse et de douceur,
Aureole du temps, berceau nocturne et sur,
Et si je ne sais plus tout ce que j'ai vecu
C'est que tes yeux ne m'ont pas toujours vu.

Feuilles de jour et mousse de rosee,
Roseaux du vent, sourires parfumes,
Ailes couvrant le monde de lumiere,
Bateaux charges du ciel et de la mer,
Chasseurs des bruits et sources des couleurs,

Parfumes eclos d'une couvee d'aurores
Qui git toujours sur la paille des astres,
Comme le jour depend de l'innocence
Le monde entier depend de tes yeux purs
Et tout mon sang coule dans leurs reg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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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4. 01:17
오늘 김수영 전집을 빌리러 갔다가 이상 전집을 빌려왔다. 김수영 전집을 누군가 빌려가서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첫페이지의 오감도 제1호를 낄낄거리며 읽던 도중 갑자기 어제 뭔가 아주 재밌는 포스트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 포스트의 주소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제1호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낄낄낄~막다른 골목을 어떻게 질주해.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낄낄낄~무섭긴 뭐가 무서워.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낄낄낄~제2의 아해도 무섭대.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낄낄낄~제3의 아해도 무섭대.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낄낄낄~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낄낄낄낄낄~ 엇, 가만, 뭐였지? 어제도 이렇게 웃었는데?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끄응~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오감도'는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연재한 시로서,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연재 도중 독자들의 비난으로 연재가 중단됨. -> 푸하핫! (이미 까맣게 잊음)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2주일만에 독자들의 비난으로 중단됐대, 크크! 아이고, 배꼽이야.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13인의 아해는 모두 공포에 질려 있지만 그들은 '무서운아해'와 '무서워하는아해'로 구성되어 있다. 곧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이면서 동시에 무서워하는 아해이다. 따라서 13인 가운데 몇 명이 무서운 아해이고, 몇 명이 무서워하는 아해인가를 따지는 일, 혹은 무서운 아해는 안중근/ 이준 같은 열사를 지시하고, 무서워하는 아해는 일본경찰을 지시한다는 서정주의 해석은 무의미함. -> 서정주님의 해석에서 대폭소!!! 게다가 무의미하다니! 크하핫!!! 그런데 왜 이명박 신년사가 떠오르지?

- 이승훈 편저 : '이상시전집'(문학사상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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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4. 00:36
[]

예전에 공감하며 몇 줄 써놓은 게 있었지만 옮기며 다시 읽어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웠다. 우선 시인이 자신의 죄의식과 일종의 회한을 과장스럽게 겉으로 내세우고는 있으나 실제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불분명하고(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고 읽는이를 속이려 드는 느낌이랄까) 또 무엇보다도 시인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냥 아래 반칠환님의 풀이로 대신 한다.

'당신 깃든 사원에 발 벗고 함께 머리 조아리나니 나는 사람을 만나도 짐승을 못 버렸고, 꽃을 만나도 벌거지를 못 면했으며, 바람을 만나도 꿈꿀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당신의 기도가 오히려 나를 울립니다. 사칭이라니요, 사람을 만나 사람이 되고 꽃을 만나 꽃이 되려 했다면. 진실로 바람을 만나 바람이 되고 죽음을 만나 죽음이 되려 했다면. 누구나 자신이 오를 저 높은 정신의 설산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이 있으리요만 그래도 위안을 갖는 것은 머리 조아리는 이는 이미 가면을 벗었기 때문 아닌가요. 사원을 나서면, 구원의 약속보다 반성의 힘으로 가뿐해지는 것. 일어나세요. 살다보면 또 다시 사칭할 날도 오겠지요. 많이는 말고 병아리 눈꼽만큼만 사칭하고, 주먹같이 반성하며 살자고요. 세상의 제왕을 참칭(僭稱)하지는 말고 슬프게 조금씩만 사칭하며 살자고요. 그럼 각자 죄 짓고 사원에서 다시 만나요.'

- 반칠환 : 시선집 '내게 가장 가까운 신, 당신'(백년글사랑)중에서

나는 사람과 어울리려 사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꽃과 어울리려 꽃을 사칭하였고
는 바람처럼 살려고 바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늘 사철나무 같은 청춘이라며 사철나무를 사칭하였고
차라리 죽음을 사칭하여야 마땅할
그러나 내일이 오면 나는 그 무엇을 또 사칭해야 한다
슬프지만 버릴 수 없는 삶의 이 빤한 방법 앞에 머리 조아리며

- 김왕노 :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천년의 시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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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2. 00:50
[]

시를 읽을 때면 늘 나는 시인이 된다. 시를 쓰기 위해 싯귀를 떠올리고 있을 당시의 시인의 눈에 비친 정경,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온갖 상념들을 떠올리며 공감하려고 애쓴다. 내가 시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곤 이것밖에 없다.

'머나먼 다리 위에 매달린 채 음산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달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에 아련한 현기증을 느낀다. 추억속의 연인과 벌였던 모든 행위가 남긴 것은 오직 절망뿐. 차라리 꿈이였다면. 아득한 기억들이 눈물을 짜내려는 듯 목을 조른다. 그도 나처럼 외롭고 고독하겠지? 그도 나처럼 절망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억울해. 아냐, 이건 너무 유치한가? 아, 어떡하지, 시간이 지나면 이 원망섞인 절망도 차츰 사그러들까?'


흥, 이건 아직 어린 최승자군. 가녀린 달빛에서조차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속이고 있어.

추억이 컹컹 짖는다
머나먼 다리 위
타오르는 달의 용광로 속에서
영원히 폐쇄당한 너의 안구,
물 흐르는 망막 뒤에서
목졸린 추억이 신음한다

그 눈 못 감은 꿈
눈 안 떠지는 생시

너희들 문간에는 언제나
외로움의 불침번이 서 있고
고독한 시간의 아가리 안에서
너희는 다만
절망하기 위하여 밥을 먹고
절망하기 위하여 성교한다.

- 최승자 : 시집 '이 時代의 사랑(문학과지성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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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25. 21:49
[]

시를 읽으며 시인의 눈에 비쳤을 정경을 한 번 상상해 보자. 늪 한 구석 진흙 위에 점점이 흩뿌려진 빗방울 자국들을 보며 생긴지 1억 4천만 년이나 되었다는 이 곳을 차례대로 거쳐갔을 늪의 주인들을 떠올려 본다. 오랜 세월 동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고 후대의 새주인들에게도 여전히 넉넉함을 베푸는 우포늪이기에 혹시 어딘가 옛 주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돌아오는 길, 밤안개 자욱한 길가에는 쑥부쟁이들이 제멋대로 돋아있고 시인이 내쉬는 입김은 그대로 안개가 되어 주위를 맴돈다. 문득 시인은 생각한다. 우리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동안 남기는 흔적이 바로 저 입김과도 같은 게 아닐까. 1억년 전 공룡의 눈물방울이 돌고 돌아 다시 빗방울이 되어 쑥부쟁이 잎사귀를 얼룩지게 하고 지금 나의 입김은 안개가 되어 그 주위를 맴돈다. 결국 자연에게 있어 삶과 죽음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한 마리의 아브락사스일 뿐 아닌가!

창녕 우포늪에 가서 만났지
뻘 빛 번진 진회색 판에
점점점 찍혀 있는 빗방울 화석.
혹시 어느 저녁 외로운 공룡이 뻘에 퍼질러 앉아
감춘 눈물방울들이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 어려우리.
길섶 쑥부쟁이 얼룩진 얼굴 몇 점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가을 저녁 안개
몰래 내쉬는 인간의 숨도
삶의 육필(肉筆)로 남으리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화석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 황동규 '빗방울 화석' :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지성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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