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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해당되는 글 7건
2008. 3. 12. 17:19

다음은 2006.8.14일자 연합뉴스에 실린 기사이다.

K대학을 졸업하고 토익 905점을 받은 K씨. 그는 대학에서 영어듣기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비교적 높은 토익점수 덕분에 회사에서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영어에 자신이 있던 그였지만 햄버거 가게에서부터 벽에 부딪혔다. 종업원이 영어로 "갖고 갈래요, 아니면 여기서 드실래요?"(Here or to go?)라고 묻는 말을 단번에 못 알아 듣고 다섯 번이나 "다시 말해 주실래요?"(Pardon me?)라는 말을 반복했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 그 말을 하는 종업원은 "히어로고"(Herogo)로 웅얼거리며 빠르게 발음했기 때문에 햄버거가게에 생전 처음 들어간 그가 그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은 당연했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식은땀을 흘렸다. 중고등학교에서 6년간 영어를 공부했고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햄버거 하나 사먹게 하지 못하는 한국의 영어교육에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분이라면 이 기사를 보고 선뜻 고개를 끄덕거릴지도 모르겠다. 또 영어 듣기와 관련하여 인구에 회자되던 유명한 일화로는 "Freeze!"(꼼짝 마)와 "Please!"를 구분하여 알아듣지 못하고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유학생의 얘기도 있지만 이 기사에서처럼 이런 개인적 경험들과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밑그림을 연관지으려 하다가는 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더욱이 요즘 개나 소나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국가경쟁력'에는 듣기, 말하기 보다는 읽기, 쓰기가 훨씬 더 중요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왜일까?

사업(Business)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미국의 햄버거가게에서 햄버거 주문할 일이 더 많을까, 아니면 한국의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Ebay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아 주문할 일이 더 많을까? 물건을 수출한다고 치자. 물건을 팔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목록(catalogue), 설명서(manual), 계약서(contract document), 신용장(Letter of credit)이나 각종 라이센스(license) 등 온갖 서류들이 아니던가? 물론 바이어를 직접 만나 상담하고 접대할 일도 있겠지만 보통의 상황이라면 결국 서류들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라면 말은 좀 어눌해도 문서로 된 준비(paperwork)들이 확실한 쪽에 더 신뢰가 갈 것 같다. 말도 유창하고 문서작업도 잘 해낸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말이다. 요즘 이메일을 통한 각종 서류나 서신, 파일들의 교환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읽기, 쓰기의 중요성은 여전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햄버거가게에서 주문하는 것 따윈 미국의 거지(homeless)들도 유창하게 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동대문이나 이태원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또 필요한 만큼의 수준까지는 영어, 일어, 러시아어, 중국어도 문제없이 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중에서 어떤 분야에 무엇이 얼마나 실제로 필요한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노릇이다. 진짜 실용주의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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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12. 04:14
블로거뉴스에 올라와 있는 "두잉베스트 그 말 뜻을 아무도 이해 못했습니까?"라는 글을 읽고 술기운을 빌려 몇 자 적어 본다. 우선 2MB 당선인께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을 직접 소개하시면서 말씀하신 'doing best'라는 표현에 대해서 어색한 표현이네 엉터리 문법이네 하는 지적에 대해서는 윗글의 내용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대답을 하고 싶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배운 사람치고 말하는 이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 이도 있을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윗글에서 주장하는 바대로 2MB 당선인의 저런 언행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과연 단순히 말꼬투리를 잡으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도 나름대로 영어를 잘하는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일상 대화에서는 영어를 섞어쓰지 않으려고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다. 우선 대화의 상대방이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커다란 실례일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재차 설명해야하는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령 영어에 능숙한 사람과 얘기를 할 때라도 평소에 영어를 그다지 쓸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우리말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 표현을 영어로 말했을 때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는 기색이 역력해 천박한 과시욕을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면 대화의 분위기 자체를 어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우리말보다는 영어가 더 이해하기 편한 외국인이라든가 교포 2세라든가 하는 경우라면 부담없이 영어를 사용한다. 솔직히 오늘도 술자리에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포지셔닝(positioning)' 등의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이런 단어들은 마땅한 우리말 순화어를 떠올릴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한 예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런 단어를 쓰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했기 때문에 전혀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도 했다.

다시 원래 2MB 당선인의 발언으로 되돌아가 보자. 모 언론에서는 기사를 내면서 'doing best'를 'doing their best'라고 친절히 교정까지 해주었다는데 이건 정말 anti-2MB스러운 짓이 아닐 수 없다. 특정 학연과 특정 지역에 대한 2MB 정권의 '몰입'까지도 '실용주의'와 잘 어울린다며 지난 정권에 대한 언론의 '코드인사 난리 부르스'를 떠올리며 뭔가 미심쩍어 하는 국민들을 대신 나서서 잘 다독거려 주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 뭐하러 책잡힐만한 교정을 해주느냔 말이다. '경제적인 영어(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를 구사하는 '실용주의'라고 하면 될 것 아니겠는가? 아니 차라리 교정이 아니라 2MB 정권의 '실용주의'를 앞장서 받들고자 하는 언론의 사명에 발맞춰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는 쉬운 우리말로 옮겨주면 그만이다. 그 뜻을 이해하면 됐지, 표현이 무슨 상관인가.

문제는 'doing best'가 어색한 표현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필자는 'doing best'도 그다지 틀리거나 어색한 표현이 아니라고, 단어 하나 빠진 게 뭐 대수냐고 얼마든지 아량을 베풀 수 있다. 이런 아량은 대번에 그 표현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만은 있다. 2MB 당선인이 저런 '실용 영어'를 대체 어떤 상황에서 구사했는가에 대한 불만이다.

가령 '오렌지'를 '오륀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프렌들리'를 '후렌들리'라고 부르지 못하여 가슴에 한이 맺힌 듯한 이경숙 위원장이나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내정자와 사사로이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저런 표현을 썼다면 매우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말이 어색해도 이심전심으로 서로 뜻이 절로 통할 것이니 상상만 해도 얼마나 정겨운 광경인가! 하지만 2MB 당선인께서 'best of best', 'doing best'라는 'Survival English'를 구사한 곳은 언론을 통해 비서관 내정자들을 국민들에게 직접 소개하는 자리였다. 즉 2MB 당선인의 말을 직접 듣는 사람들은 유식한 기자들이었지만 그 뜻이 궁극적으로 전달되어야 하는 대상은 국민들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위에 인용한 블로거뉴스 제목대로 '진짜 아무도 이해 못했습니까?'라고 자신있게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그런 것도 이해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한 번 물어보자.
 
'그런 걸 이해 못하면 국민도 아닙니까?'
 
'자식들 위해 촌에서 농사나 짓고 새벽같이 바다에 나가 고기나 잡느라 제대로 학교도 못 다니신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이해할 수 있도록 대통령 당선인께서 쉽게 얘기를 해주시면 안되는 겁니까?'

저렇게 얘기를 하면 일단 화부터 나겠지만 조금 더 냉정해지자. 많은 언론 기자들이 모인 공개석상(on the record)에서 쉬운 우리말이 있음에도 굳이 영어를 쓴 것은 이경숙씨와 이주호씨에 대한 2MB 당선인만의 신뢰의 표현이였으리라. 어떤 반대가 있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자신의 불도저식 의지를 나타내고자 함이리라. 이게 바로 CEO 대통령이 추구하는 국민 길들이기 방식이리라. 어떻게든 공천을 받거나 한자리씩 해보겠다는 기자들이 길게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언론에서 꽹과리만 좀 울려주면 그만이리라.

작년 프랑스에서는 '사르코, 어메리칸(미국인 사르코지)'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친미주의적 성향이 매우 노골적인 사르코지 대통령이 당선되어 부시 대통령의 사저인 텍사스의 크로포드 목장으로 초대를 받았었다. 과거 부시 정권의 맹방인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크로포드 목장에 초대를 받았을 때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초대를 받지 못한 것을 견주어 한미관계에 적신호가 울렸다는 정신나간 언론 보도가 있었을 만큼 이 크로포드 목장 초대는 부시 정권에 대한 우방국의 충성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이용된다. '미국인 사르코지'라는 별명에서 이미 감을 잡은 사람도 있겠지만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영어에 대단히 능통하여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사적인 비공개 대화(off the record)에서는 영어로 그 친교를 다지는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머지 않아 부시 대통령에게 초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2MB 당선인께 나는 권고한다. 2MB님의 그 영어, 제발 크로포드 목장에나 가서 쓰시라고 말이다!

(이미지 설명 : 크로포드 목장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 I will doing best."라는 말을 건네며 파안대소하는 2MB 대통령, 이미지는 알아서 그냥 상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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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2. 21:32

아까 <다음 아고라>에서 영어 정책에 관해 벌어지는 다양한 공방을 구경하다가 흥미를 자극하는 댓글을 발견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엉성하게 빨간 줄 긋는 정도가 제 포샵질의 한계입니다


위에 소개된 댓글의 내용은 다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 보신 얘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저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 들어 본 것도 같고 영어 선생님께 들어 본 것도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그 옳고 그름에 대한 의문도 좀처럼 품지 않을 거라는 제 짐작이 맞는다면 일종의 상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과연 이 상식은 맞을까요?

우선 '노랗다'라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우리말 형용사들을 사전을 통해 찾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랗다, 뇌랗다, 샛노랗다, 싯누렇다, 감노랗다, 연노랗다, 누르다, 누르스름하다, 누릇하다, 누름하다, 노르께하다, 노르칙칙하다, 노리끼리하다, 노르끄무레하다, 노르끼레하다.

겨우 5분 정도의 시간을 인터넷 국어사전에 투자해서 찾을 수 있는 표현만도 15 가지나 되는군요(각 단어의 정확한 뜻과 뉘앙스(어감)의 차이가 궁금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영어사전 펴 보는 수고의 1/10 정도만이라도 한 번쯤은 국어사전에 투자해 보시라는 의미에서 직접 찾아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그렇다면 영어로 '노랗다'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은 몇 개나 있을까요?

yellow(노란), yellowish(누르스름한), xanthous(노르스름한, 황인종의), amber(황갈색의, 호박색의), bisque(분홍빛이 도는 황갈색의), blond(금발색의), buff(담황색의), chrome(크롬 황색의), cream(유황색의, 우유빛 황색의), gold(금색의), ivory(상아빛 황색의), lemon(레몬빛 담황색의), maize(옥수숫빛의, 담황색의), orange(어륀지색의, 참고로 2MB정부의 시책에 적극 호응하는 마음에서 이 단어만큼은 이제 어륀지라고 쓰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saffron(사프란색의, 선황색의), sand(모래빛 황색의), tawny(황갈색의)

놀랍게도 '노랗다'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영어 형용사는 오히려 우리말보다 두 개 더 많은 17 가지나 됩니다. 물론 우리말 표현과 마찬가지로 5분 정도의 검색을 통해 작성한 목록이기 때문에 우리말이든 영어든 제가 빠뜨린 단어들도 상당할 겁니다. 그렇지만 흔히들 믿는 것처럼 '우리말은 다양하고 섬세한 표현이 많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다'라는 상식(?)이 여지없이 무너지기에는 충분해 보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표현들을 실제 대화나 글에서 사용한다고 할 때 우리말과 영어 중 어느 쪽이 노란색의 '정도'나 '차이'를 더 뚜렷이 느끼게 하면서 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요? 한국인으로서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공정한 심판이라면 역시 영어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감이 오십니까?

보르헤스의 유명한 단편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 나옵니다.
 
"<우르스프라헤(원초적 언어라는 뜻의 독일어)>에는 명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명사는 형용사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둡고 둥그런 위에 있는 허공의 밝은>, 또는 <하늘의-어륀지빛의-부드러운>, 또는 다른 집합의 방식으로 달을 말한다"


보르헤스는 인간의 모든 문화적 행위를 언어의 파생물이라 전제하고 특히 인류 문명사는 곧 명사 축적의 역사라는 시각을 견지합니다. 난학(蘭學, 네덜란드학)과 영학(英學, 영국학)을 공부했던 19세기 일본의 많은 계몽사상가들이 자신들의 문화권 내에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서양의 생소한 명사들과 그 개념을 수용하는데 있어 주저함이 없었기에(예컨대 모리 아리노리는 society를 사회라는 신조어로 니시 아마네는 science를 과학이라는 신조어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걸 지금의 우리도 쓰고 있는 셈이죠) 본격적으로 명사 축적국의 대열에 합류하는데 성공하여 지금은 오히려 과거 자신들의 교사였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을 압도하는 수준(예를 들자면 현재 우리가 흔히 쓰는 '환경호르몬'이라는 말도 일본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단어라고 합니다)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명사'가 현대 문명의 척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자 이쯤되면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영어가 우리말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이냐?' 하고 속으로 되뇌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물론 이런 질문을 실제로 던졌던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라고 권해 드리고 싶지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현대 문명의 발전 경향을 고스란히 반영할 수 있는 우리말 명사의 숫자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명사를 꾸준히 만들어 내는 문화권으로부터 명사들을 끊임없이 수입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무엇일까요?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를 이미 많은 분들이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시고 저 또한 이미 했던 얘기이지만 되풀이를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교육이 그야말로 백년지대계라는 본뜻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명사들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진 인재들을 기르는데 온 힘을 다 쏟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명의 한 축인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와 함께 창의력, 창발력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전제된 상태에서 고도의 추상화를 가능하게 하는 논리적 사고력에 대한 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걸 학교의 과목으로 풀어내면 예술, 인문, 국어, 수학, 과학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과 장려가 쏟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발, 영어가 아니라구요!!!(그렇다고 해서 명사들을 제대로 수입하는 일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족. 사실 제가 꼬집고 싶었던 부분은 대체 왜 이런 잘못된 상식이 끊임없이 공공연하게 재생산되는가 하는 문제였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또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네요. 그래도 생각에 칼을 못 대서 난삽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문체를 벗어나려고 무진장 애쓰는 중입니다. ^^; 원래 쓰려했던 내용을 잠깐만 소개하자면 그런 문제의 원인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허세'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에 있다고 보고 그놈의 허세가 대체 무엇인가 한 번 써 보고 싶었죠.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자국에 조선을 알리면서 이구동성으로 했던 얘기가 바로 '조선인들은 허세부리기를 좋아하고 허례허식을 중시한다'였거든요. 생산적인 반성과 파괴적인 자학을 구분 못하는 오류에 대해서도 말할 거리가 있을 듯하고요. 그리고 문자 체계로서의 한글과 언어 체계로서의 한국어를 구분 못하는 분들이 가끔 보이시던데 왜 그런 분들이 자꾸 생기는지 단순히 교육의 문제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가 누가 좀 써줬으면 좋겠어요.

덧붙임. 본문에서 우리말의 예는 '노랗다'라는 한 단어의 활용인 반면 영어의 예는 yellowish를 제외하고는 각자 다른 단어들인 명사형 표현들을 열거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글쓴이인 제가 첨가어인 우리말의 특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활용'의 의미를 너무 좁게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잘못입니다.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여 의사를 소통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문화와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앞에서 인용했듯이 아예 문화는 언어의 파생물이라는 주장도 있지요. 언어의 우열을 비교하기 힘든 것은 바로 그런 탓입니다. 제가 본래 말하려고 했던 취지는 우리말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말이 더 뛰어나다고 허세부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문자체계로서의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찬사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댓글로써 이 글의 잘못을 지적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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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28. 08:17
오늘자 중앙일보 관련 기사

아침부터 이런 어이없는 기사를 보니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다. 억지스러운 대운하부터 시작해서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뿐이다. 조기유학 못 보내고 비싼 사교육 마음 편히 못 시키는 부모들의 억장을 무너뜨리려고 아주 작정을 한 듯하다. 아니 진정 국가 경쟁력 강화를 바란다면 왜 영어 교육요원 제도만 구상하고 수학, 과학, 예술 교육요원 제도는 구상하지 못하나?

영어 몰입교육에 관한 마무리 포스트는 천천히 더 정리해서 쓸 생각이지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히기 위해서라도 교육과 국가 경쟁력에 관해서는 한마디하고 넘어가야겠다. 교육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 경쟁력에만 눈이 멀어 교육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다른 가치들을 무시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고 양자를 병행하여 추구하는 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선진화된 교육 정책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어떻게 교육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얘기가 옆길로 새나갈 것이라 보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지만 21세기 국가 경쟁력을 키워드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바로 창의성과 그것을 실현해내는 힘이다. 즉 창의성을 바탕으로 그 위에 추상적, 논리적 사고력을 다지고 거기에 다시 꾸준한 연구개발 노력이 더해져서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발전시켰을 때 비로소 진정한 국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학교 교육과 연계시켜 말하자면 장차 우리나라 교육의 중점은 영어가 아니라 예술과 인문학 그리고 수학, 과학에 둬야 한다는 말이 된다.
 
기능주의적 관점(각종 정보를 습득하는 매개언어로서의 영어)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회화 지상주의를 부르짖는 2MB 정부의 천박한 영어정책과는 거리가 있다. 비속하고 남루한 일상의 회화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 어떻게 영자신문을 읽고 또 어떻게 전공서적을 읽어내겠느냐는 말이다.

덧붙여 상식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설익은 이런 정책들이 남발되는 것도 문제지만 쉽게 말을 뒤집으면서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인수위의 오만한 태도도 매우 불만이다. 인수위 브리핑 때 해명을 하면서 걸핏하면 '국민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운운하는데 대체 뭐가 오해고 또 어떻게 해야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있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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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27. 14:41

지난 대선에서 2MB이 당선되었을 때 경제에 대한 전국민적 열망이 다른 모든 것들을 압도한 결과라고 규정 지은 적이 있다. 또 2MB의 승리는 이념 갈등이나 과거사 청산과 같은 당위적 주장들에 염증을 내던 국민들의 마음을 잘 파고든 실용주의 노선의 승리라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이런 얘기들이 나올라치면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형편이지만 2MB식 실용주의를 소박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포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2MB 실용주의의 이면에는 저급하게 이데올로기화된 힘의 논리가 깔려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로 포장된 저급한 '힘의 논리'란 다름이 아니라 힘 자체를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이데아적) 징표로 여기는 경향을 일컫는다. 즉 힘을 지고지선한 대상으로 바라보고 숭앙하며 힘 자체에서 모든 가치가 도출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도 서슴지 않는 세태가 배어있다는 뜻이다.

'자본=힘'의 등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의미를 띄게 된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들에게는 천형과도 같은 멍에일지도 모르겠지만 대선이 끝난 후 조그맣게 메아리치다가 사라진 배금주의(mammonism)와 물신주의(fetishism)에 대한 냉소도 '목적=힘=자본=경제'의 거친 등식을 위해서라면 수단이나 절차는 무시해도 좋다는 '힘의 논리'를 우려한 자성의 목소리였을 게다.

주의할 점은 이 '힘의 논리'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펼쳐지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힘의 논리'가 '힘'을 얻는 것은 대중들에게 투영된 현실(비록 동원된 각종 상징들과 선전 선동에 의해 조작된 현실이라는 측면도 존재하지만)의 응당한 산물이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바람직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예컨대 수단과 절차를 무시함으로써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소기의 성과를 일궈내는 한편 유신을 추진했던 박정희식 개발 독재나 흑묘백묘론을 통해 중국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어내는 한편 천안문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했던 덩샤오핑식 사회주의 독재가 바로 그런 예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례들을 열거하며 우리가 본받고 뒤따라야할 비전으로 제시한다면 이것은 과거로 퇴행하자는 얘기와 다름이 없다. '수단과 절차를 무시한', '독재'라는 용어의 사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러한 '힘의 논리'는 민주주의 원칙과 배치될 때가 많다. '힘의 논리'를 이데올로기화시키면('자본의 논리'에 지나치게 경도되면) '잘 먹고 잘 살자는 데 왜 그리 융통성이 없느냐 또는 왜 그리 공허한 당위를 들먹이며 딴죽을 거느냐'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지배적으로 자리잡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는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지킬 것은 지켜 가면서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말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꿈꾸던 선진국이며 얼키고 설킨 분열과 갈등의 양상을 통합하고 조정해나가면서 동시에 이용후생(利用厚生)을 도모하는 진정한 21세기형 실용주의 리더쉽이다.

자 이제 다시 영어 몰입교육에 관한 논의로 돌아와 보자. 앞서 이 '힘의 논리'가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시킬 때는 단호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원칙 뿐만 아니라 '힘의 논리'가 배제되어야 할 곳은 또 있다. 바로 교육의 장이다. 공리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교육을 통해 비반항적이며 효율적인 톱니바퀴형 인간을 양산하는 것을 꿈꾸던 사상가나 자본가들이 대종을 이루던 시절이나 사회가 존재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 이런 식의 공리주의는 흥정이나 계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측량할 수 있는 효용이나 이득이라는 관점으로 치환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의의 원리가 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이 널리 퍼지고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서 어설프게나마 시도됐던 그런 소수의 반란은 전인교육이라는 그리스적 이상의 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힘의 논리를 통한 호소나 드라이브(추진력)는 분명히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카드이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고 원칙을 따져 적용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진정한 융통성이며 실용주의다. 힘의 논리에, 자본의 논리에 함몰되어 다른 가치들에 대한 시선을 거두게 되면 교조주의나 별반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2MB의 영어 몰입교육 정책은 영어교육에 대한 천박한 인식과 함께 힘의 논리의 무분별하고도 몰지각한 확장을 보여준다. 마치 영어교육의 목표가, 아니 교육의 목표가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것에만 있다는 듯 올인해야(모든 걸 다 걸어야) 한다는 맥락밖에는 엿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영어교육에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의 원인에 대한 처방이 판이하게 다를 뿐이다. 필자는 영어교육, 영어에 대해 방법론적인 차원에서의 검토가 아닌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인식의 일대 전환, 즉 영어에 대한(서구에 대한, 미국 국적의 중산층 백인에 대한) 기존의(일본식의) 미신과 환상을 깨뜨리며 병든 노예근성을 탈피해 건강한 자유정신으로 성장하는 혁명적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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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27. 07:52
얼마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했다는 '영어 몰입교육' 도입 정책이 온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이나 정책의 구체적 목표, 배경 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엘 가보았으나 관련 자료를 전혀 찾지 못하겠기에 그저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만을 토대로 술자리에서 오고 갔던 얘기들을 남은 술기운을 빌어 여기 적어 본다. 실제로 시행될 새 정부의 교육 정책으로서 어떤 현실적인 고려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가의 문제, 즉 선생이 있느니 없느니 또는 2년 내에 되니 안 되니, 아니면 사교육이 정말 줄어들까 말까 하는 등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포스트들이 다루고 있으므로 한국에서의 영어, 그 자체에 대해서 서투르지만 몇 줄 적어 볼까 한다.

우선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영어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와 사례들을 열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지나친 영어 열풍이 사회적 병리현상의 일종이라는 지적에도 쉽게 수긍하는 것 같다. 편의점 알바를 뽑는 데도 토익 성적을 따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어떤 직업을 갖든지 간에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영어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불안과 우려의 심리가 만연한 반면 영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따낸 사람들도 취직 이후엔 가끔 잘난 체 하는 용도로 쓰는 것 외엔 정작 생활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는 용도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영어에 대해 실질보다 지나친 가치가 부여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형편없이 부족한 지경인데 영어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다니 대체 무슨 말이냐라고 반론을 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이런 사람들이 드는 예들을 보면 대개는 '외국인 관광객이 와서 시내에서 택시를 탔는데 말 한마디도 똑바로 못하고 못 알아듣더라, 이게 바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주소다.' 라거나 '대학의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햄버거를 주문했는데 Here or to go?(여기서 드실 건가요 아니면 갖고 가실 건가요?)라는 말 한마디를 못 알아들어서 Excuse me?(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실래요?)를 대여섯 번씩 반복해야 했다더라, 이 얼마나 엉터리 영어교육이냐.'라는 식이다.

이런 사례들은 일견 일리있게 들릴 수 있지만 실은 명백히 잘못된 지적이다. 어떤 분야든 손만 댔다하면 뛰어난 두각을 보이는 한국 사람들이 왜 영어만은 그렇게 엄청난 공과 노력을 들이는 데도 이렇게도 못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먹고 사는데 영어가 실제로 필요하거나 영어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살면서도 그런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예컨대 이태원이나 동대문 상인들을 떠올려 보자. 많은 외국인들을 접하면서 물건을 팔기 위해 당장 외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 사람들은 제대로 영어 교육을 못 받은 이들이 많지만 자신들이 필요한 한도 내에서 의사 소통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심지어 영어 뿐만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까지도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물론 거래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그렇기 때문에 앞의 햄버거 가게 사례는 FOB(Fresh Off the Boat, 외국에서 갓 건너온 사람에 대해 발음 등이 이상하다며 미국인들이 얕잡아 이르는 말) 주제에 겨우 햄버거 가게 점원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우리나라 영어교육을 탓하며 'Pardon me?'나 'Excuse me?'만 반복하며 허세를 부릴 것이 아니라 'Please speak slowly, so that I can get you right(알아들을 수 있게 천천히 말해 주세요)'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며 택시 기사의 사례도 인천 국제공항에서 외국인만을 주로 상대하는 택시 기사들은 초짜가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 자신들의 영업에 필요한 영어나 일본어 만큼은 가능할 테지만 그들과는 달리 일 년에 외국인 한 번 태울까 말까 하는 택시 기사들한테는 영어구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택시 기사들 같은 경우는 가령 그분들을 한 달 동안 가둬놓고 2MB식 '영어 몰입교육'을 시킨다 해도 외국인 태울 기회가 없어서 안 쓰면 금방 잊어버리는 게 또 정상이다. 그게 바로 언어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답을 두고도 본말을 전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관광을 예로 들어 보자. 위에서 택시 기사의 사례도 언급했지만 영어가 안 통하기 때문에 영어권에서 관광 오기를 꺼려한다는 주장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보다 영어가 더 잘 통하는 필리핀은 영어권 관광객이 영어 때문에 훨씬 많이 찾아 오나? 우리나라보다 영어가 더 안 통하는 일본은 영어 때문에 영어권 관광객이 훨씬 더 적나? 아예 싱가포르나 홍콩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나라 영어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사람들은 영어가 네 가지 공용 언어(중국어, 영어, 말레이어, 타밀어) 중의 하나인 싱가포르는 영어가 공용어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드는 국제 무역허브로서 큰 장점을 갖고 있고 마찬가지로 홍콩도 비슷한 이유로 국제 금융, 무역허브로서 기능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정말 영어 때문인가? 아니 영어가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렇게 따진다면 서울과 비슷한 환경을 갖춘 도쿄는 어떤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도쿄도 영어 때문, 아니 영어가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어는 그저 다른 주된 요소에 옵션(선택사항)으로 따라붙은 하나의 어드밴티지(장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하는 이유이다.

서론이 길어지는데 본론은 일단 한숨 자고 다음 글에서 술 좀 깨면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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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17. 04:08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 악플러는 근래에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한문(惡)과 영어(reply, -er)가 조합된 이 단어는 대한민국 인터넷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기 때문에 아직 국어사전에 등재는 되지 않았지만 거의 토착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영어에서 이 '악플러'는 어떻게 표현할까요? 영어권에서도 '악플'이라는 행위 자체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발생한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에 당연히 정식 사전에는 정의가 내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최신의 언어사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속어(slang)사전, 인터넷 용어사전 또는 위키피디아에는 소개가 되어 있답니다.

'악플러'라는 뜻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로는 'troll'을 꼽을 수 있습니다. urbandictionary.com과 같은 유명한 속어사전이나 위키피디아에서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은 'troll'의 정의를 살펴보면 '게시판이나 뉴스그룹 등에서 단순한 재미나 비뚤어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게시물에 대하여 도발적이고도 악의적인 비방이나 도배를 하는 사람으로서 인신공격을 일삼으며 여러 아이디를 바꿔가며 같은 짓을 되풀이 하기 일쑤이다'라고 해놓았군요. 정말 우리말로 옮기면 딱 '악플러'겠네요.

'troll' 다음으로는 'flamer'라는 단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영어 게시판을 이용하다 보면 매우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이 'flame, flamer'인데요. 영어 속어사전을 살펴보면 '욕설이나 모욕적인 언사를 통한 게시글을 주고 받으면서 게시판을 소란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정도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다만 'troll'은 악플이나 도발적인 게시물의 목적이 그야말로 비방 그 자체를 위한 것으로서 성차별, 인종차별, 지역차별, 계층차별 등 온갖 편견을 가리지 않고 이용하는 반면 'flamer'는 어떤 주장에 대한 반대의견을 표명할 목적을 가지지만 그 방법에 있어 예의를 갖추지 않고 모욕적이기 때문에 분란을 일으킨다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도 있네요. 꼭 이런 설명대로 확연히 구분지어 사용하지는 않지만 'flamer'가 'troll'보다는 비난의 정도가 약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같습니다.

그래서 'flamer'를 우리말로 옮기면 '악플러'라기보다는 '싸움꾼, 싸움닭' 정도가 더 정확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악플, 악플러'라는 표현을 상당히 넓게 사용하기 때문에 역시 '악플러'로 옮겨도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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