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 (436)
(14)
時事 (91)
文化 (74)
言語 (13)
科學 (2)
日常 (217)
臨時 (0)
Scrap (15)
中國語 (9)
Beer (1)
Delta (0)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View top news

'대통령과의대화'에 해당되는 글 1건
2008. 9. 10. 03:02

짜여진 연출이든 각본이든 가급적 부정적 선입관을 배제하고 진행되는 질문과 답변 그 자체로만 판단하려고 애쓰며 들었다.

우선 국민과의 대화에 임하는 대통령의 자세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면 별로 좋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에 초점을 맞춰서인지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여유있고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의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보다 진지한 태도가 필요했다. 속된 말로 마치 불난 집 앞에서 실실 쪼개는 얼굴로 불 꺼줄테니 걱정 말아라 하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혹자는 현대통령의 화법을 두고 노무현식 화법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노무현 전대통령은 공감대를 형성시키려는 노력을 먼저 하고 나서 그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자신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피력하는 화법이었고 그런 공감대 형성 여부에 따라 호불호가 명백히 갈렸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전개 과정이나 청자의 입장에 대한 역지사지의 노력이 거의 없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화법이기 때문에 비슷한 듯 보이는 두 사람의 화법은 차이가 크다. 예컨대 어려웠던 자신의 청년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문제 질문자나 촛불시위 관련 학생의 질문에 대해 마치 공감하는 양 말했지만 근본적으로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용이었고 실제로 그 공감의 정도도 매우 부박해 보였다. 이번 정권에서는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며 본말을 전도하는 언론들이 안 보여서 망정이지 지금까지 보여준 대통령의 경솔한 언사나 항상 오해라는 뒤치닥거리가 필요했던 말실수들이 국민들에게 남긴 나쁜 인상을 생각한다면 이번 국민과의 대화 역시 코디네이팅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그 다음 경제분야 질문 중 경제위기설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평을 하자면 말장난의 달인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듯 싶다. "제가 평소에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온 세계가 어렵고 모두 어려울 때 경제 주체나 공직자들에게 긴장감을 주려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경제 위기를 강조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힘을 실어줘 선진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논리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여러가지 이권이 걸린 정책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가도 그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고 물으면 위기는 사실 없는데 축 늘어진 말을 하면 긴장감이 떨어지니까 위기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말인지 막걸린지 알 수 없는 대통령의 말씀이다. 단기 외채와 관련된 9월 위기설만 놓고 보자면 제 2의 IMF라는 둥 마치 디폴트 상황이 생길 것처럼 과장되어 옮겨진 소문들은 터무니없는 얘기였지만 페니매와 프레디맥에 묶인 채권의 상환시기에 관한 유동성 문제로 인한 시장의 위기의식이 그 발화점이었기에 전혀 근거없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게다가 국민의 입장에서 체감 경제 상황만 놓고 보면 위기라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현실 아닐까. 대통령은 국민들이 느끼는 바와 별 다를 바 없이 느낀다고 말은 하지만 역시 동떨어진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쩔 때는 꾸중이 듣기 싫어 끊임없이 변명하는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팀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완전히 동문서답이었다. 계속된 경제팀의 엇박자와 헛발질에도 불구하고 무한정 신뢰를 보내는 근거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막연히 그냥 너무 자주 바꾸면 안 좋고 현 경제팀이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도 없다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말문이 막혔던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 질문을 던졌던 이숙이 시사IN 뉴스팀장이 '강만수 장관과는 소망교회 30년 지기라서 그렇다'라는 대통령의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하지는 않았겠지만 대충 얼버무리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장면에서는 혹시 정말로 그런 것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혀끝에서 맴돌았을지도 모른다.

8월 15일 광복절 축사를 통해 대통령이 제시했던 '녹색성장'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유창선씨의 질문에도 고스란히 핵심을 비껴간 대답이 이어졌다. 말장난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킬만한 어떤 구체적인 준비나 방안이 있느냐는 물음이었는데 일자리가 3배로 늘어나면서 소득분배가 균등화된다는 둥 근거도 알 수 없는 허황된 소리만 되려 더 늘어놓고 탄소배출권 얘기를 꺼내는데 탄소배출권에 관한 내용이 구체화됐던 교토의정서에 비준도 하지 않은 미국이나 교토의정서에서 아예 탈퇴하거나 탈퇴를 고려 중인 호주, 일본을 연거푸 들먹이는 모습을 보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탄소배출권이 녹색성장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는 지엽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고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준비에 대한 언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국의 실정에 맞는 환경기준을 장차 어떤 식으로든 이뤄질 전세계적 환경협약에 반영시키기 위해 국제적 역학관계에 따라 이합집산, 합종연횡하는 냉엄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라도 엿볼 수 있었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대통령 말마따나 우리나라가 친환경제품을 생산해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또 그에 따른 과실을 맛보려 한다면 당장 들뜨게 만드는 꿈같은 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먼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또 개별 경제주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부터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논의를 해야할 터이다.

또 등록금 대출 금리에 대한 질문을 했던 대학생이 추가 질문을 통해 대선 당시 반값 등록금 공약에 대해 묻자 자기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며 횡설수설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실소를 금하지 못했는데 교육 정책과 관련한 질문에서 또다시 과외 없이도 대학을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둥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그야말로 반값 등록금 공약이나 진배없는 오십보 백보의 허풍을 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대체 현대통령이 말로 못하는 것은 뭐가 있을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현실 인식 자체는 일반적인 인식과 동떨어지지 않았지만 결국 빅파이론을 핑계로 기업편을 들 수밖에 없으니 떡고물이라도 조금 얻어먹으면서 기약없이 참고 기다리라는 얘기였고 정치보복과 관련한 공권력 중립 문제는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할 얘기였다. 개중에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얘기는 농어촌 대책 문제였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행정구역 개편 문제는 그 필요성이나 시의성이 구체적으로 와닿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됐다.

요약하자면 이번 '대통령과의 대화'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기에는 너무나 미흡했고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도 어설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사기꾼은 영원한 사기꾼이란 말이 국민들 입 밖으로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대통령이 꺼냈던 얘기들이 많이 실천되고 또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탄식을 멈추고 TV를 껐다. 이 정권 하에서는 잘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하든지 아니면 이잡듯이 압수수색을 당한 뒤 구속을 각오하든지 이 두 가지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는 만큼 당장은 잘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수밖에...물론 정말로 잘 해준다면 아낌없이 박수를 쳐줄 준비도 어느 정도 되어 있지만 말이다.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