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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1. 00:44

Top Scientist: Another Fukushima Quake Would Mean US Evacuation, ‘Bye Bye Japan’

Award winning scientist says another 7.0 earthquake hitting Fukushima would mean US evacuations, ‘bye bye Japan’.


Award winning scientist David Suzuki has gone on record in a public talk posted online just days ago in saying that in the event of another seven or above earthquake, which he says has about a 95% chance of occurring over the next three years, it would mean a complete evacuation of North America and ‘bye bye Japan’.



“I have seen a paper which says that if in fact the fourth plant goes under in an earthquake and those rods are exposed, it’s bye bye Japan and everybody on the west coast of North America should evacuate,” he said.


As a recipient of 16 significant academic awards and a host of the popular CBC Television program entitled ‘The Nature of Things’, Suzuki was a headline speaker at the ”Letting in the Light” scientific symposium that was focused around water ecology at the University of Alberta. But instead of simply discussing marine or freshwater ecosystems, Suzuki began issuing a very serious warning regarding the future of Fukushima and its overall predicted consequences for the entire planet.


Specifically speaking to the nature of Fukushima’s ticking time bomb, Suzuki began the breakdown of the plant’s numerous threats with stating the very real concept that Fukushima is perhaps the largest threat to both humanity and the planet that we face in the immediate future.


“Fukushima is the most terrifying situation I can imagine,” he said before delving into the issue. ”Three out of the four plants were destroyed in the earthquake and in the tsunami. The fourth one has been so badly damaged that the fear is, if there’s another earthquake of a seven or above that, that building will go and then all hell breaks loose… And the probability of a seven or above earthquake in the next three years is over 95 percent.”


And it’s that 95% chance of another seven or above earthquake within the next three years that signals a completely dark scenario. But, as right as Suzuki is on this entire issue, he is also forgetting of another threat — TEPCO’s mission to launch their cleanup operation of the Fukushima site. Specifically, their move to begin the extraction of fuel rods from the fourth reactor at the plant as early as the middle of this month. It is here where we also see yet another looming danger in regards to the cleanup process that is expected to ultimately take decades: the possibility of two rods colliding and generating a massive release of radiation as a result.


Experts like Dr Helen Caldicott have spoken to the media on this subject in the past, stating that:
“Two rods could touch each other in this process which has been done before and there could be a fission reaction and a very large release of radiation.”


Ultimately, the fact of the matter is that the Fukushima plant is teetering on the equivalent of nuclear life support, and the notoriously incompetent plant operators at TEPCO are about to go in and perform surgery. In the event that Suzuki is right, and another earthquake hits within the next three years before TEPCO is able to perform a cleanup (which may very well be even more dangerous) and leads to a complete meltdown, it would absolutely lead to a radioactive disaster internationally — well beyond the United States.


But don’t count on your government health bodies to inform you of the risk, or even tell you how you can better prepare yourself. Instead, they will likely once again start shutting off their radiation counters and raising the allowable limits of radiation in the food supply. For now, it is up to us to prepare ourselves and our family — making an effort also to also spread the word and call on the public to demand action be taken in Fukushima under the guidance of top independent scientists.


1. 발언자 : David Suzuki - 동물학 박사, 전직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의 유전공학과 교수, 환경운동가, 캐나다 CBC TV의 과학프로그램인 The Nature of Things의 사회자


2. 발언날짜 : 작년 11월경


3. 발언장소 : Alberta 대학에서 개최된 Letting in the Light 라는 과학 심포지움의 공개 석상(동영상 참조)


4. 발언내용
1) 향후 3년 이내에 일본 후쿠시마에 진도 7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95%임.
2) 자기가 봤던 어떤 논문에 의하면 1)의 경우 일본은 멸망(bye bye japan)하고 북미 대륙의 태평양 서부 또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 함.


5. 본문의 추가 내용 - Suzuki 박사가 간과한 사실을 지적함
1) 추가 지진 발생 전이라도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봉쇄 작전 중 연료봉이 충돌할 경우 핵분열이 발생하고 광범위한 방사능 누출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함.
2) 정부의 말을 너무 믿지 말고 정부에 종속되지 않은 과학자들의 얘기에 귀를 잘 기울이라 함.
[위 발언의 내용과 연관된 글]

Is The Government Stockpiling Iodine In Preparation for Fukushima Meltdown?


2. 내용 : 미국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에서 방사능 피폭이 예상될 경우 즉각 섭취해야 하는 방사능 피폭예방제 요오드화칼륨(potassium iodide) 1,400만정(20정x70만갑)을 2014년 2월 1일까지 사용가능하도록 주문함.


3 .위 글의 필자가 보건복지부 조달관계자와 한 통화내용
When Anthony Gucciardi called the procurement office of the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he was told that the iodide pills were being supplied to pharmaceutical depots and that the 14 million dose figure was “not out of the ordinary” because iodide pills have a shelf life of seven years and that they were bought in bulk to save taxpayer money, adding that the department also bought “millions of doses of flu” in June.


After the DHHS representative denied that the government was stockpiling the potassium iodide for any particular reason, Gucciardi asked, “Do you have any concerns about Fukushima?”, to which he responded, “I have no idea about any of that….there’s no hidden agenda here.”
“So you don’t actually know why you’re buying it?” asked Gucciardi, a question which immediately prompted the official to say “goodbye” and hang up the phone.


- 통화내용 요약
질문자 : 요오드화 칼륨 1,400만정을 구매한 것이 통상적인 구매냐?
정부관계자 : 그렇다. 우리가 6월달에 독감백신도 수백만 정 샀거든?
질문자 : (요오드화 칼륨 알약을 그렇게 많이 구매한 건)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정부관계자 : 그건 나도 모르겠다, 특별히 숨기고 있는 건 없다.
질문자 : 그럼 당신은 그걸 왜 샀는지 실제로는 모르는 거네?
정부관계자 : 굿바이~ (뚜뚜뚜...)
2013. 5. 15. 19:33

윤창중 때문에 온나라가 한동안 시끌벅적하더니 오늘은 모 연예인의 '민주화' 발언 때문에 또 인터넷이 홍역을 치루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발언 그 자체도 문제이거니와 그 발언 뒤에 드리워져 있는 '일베'의 그림자가 국민들을 당혹시키고 있는데요. 일베는 전라도 비하,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들에 대한 모욕, 여성에 대한 편견 조장, 변태적 성문화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자칭 '애국보수'라는 기치를 내건 파시즘 정치선동 사이트이자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왜곡의 본거지로 유명한 사이트입니다. 며칠 있으면 5월 18일이 되는데요. 다가올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당시 현장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생생히 기록한 글을 한 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글이지만 아직 안 읽어 본 분들을 위해 올려드립니다.


참고로 아래 글의 원저자는 당시 광주에 있던 침례교 목사 Arnold A. Peterson으로 미국에서는 5-18, the Kwangju incident 라는 제목으로 1990년 책을 출간하였고 한국에서는 1995년 도서출판 풀빛에서 미국의 원본을 바탕으로 한글로 된 요약본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원본 아마존 링크> incident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80년 광주 증언록 요약

저자 : 아놀드 A. 피터슨
출판사명 : 풀빛

발행연도 : 1995년 05월 31일



<미선교사 피터슨의 광주항쟁 현장기록>


필자 아놀드 피터슨 목사(50)는 침례교 선교사로 75년부터 81년까지 광주에서 활동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내내 현장에 있으면서 중요 장면을 지켜봤다. 지금은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그는 80년 당시의 메모와 기억을 토대로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록을 작성했다. 2백자 원고지 4백장 분량의 이 증언록은 외국선교사의 현장기록이라는 점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전문을 입수, 주요 내용을 발췌, 소개한다.

5월 18일

뭔가 잘못되고 있다

17일 자정 전두환 소장이 주도하는 계엄사는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졌으며, 공공집회도 금지됐다. 그러나 교회 예배활동은 금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정대로 한민전도대회 프로그램을 추진시켜 나갔다. 한국침례교와 미국 플로리다 침례교협의회는 이날부터 서울 부산 광주 대전 등지에서 일련의 복음전도대회를 열 계획으로 준비해 왔다. 전도대회 단원들이 묵고 있는 관광호텔을 나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점으로 갈 때 우리는 거리를 군인들이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회해서 가야 했다. 주요 거리들은 군인과 전경에 의해서 차단되어 있었다. 몇몇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큰 도로로 나가 시위를 하려다가 전경이나 군인들에게 쫓기는 모습이 보였다. 군인들은 전경과 매우 달랐다. 이들은 시위에 참여하지도 않은 사람들에 대해 터무니 없는 잔혹행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날 이후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바에 의하면 광주 민주화운동은 시위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격화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군인들이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을 향해 잔혹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88년 광주청문회에서 군은 캠퍼스 주변지역에만 주둔하고 있었다고 증언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수부대원들은 도시 전역에 흩어져 있었다. 더구나 그들의 행동은 시위자들을 진압하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런 혐의가 없는 사람들도 무차별하게 공격했다. 한 가지 의문은 언제부터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시민들에게 잔혹행위를 저지르기 시작했는가 하는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18일 오후 5시 30분에 목격한 하나의 사건부터다. 며칠 후 만난 한 청년은 오전 9시부터라고 했다. 그는 다방에 앉아 있었는데 머리에 피를 흘리는 한 사람이 넘어지듯이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수부대원에게 곤봉으로 심하게 맞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5시 30분쯤 우리는 관광호텔 근처에서 20대 청년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말끔한 평상복 차림이었는데 공수부대원들이 그를 둘러싸고선 조사하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앞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멈춰서서 지켜보았다. 공수부대원들은 대검을 꽂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젊은 사람의 갈비뼈, 등, 어깨를 곤봉으로 치기 시작하더니 무릎을 꿇도록 했다. 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으므로 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는 시위에 참가했다는 어떤 물증도 없었으며 대학생으로 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군인들은 계속 그를 때리다가 대검을 불쑥 갖다 댔다. 대검은 그의 목에서 불과 몇 센티 앞에서 멈췄다. 그후 거리에서 이 비슷한 광경을 세 번이나 목격했다. 한 택시운전사는 많은 학생들이 이날 오후에 공수부대원들에게 맞거나 찔려 죽었다고 했다.

5월 19일

그들이 우리 아이들을 죽인다!

광주기독병원과 수피아여고에서 예배를 드린 후 오후 1시 30분경 호텔에 돌아왔을 때, 전도대회 단원들은 나에게 자신들이 목격한 사건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공수부대원들이 많은 젊은이들을 8∼10줄로 나란히 세워 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한 단원은 그 광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곤봉과 개머리판으로 맞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옷을 다 벗기우고 속옷만 입은 채 벨트로 손을 묶인 상태로 맞았습니다. 그들은 트럭에 실려갔습니다. 전경들은 군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광주에는 평화봉사단원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친구들이 시위 학생들 사이에 끼여 있었다. 이들 평화봉사단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가 공수부대원들이 젊은이들을 곤봉으로 치고 대검으로 위협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몇몇 평화봉사단원은 다가가서 팔로 막았다.

그러자 공수부대원들은 다른 사람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외국인을 때리는 것을 피했고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만 골라 때렸다. 전도대회 예배에 참석한 목사부인 두 사람은 군인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때렸다며 울었다. 우리는 모두 극단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학생들 중 일부는 교회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버스는 위험하다며 집에 어떻게 갈지 걱정했다. 버스가 지나가면 강제로 정차 당해 젊은 사람들이 끌려 내려온다는 것이다. 나는 차에 사람들을 가득 태워서 그들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렇게 이동하는 사이에 나는 공수부대원들이 있는 거리는 피하고자 했지만 거의 불가능하였다. 모든 주요 교차로에는 공수부대원들이 경찰 옆에서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내 차로 사람들을 데려다주는 사이에 나는 공수부대원들이 시민들을 공격하는 것을 20번도 넘게 목격했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5월18일 이전까지 학생시위는 평화적이었다. 전경은 교통 통제만 했다. 공수부대원들이 18일 광주에 나타나기 전에는 광주에 어떤 무력투쟁이나 격렬한 시위도 없었다. 둘째 전경과 공수부대원들의 행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나는 광주의 경찰이나 전경들이 부적절한 행동을·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공수부대원들은 잔혹행위와 욕설을 반복하였다. 이날 오후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직접 정확히 보기 위해서 도시 이곳저곳을 차로 다녀 보았다. 내가 들었던 얘기들이 너무 극단적이고 가혹해서 과장된 듯 들리기도 해서였다. 그런데 도시 곳곳을 돌면서 직접 살펴보고 그 얘기들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군인들이 학생들을 체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학생들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인데도 심하게 구타당했다. 그날 저녁 공수부대원들이 가택수색을 하면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을 무작정 끌어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를 위해 일하던 한국인 아주머니가 전화를 해서 고등학생 아들과 친구가 그날 밤 우리 집에서 지낼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자녀들을 도시 외곽으로 보내기 원하는 몇몇 교인들도 전화를 해왔다. 나는 그들의 집에 가서 학생들을 시골 친척집으로 보내는 일을 두 차례 도와주었다. 목사 한 사람이 전화를 했다. 그는 고등학생 아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데려오기 위해서 차를 몰고 갔다. 그 목사의 집에는 아무도 없어서 이웃집으로 가서 문을 두들겼다. 그들은 매우 두려워했다. 내가 정말 선교사이고 혼자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 그들의 자녀들은 뒷방에 숨어 있었다.

5월 20일

총성 속 밤샘 시위

이날은 중대한 날이었다.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살상과 가혹행위가 저질러졌기 때문에 시민들은 극도로 동요하고 있었다. 만일 이날 정부가 공수부대원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공수부대를 철수시켰다면 아마도 더 이상의 피흘림 없이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아침 8시 전도대회단과 나는 광주기독병원에 예배를 드리러 갔다. 찬송가를 부른 후에 의사 한 사람이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젊은이와 학생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했다.『사랑하는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의 군인들이 우리의 형제와 자매와 아이들을 죽입니까 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대부분의 신도들도 울었다. 몇 분간 그는 침묵했다. 예배실은 우는 소리로 진동했다. 나는 그런 깊은 감정의 분출을 지금껏 본 적이 없다. 한 목사는 19일 오후 집으로 가는 길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관광호텔 근처의 길 옆 가게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그때 그는 그 가게 창문을 통해서 한 군인이 검으로 어떤 젊은이의 목을 베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젊은이는 그 군인의 신경을 자극할 만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예배 후 집으로 가는 길에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고 말해 주었다. 일단의 군인들이 한 중년 남자를 발길질해서 쓰러뜨린 후 걷어차고 가슴과 머리를 사정없이 때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몇 분간 한 후 군인들은 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버려둔 채로 가버렸는데, 분명 그 사람은 죽은 것 같았다고 했다.

우리는 전도대회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공수부대원들은 19일에서 20일 사이 광주에서 철수했다. 대신 20사단이 들어왔다. 이 사단은 5월 16일 미군 지휘하의 한미연합사에서 탈퇴했다. 연합사에서 이 병력이 탈퇴한 것이 광주 민주화운동 발생 이틀 전이며 계엄령 확대 하루 전의 일이라는 사실은, 한국군 수뇌부가 강력한 군사지원을 필요로 하는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나는 광주에서 사건을 유발한 것은 그들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계획했던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는 빌미로 그 사건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군부측은 광주시민들이 반격에 나서 싸우리라는 것을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 어쨌든 20사단 군인들은 공수부대들보다 나았다. 목사들 얘기에 의하면 이들은 불미스러운 행동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시민들의 행동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았다. 우리는 상황이 조용히 가라앉으리라고 기대했다. 오후 3시 통금은 여전히 시행되고 있었으나 다음주 전도대회를 개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내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큰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공수부대원들이 저지른 행위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위는 택시운전사들이 주도하고 있었다.이 시위는 처음부터 매우 감정적인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군중들은 도청건물 앞에 모여서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가 나와 지금까지 일어난 것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어떤 만족할만한 응답도 받지 못했다. 시장과 도지사가 이미 광주를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계엄사령관 면담을 요구했다. 군인들은 군중들에게 해산하라고 했다. 그래도 해산하지 않자 중무장한 장갑차를 군중 속으로 몰고 들어가 강제로 해산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다치게 됐다. 군인들은 또 군중을 향해 공포탄을 쏘아대었다. 이 시위가 정확히 언제부터 격렬하게 되어 교전이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얘기가 각기 달랐다. 어느 목사의 얘기에 따르면 오후 3시 이전에 계림동에서 교전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전도대회 단원인 빌리 사우서는 오후 3시쯤 총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오후 5시경 우리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때 총소리와 빵빵 거리는 소리와 군중의 외침이 들리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총소리가 점점 더 거세졌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앉았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우리 집 정원 벽에 사다리가 놓이고 다섯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이웃집 사람들이었다. 부인은 내 자녀를 치료했던 소아과 의사였고, 남편도 전남대 의대 교수였다. 그 부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자녀들이 우리 집에서 밤을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군인들이 가택수색을 하면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누구 할 것 없이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군인들에게 붙잡힌 학생 중 3분의 1이 무차별 살상 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우리 집은 이미 13명의 피신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까지 우리와 함께 지낼 만한 공간은 없었다. 근처에 다른 선교사 집이 있어 그리로 보냈다. 그날 밤에 부모들이 느낀 공포감이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광주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군인들에게 끌려가 죽을 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위는 밤새 계속되었다. 9시 통금은 시위대에 의해 사실상 무시되고 있었다. 밤 11시 총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우리는 광주 전역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 이날 밤부터 다른 지역과의 통신이 두절되었다. 광주 시내는 괜찮았으나 시외전화는 걸 수 없었다.

5월 21일

우리가 이겼다

총소리와 빵빵거리는 소리, 군중들의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시위대가 우리 단지 쪽에 들어와서 군인들이 쫓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 바바라에게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을 깨워서 5-10분 후 내가 돌아오면 곧장 광주를 떠날 준비를 하도록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거리로 내려가 보았다. 내 생각과는 영 딴판이었다. 반정부 시위로 쫓기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분출시키는 축제였다. 시내버스 트레일러 트럭 지프차들이 학생들과 시민들을 태우고 이리 저리 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막대기와 파이프를 흔들고, 플래카드와 깃발을 날리고 소리치며 전날 밤 시위의 승리를 기뻐하고 있었다. 물어보니 전날 밤 도청을 방위하는 일부 군인들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수했다는 것이었다. 이제 시민들과 군인들 사이의 싸움이 도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른 곳에 있었던 군인들은 외곽으로 물러났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이겼다』고 외쳤다. 시민들의 분위기는 거의 축제판이었다.나는 우리의 안전에 즉각적 위험이 없다고 결론짓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과 전도대회단은 짐을 싸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본 상황을 얘기하자 모두들 남아 있기로 했다.

시골로 피신하려는 학생이 또 있어서 남평까지 데려다준 뒤 집에 돌아온 나는 주위를 살펴보기 위해서 근처에 있는 장로회신학교 옥상으로 갔다. 세무서 건물이 불타고 있었다. 오후 2시쯤 헬리콥터 한 대가 광주 전역을 날아다니면서 전단을 뿌리고 있었다. 계엄사령부가 시민들에게 전하는 경고문이었다. 시민들이 해산하지 않으면 엄청난 결과가 빚어질지도 모른다는 경고였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어딘가 불길한 느낌이었다.오후 2시경 일부 시민들이 화순에서 무기를 뺏어 무장하기 시작했다. 정오가 막 지난 후 민간인 사상자들이 기독병원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매우 혼란스러웠다. 첫번째 민간인 희생자는 낮 12시쯤 도착했다. 그는 실종된 자녀들을 찾다가 등에 대검을 맞은 중년 남자였다. 오후 3시 15분쯤 광주 영공에 몇 대의 전투용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그들은 거리에 있는 군중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사상자들이 병원에 몰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접수된 첫 사망자는 오후 3시 30분경 들어온 여중생이었다. 헬리콥터는 계속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오후 내내 총을 쐈다.

오후 4시 30분 광주기독병원을 나설 때까지 50명 이상의 부상자와 9명의 사망자가 들어왔다. 팔다리에 총을 맞은 어린 소녀와 머리에 총을 맞은 소년, 얼굴이 뭉그러진 성인 남자도 있었다. 부상자 수는 광주기독병원에서만 1백 명이 넘어섰으며, 사망자는 14명에 달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지붕에 있는 발코니로 갔다. 거기서 나는 광주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거리의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헬리콥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광주 민주화운동 10일 간에 발생한 모든 사건들 중에서, 군중을 향해 헬리콥터에서 군인들이 발포하는 모습이 내게는 가장 잔인해 보였다. 88년 8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국회 조사때 나온 보고서에는 당시 상황이 이렇게 기록돼 있다. 「군은 5월 21일 오후 1시 30분에 처음으로 시위자들을 향해 발포했다. 계엄군들은 무장한 시위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면서 달려오자 공포탄으로 발포했다. 계엄군 지휘관은 그날 오후 7시 30분에 군대가 중무장한 시위대로부터 자기방어를 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내가 경험한 진상과는 아주 다르다. 발포는 5월 21일이 아니라 5월 20일 오후부터 빈번하게 일어났다. 나는 5월 21일 아침 도청에서 두 구역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나는 총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시민대원들은 5월 21일 오후 1시 30분 경에는 총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았다.

그날 저녁 군인들이 가택수색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울에서 광주로 오던 학생들이 담양에서 대량 살상되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아내 바바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전도대회단과 함께 다음날 아침 광주를 떠나기로 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전투 소리는 밤까지 계속되었다. 어둠이 내리자 대부분의 집들은 어둠에 싸였다. 공식적인 등화관제가 없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이 켜져 있으면 포격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저녁을 어둠 속에서 보냈다. 우리는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면서 내일을 기다렸다. 포격이 주위 모든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5월 22일

시민,학생들의 해방구

일어나자마자 일행들과 가족을 탈출시키는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시민이나 군인들의 총격을 받을지 모른다고 모두 걱정했다. 떠나기 전 하나님께 우리의 안전과 도시의 평화를 간절히 기도했다.오전 7시 30분 경 우리는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양림동을 빠져나갔다. 성조기를 꽂고 「외국인의 차」라 쓴 우리 차가 거리에 나섰을 때 시민들이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불안과 두려움이 안도감과 기쁨으로 변했다.송정리로 가는 길은 큰 전봇대와 버스, 트럭들로 차단되어 있었다. 교차로에 들어서자 군중이 우리 차를 둘러쌌다. 우리는 송정리역에 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관총을 장치한 지프차가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또 다른 중무장 차량이 우리 뒤를 따라왔다. 그들이 에스코트해 줘서 송정리까지 갈 수 있었다. 송정리에는 기차가 안 다녀 신흥까지 갔다. 일행을 열차에 태운 후 나는 광주로 되돌아왔다. 많은 학생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광주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 사이 광주에는 매우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내가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정확하리라 확신한다.

5월 22일 아침 일단의 복음주의 계열 목사들이 중앙장로교회에 모여 어떻게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도청을 장악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누군가 가서 계엄사령부와 협상을 벌이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시민들이 무장한 군인들과 싸워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학생들에게 가서 협상하도록 설득할 것인가? 세 명의 침례교 목사들이 가기로 했다. 장세균 목사와 박영복 목사와 신순균 목사는 도청으로 걸어가서, 학생들에게 협상하도록 설득했다. 학생들은 협상하는 데 동의했다. 이들 세 침례교 목사는 협상의 초기 단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시민수습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중앙 장로교회에 모였던 여덟 명의 목사와 변호사, 사제, 학생대표, 시민투사, 교수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와 계엄사령부 사이에 사태 해결에 대한 동의가 이뤄져 시민들은 무기류를 넘겨주기 시작했다. 오후 5시 송정리에 있는 미공군기지의 데이브 힐이라는 하사관이 전화를 했다. 그는 미 공군이 무력으로 광주에 들어와서 양림동에 있는 미국사람들을 구하는 계획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구출계획은 광주를 떠나 공군기지로 간 광주 주재 미국 공사 데이비드 밀러가 전한 상황보고에 의해 세워진 것인 듯했다.TV와 라디오는 저녁 뉴스에서 잘못된 보도를 했다. 군인들이 유혈 대결을 피하기 위해 21일 밤 도청지역에서 철수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미 유혈 대결이 있었다. 기독병원은 시체 13구를, 전남대 병원은 시체 27구를 안치하고 있었다. 적십자병원이나 조선대병원에서 보고를 들은 것이 없으나 다 합친다면 최소한 80∼100명의 사람들이 21일 죽은 것이다. 이 사실은 유혈 대결을 피하겠다는 의도가 거의 없었음을 시사해준다.

이날 밤 나는 월산동과 방림동과 문화동에서 총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화순으로 가는 곳에서 총소리가 집중적으로 들렸는데, 그 소리는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5월 23일

외국인들의 안전 확인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밤새 걱정했던 군인들의 광주 공격이 분명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나는 어떤 총성도 듣지 못했다. 오전 내내 도심지역을 걸어다니면서 살펴보았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분명 평온하고 고요한 느낌이 사람들 사이에 생기고 있는 것 같았다. 협상 결과로 타협안이 생겨서 모든 일이 정상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문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날 아침 장세균 목사가 화정동에 있는 50명의 급진투사들에게 가서 총을 내려놓고 협상하도록 무릎을 꿇고 설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날 오후 대부분은 미대사관의 부탁으로 광주에 머물고 있었던 미국시민과 다른 외국인들을 찾아내 안전을 확인하는 일을 했다.

5월 24일

6.25, 4.19보다 더 끔찍한 경험

새벽 5시 30분쯤 총소리가 산발적으로 났지만 대체로 조용하였다. 군인들이 아직 도시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문제가 풀리고 사건이 이제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들이 도시를 포위한지 꼬박 이틀이 지났다. 이런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언제쯤 군인들이 무력으로 진입할 것인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모두 끝났을 때 보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했다. 자전거를 한 대 빌려서 오전 9시쯤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청 근처에서 나는 광주지역에서 일하던 평화봉사단원 주디 챔버린을 만났다. 그녀와 함께 도청근처의 작은 여관에 가서 AP통신 기자 테리 앤더슨을 만났다. 앤더슨은 목포로 온 뒤 택시와 자전거를 타고 군인들의 행렬을 통과해서 광주로 간신히 들어왔다고 했다. 그가 가진 정보에 의하면,여러 병원과 다른 단체들에 의해 107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 숫자는 5월 18일과 19일 군인들이 잔혹행위를 저질렀을 때 발생한 사망자 수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5월 23일 이후의 사망자 수도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들과 헤어진 후 몇 군데 교회를 방문했다. 일신교회로 가서 나이 든 한 목사를 만났다. 그 목사는 자신이 사는 동안 전쟁이나 여러 번의 사태를 경험했다고 얘기했다. 해방 전 일제의 잔혹함을 겪었고 6·25 당시의 엄청난 파괴행위도 기억하고 있었다. 4 · 19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는 대학생으로 시위에 가담했다. 5 · 16때는 군인의 입장에서 사태의 추이를 목격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의 사태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사악하고 음산한 경험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이 좁은 지역에서 이보다 많은 인명의 손실을 목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도청 앞 광장으로 왔다. 둥근 연단처럼 바뀐 분수대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연단 위에는 전두환 장군의 초상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 인형에 불을 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오후 내내 도청 앞 광장에 머물렀다. 장세균 목사는 분수대 위에 앉아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수습위원회에 의해 진행된 협상과정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5월 25일

광주시민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

일요일 아침,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총소리가 나지 않았다. 밤새 비가 몹시 내렸다. 나는 덕성침례교회에 출석했다. 이경남 목사가 수습위원회의 총무로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배 후 이목사와 나는 도청까지 걸어갔다. 2층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외국기자들이 시민지도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장세균 목사가 도청에 있는 사실상의 리더였다. 나이 든 변호사가 수습위원회의 공식적인 대표였다. 나는 잠시 통역관 역할을 했다. 중요한 질문이 제기될 때마다 나이 많은 변호사는 계속해서 대답을 장목사에게 떠맡겼다. 장목사는 수습위원회를 대신해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는 주요 인물인 것 같았다. 오후 늦은 시간에 미군 하사인 데이브 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모든 미국인들이 철수해야만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 정부에 의한 군사적 행위가 임박했기 때문에 남아 있으면 안전이 보장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공군은 헬리콥터를 우리 집 정원에 착륙시켜 우리를 탈출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위사람들과 의논한 결과 철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가 지금 떠나면 우리 스스로에게 한 공약, 곧 광주시민과 함께 사건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장목사에게 전화해서 우리가 들은 얘기를 해주었다. 한국군은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광주에 곧 진격할 것 같았다. 난생 처음 두려움을 느끼면서 주일 밤 잠자리에 들었다.

5월 26일

내일 내가 살아 있을까?

아침에 일어났을 때 광주는 평화스러웠다. 놀라울 정도로 내 마음에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없었다. 일단의 군인들이 이날 아침 광주로 들어와서 수피아여고가 있는 지점까지 진입했다가 철수했다는 미확인 소식도 들었다. 미국 CBS 방송기자가 오전 9시 30분쯤 와서 직접 녹화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이번 사건을 조장한 것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군인들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후 나는 인터뷰가 22시간 후 미국 CBS 저녁뉴스 시간에 방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녹화테이프가 인편으로 서울로 보내져 동경까지 전달되고, 동경에서 위성으로 미국에 보내진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 공군기지에 있는 데이브 힐과 연락을 취했다. 데이브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떠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지만 밝힐 수 없는 어떤 사실에 대해 불길한 어조로 말했다. 후에 나는 그로부터 한국 공군이 광주에 폭탄을 떨어뜨릴 계획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군측은 분명 한국군이 그 계획을 변경하도록 압력을 가했던 것 같다. 나는 도청 근처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간을 보냈다.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온 기자도 만났다. 그는 광주에 숨어 들어올 수는 있었지만 카메라를 가져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필름은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카메라를 빌려줬다. 장목사는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무기를 넘겨주고 계엄군과 협상할 것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군인들을 믿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들은 죽기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장목사는 문제가 협상에 의해서 풀릴 수 없음을 감지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그는 군인들이 다음날 쳐들어오리라는 것을 알면서 집으로 갔다. 잠자리에 들면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내일 아침을 맞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군인들이 광주에 들어오면 우리가 살고 있던 선교사 주택단지가 그들의 목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선교사 주택단지는 도시 중심가 근처 숲이 우거진 언덕에 있었다. 저항하는 사람들이 숨기 좋은 장소인 것이다. 그래서 군인들이 이곳에 진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바라가 떠나기 전날 밤에 우리는 그런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녀에게 남길 메모를 써서 침실 장롱 미닫이문 뒤에 테이프로 붙여놓기로 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그녀와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그들이 결코 읽지 않아도 될 편지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편지를 장롱 문 뒤에 붙여놓은 후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5월 27일

군인들이 점령한 도청에는...

새벽 3시 30분경 군은 광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진입해 들어온 곳 중 하나는 우리 단지가 위치해 있던 산언덕이었다. 후에 내가 들은 얘기에 의하면 군인들은 자동소총을 무차별하게 쏘면서 단지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너무 피곤해서인지 혹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그 소리엔 깨어나지 못했다. 도청 쪽에서 나는 아주 거센 총소리를 듣고 4시 30분쯤 깨어났다. 그 소리는 마치 대포소리나 탱크에서 발사되는 포탄소리 같았다. 자동소총으로 아주 오랫동안 퍼붓는 소리도 들렸다.포탄의 사정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어느 정도 치명적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2층에서 빠져나가기로 했다. 옷을 입고 지하에 있는 침실로 갔다. 포탄 소리는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왔다. 마치 우리 집 바로 근처에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병사들이 우리 집에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지하 침실에 있는 장롱 위에 앉아 30분쯤을 보냈다. 새벽 5시 45분쯤 총성이 멈췄다. 도시는 조용해졌다. 라디오에서 군인들이 새벽 5시 10분 도청을 접수했다는 보도가 들렸다. 아침 9시경까지 헬리콥터로 엄청난 수의 군인들이 계속 이동했다.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나는 도심지역을 걸어 다니면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매우 조심스럽게 멈칫거리면서 다녔다. 거리 대부분은 아주 황량했다. 도청 앞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 지역은 탱크로 엄격히 경계되고 있었으며, 아무도 도청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광장으로 가는 거리 입구에 조용히 서 있었다. 말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 광경이 하도 이상하여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저녁 기도모임에서는 이날 아침 도청에서 죽은 사람들 중에 장로회신학교 학생도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는 제일장로교회의 전도사였는데 수습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평화스러운 해결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수습위원 대부분은 자정 전에 도청에서 나와 안전한 곳으로 돌아갔다. 이 젊은 전도사는 자원해서 도청에 남아 있으면서, 시민들이 며칠 전 넘겨주었던 총기가 보관되어 있는 방을 지키고 있었다. 군인들이 도청을 접수했을 때, 그들은 그가 총을 갖고 있지도 않았는데 그 자리에서 총을 쏴 죽였다고 한다.

5월 28일

광주로 다시 돌아오다

28일 아침 우리는 계엄사령부로부터 여행허가증을 발부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침례교 목사들을 차에 가득 태우고 대전으로 갔다. 대전에서 사흘을 보낸 후, 가족을 데리고 광주로 돌아왔다. 우리 경험에 대한 대전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불쾌했다. 그래서 더 광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군사정부가 너무나 거짓말을 잘 퍼뜨려 놓은 탓인지 우리 얘기를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광주로 돌아온 뒤 나는 장목사가 5월 30일 체포된 것을 알게 되었다. 즉시 나는 그의 아내와 몇몇 광주지역 목사들과 함께 그를 찾아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그가 어디 갇혀 있는지 몰랐고, 더욱이 어떤 죄목으로 갇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사령관실에 전화를 해 장목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감금되어 있다는 것을 외국언론에 공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날 밤 10시에 장목사가 풀려났다. 광주민주화운동에 있어서 계속 관심사와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나 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정부 발표는 2백명 이하가 죽은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2천명에서 1만 5천명이 죽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얼마나 죽었단 말인가. 사건 직후인 80년 6월 중순 내가 들은 얘기에 의하면 사망자 수는 832명이라는데, 내가 보기에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서울에서 광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었다. 내 곁에는 젊은 공직자가 앉았다. 항쟁 기간 내내 그는 자신의 지위를 사용해서 학생들을 도와주었기에 신변이 위험하기 때문에 미국으로 가려 한다고 했다. 그와 함께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귓속말로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항쟁기간에 광주에 있었던 군인 친구 얘기에 따르면 당국에서 사망자 수를 8백 32명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희생자의 수가 8백 32명이건 혹은 2백명 이하건, 아니면 2천명 이상이건 간에 5 · 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잔혹행위를 영구화하는데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삶에 수치를 남기는 사건이 되고 있다. 또한 광주 민주화운동은 희생된 모든 사람들의 삶에 씻을 수 없는 비극적 상징물이 돼 있다. 비록 10년이 지났지만 광주 민주화운동은 군사독재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종소리요, 자유의 불길로 타올라 민주의 시대를 연 기념비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


2013. 2. 1. 23:15

국정원 = 국가 정치 댓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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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1. 21:21

재임 중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겠다고 공약한 대통령 후보에게 묻는다.


북한이 회담을 성사시키는데 대한 댓가로 거액의 현금을 요구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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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12. 11:42

당권파 이 잡것들아,


총학선거, 노조선거에서 아예 투표함을 자기들끼리 들고 다니면서 조작질하고 거래하던 짓을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뽑는 자리에서까지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너네들은 조선노동당의 지령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는 사실이 이번 일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고 너네들의 그 낡아빠진 쌍칠년도 실체를 확인한 국민들은 앞으로 영원히 너네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비당권파는 당권파와 분당수순을 밟으세요...

당권파 이 미친 것들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놈들입니다. 오로지 조직의 결정과 지령만 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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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16. 04:37

진중권은 비겁하다. 왜냐고? 그건 늘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싸움만 벌이기 때문에 그렇다. 본인은 힘들고 어려운 싸움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중권이 그동안 온라인에서 옥신각신했던 대상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황빠(황우석 사태), 심빠(디워 논란), '나꼼수빠' 등, 진중권은 소위 말하는 '빠'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그들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데 망설임이 없다. '빠'라는 호칭이 붙은 이들은 간단히 두 가지 관점에서 규정할 수 있다. 첫째 감성적인 측면으로 보면 순수한 에너지와 열정을 가진 이들이고 둘째 이성적인 측면으로 보면 합리적 비판이나 균형감각에 입각한 지적에 대해 쉬이 눈을 감게 될 수 있는 위험을 가진 이들이다. 나꼼수팬들을 두고 이런 '빠'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진중권은 이미 그들에 대해 '빠'라는 결론을 내린지 오래인 듯 싶다.


나는 진중권이 틀린 말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본인의 위치에 걸맞는 전략적 사고의 부재, 이 부분에 대해 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비유로 얘기하자면 이렇다. 나꼼수를 독이 발라진 날카로운 칼이라고 한다면 진중권은 그 발라진 독에 대해 '그건 독이야' 이렇게 얘기하는 식이기 때문에 진중권의 말을 반박하려 할수록 진중권의 프레임에 갇혀 진중권이 좋아하는 작은 싸움이라는 함정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나꼼수가 스스로 독바른 칼을 자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나꼼수가 싸우고자 하는 적들이 국민을 상대로 휘두르는 칼에다 거침없이 맹독을 바르는 정도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등 뒤에다 주저하지 않고 총질을 하거나 탱크를 앞세워 국민들을 깔아뭉개고도 남을 극악한 놈들이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어떤 사람이 '빠'가 되는 순간 그 사람은 일종의 에너지 덩어리가 된다. 그러나 그 에너지는 순수한 만큼 맹목적이기도 하다. 승리를 위해서는 그런 에너지가, 순수한 열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누구보다 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진중권은 사람들의 그런 에너지를 이끌어낼 토대를 만들거나 그런 에너지를 정밀하게 제어할 방향성을 제시할 자신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비겁한 지적질을 그만두어야 한다.


진중권은 아마 이런 상상을 할 것이다. 무림의 고수가 온갖 비겁한 암기를 동원하는 악당들을 맨손으로 무찌르는 장면을 떠올리며 '아, 저런 게 바로 진정한 승리이자 내가 꿈꾸는 아름다움이야' 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건 영화나 무협지 속의 얘기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돌멩이 하나라도 손에 쥐어야 싸움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아름다움 또한 머릿속에서 사고의 대상이 되는 그 순간부터 퇴색하여 흔적이 될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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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10. 23:43

올해는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올 한 해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앞으로 도래할 10년의 삶이 결정될 것이라고들 한다. 뚜렷한 세대 교체는 다음 총선 쯤이나 되야 이뤄지겠지만 올해 치뤄질 두 번의 선거만으로도 권력 구조의 재편은 피할 수 없다. 지금까지만의 요동치는 판세와 흐름에 따라서도 이미 다양한 이합집산이 이루어졌고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그런 움직임들은 더 심해질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기꺼이 몸을 싣고자 하는 흐름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게 과연 대한민국의 앞길에 불을 밝히고 국민을 이끌어 갈 비전과 가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비전과 가치를 외면한 선택이 얼마나 무모한 도박인지는 지난 4년을 거치며 충분히 깨달았다. 이명박 패거리들이 추구하던 선진국, 국격이라는 게 얼마나 낡고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던가. 당장 눈앞의 공수표에 눈이 멀어 함부로 소중한 한 표를 내던졌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볼 때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비전은 무엇일까. 유종일 교수의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생각해 보자. 유종일 교수가 추구하는 가치를 누구보다도 지지하고 성원하는 입장이지만 부족하다고 느낀 점은 공통의 토대를 보여주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적인 큰 틀에서 서로의 주장을 앞세워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런 대립과 갈등 자체가 공존, 공생, 공영의 합의 위에서 이뤄진다는 인식을 국민들로 하여금 느끼게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앞세운 권력투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신과 함께 색깔만 달랐지 결국 똑같은 층위에 있는 카운터파트일 뿐이라는 생각을 불식시키기 어렵다는 뜻이다. 경제학자라면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대등한 입장에서 각자의 주장을 보다 논리적으로 펴는 것이 맞지만 정치인이라면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대화와 협상의 자리에 앉힐 수 있는지부터 고민하는 식으로 그런 작은 틀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다. 때로는 투쟁도 필요하지만 투쟁은 대화와 동일한 층위에서 상황에 따라 협상을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서 작용할 뿐이라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또 그것을 국민에게 인식시킬 수 있을 때에만 불안의 요소가 제거되어 신뢰의 정치가 가능하다.

지금 국민들은 각자의 불안을 대신 짊어져 믿고 따를 수 있는 정치인을 기대하고 있다. 단지 일관성만으로 최소한의 예측가능성을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아올린 민주적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고 원칙과 소신으로 지켜내는 그런 정치인을 원한다. 안철수가 말하는 상식이란 민주적 가치, 민주시민으로서의 상식이고 내면화된 민주주의이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의 소중한 가치이자 시대정신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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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3. 16:46

우연히 검색 중 발견한 종북 카페, 다음에서 뭘 좀 검색하다가 검색결과에 보이길래 클릭해봤는데 균형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북한의 일방적 선전, 선동을 고스란히 베껴놓았다. 'Both extremes meet.' 이들이 남한의 반민주주의 세력과 대체 다른 점이 뭔가. 이들은 민주적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북한의 체제 유지를 위한 앵무새같은 소리만 지껄이고 있다. 북한 정권에는 과거 김일성 삼대의 독재 강화를 위해서 거리낌없이 남한의 독재 세력과 손을 잡아 협력했던 전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통일을 빌미로 남한 내 민주화 세력에게도 마수를 뻗쳐 빨갱이니 종북이니 하는 소모적 논쟁을 불러온 단초를 제공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더디게 한 책임이 있다.

예컨대 70년대에는 김일성과 박정희가 서로 내부 단속을 하는 중에는 공격하지 말자는 합의로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후 북에서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주체사상을 내거는 등 김일성 유일독재체제를 강화하고 남에서는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민주화 인사들을 대거 잡아들이는 등 유신독재를 강화하여 양쪽 모두 오로지 독재를 위한 수단으로 통일을 이용했고 그 후 이뤄진 남북간 접촉은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 이해에 맞물렸던 경우와 김대중 정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부 서로의 기득권 체제 유지와 공고화를 위한 쇼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말이 남한 지배세력의 기득권을 지킨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듯이 북한 지배세력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과 민주주의는 거리가 더욱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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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0. 16:47
어떤 정치인이 '정무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미숙하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면 이는 곧 정치인으로서는 아주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뜻이 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그 정점에 대화와 타협이 있다. 간혹 투쟁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이는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거나 통하지 않는 상대를 위한 특별한 해법일 뿐이다. 대화와 타협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다. 이쪽에서 상대방에게 내놓을 카드가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협상 상대로 여기지 않거나 상대방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렇지만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투쟁이라는 것도 자신이 불리한 경우에 사용하는 하나의 타협 방법에 불과하다. 즉 마땅한 협상 카드가 없을 경우 투쟁의 수위를 조절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일종의 협상 카드로 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투쟁은 많은 경우 운동가(activist)들에게 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투쟁을 잘하는 사람이 곧 신념가라는 뜻은 아니다. 투쟁이 신념을 도드라지게 표출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타협의 선도 신념에 따라 그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신념이 없이 여기저기 타협만 잘하고 정치력만 높은 기회주의 정치인(예컨대 이광재?)들이 많다는 사실이 한국 정치현실에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통합당의 FTA 전면 폐기 주장에 대해 반대한 장하준 교수의 의견에 적극 공감한다. 초지일관 FTA에 반대한 것이 그의 신념이었지만 현 상황(투쟁이 필요했던 시기가 지난 상황)에서 FTA 전면 폐기 주장은 FTA 찬성론자들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그릇된 전략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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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 29. 09:28

요즘은 듣기 힘든 말이 됐지만 예전 신문 기사에 흔히 사용되던 '독직'이라는 단어가 있다. '더럽힐 독(瀆)'에 '직분 직(職)'자를 써 부정한 일 따위로 그 직책을 더럽힌다는 뜻으로 쓰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나경원 전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판사가 자기 아내의 명예훼손 사건을 맡은 박은정 검사에게 직접 전화로 청탁을 했다고 한다. 그 청탁 내용이 가관인 게 기소만 해주면 법원에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한다. 법원에서 처리(?)하겠다던 그 네티즌은 보통의 경우라면 기소도 되지 않을 가벼운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청탁 판사의 동료들이 주재한 1심과 2심의 거듭된 유죄 판결에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3심까지 가서 벌금형을 최종 선고받았다고 한다(나경원 전의원 측으로부터 고발됐던 수십 명의 네티즌 중 당시 김재호 판사가 근무하던 서부지법 관할에 거주하던 단 한 명의 네티즌만이 기소됐다고도 한다).

법관의 기소 청탁은 그 자체로도 어이없는 사건이지만 청탁을 받아 그대로 기소한 해당 검사나 기소대로 유죄 판결을 내린 1심, 2심, 3심까지도 모두 한통속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당시 검사는 검사대로 '이건 기소할 만한 사안이 아니지만 직접 전화까지 했는데 이걸 안 들어주면 앞으로 계속 (다른 사건에서) 피곤해지겠지', 1심 재판장은 '이건 기소유예로도 충분한 사건이지만 나경원 전판사의 사건인데다 김재호 판사의 부탁도 있으니까 유죄로 판결하자', 2심 재판장은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 김재호 판사도 머지않아 법원장급이 될 거니까', 3심 대법관은 '법원 식구를 건드린 사건에는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게 좋지' 라는 식으로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다음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신평 전 판사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신 평 前판사 "서기호 前판사, 재임용 탈락시키지 말았어야"
3차 ‘사법파동’ 있던 1993년, 돈 받고 판결 바꾸는 판사도 있었다.
93년, 판사 재임용 탈락 정당화 위해 음해까지... 아내는 자살까지 고민
문민정부 시절, 가장 반개혁적인 곳이 바로 사법부였다.

기사 전체 주소는

검사에게 청탁하여 기소만 하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판사 정도는 1993년의 돈 받고 판결 바꾸던 판사에 비하면 새발의 피 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재판 개입을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여기던 신영철 대법관을 위시하여 법관의 '명예'를 더럽힌다며 법전에서 찾아보기 힘든 '괘씸죄'를 적용하면서도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듯 보이는 일부 대법관들이 스스로 얼마나 '비정상'인지 깨닫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크게 잘못한 거 없다'고 자위하고 있을 테니까...

동료 법관들 뿐만 아니라 검사들에게까지 sabasaba 잘하는 김재호 판사의 근무평점은 상위 몇 %일까? 대법원장이 원하는 법관상이 바로 저렇게 은밀한 뒷거래와 청탁으로 해결하는 친화력인가? 정말 한심하다. 법관의 '명예'가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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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이슬람도 이웃을 사랑하고 평화를 존중하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테러리스트라고 하면 이슬람 터번을 쓰고 얼굴을 가린 채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미드나 헐리웃 영화에 자주 노출되면서 무의식적으로 미국식 가치관이 주입된 탓이긴 하지만 중동과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 같은 이슬람 국가에 소재한 단체의 테러가 빈번한 것이 사실이긴 하다.

사실 이슬람의 테러리즘은 자체적으로 시작됐다기 보다는 유명한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가 창설된 후 중동전을 치뤘거나 이스라엘과 대립하던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광범위한 도청, 요인암살, 군사기밀수집, 폭탄테러 등 다양한 정보활동이 펼쳐지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활성화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란-이라크 전쟁과 같은 냉전의 틈바구니에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지원이 보태지면서 테러리즘은 더욱 강화되었다. 즉 지금과 같은 조직적, 계획적 테러리즘의 시초는 이스라엘의 모사드고 이를 지금처럼 키워낸 것은 미국과 소련이라고 해도 썩 틀린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이런 사실은 최근까지도 전세계의 언론을 장악하고 있던 WASP과 유대계 자본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게다가 유태인은 'spin doctor'라는 단어의 창시자라고 불러도 될 만큼 매우 전략적인 언론플레이를 하며 전세계에서 심리전의 최고봉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기존 언론의 비중이 축소되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매스미디어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는 중이라 우리나라 같은 미국의 동맹국가에서도 이스라엘에 의한 테러 보도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가령 최근 모사드에 의한 이란 핵물리학자 암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휘소 박사가 표적테러로 사망한 것과 다름없는 그런 사건인데 지금까지 모사드에 의해 암살된 이슬람 과학자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해당 국가에서 그런 과학자는 천재 중의 최고 천재로서 인적 자원의 엄청난 잠재력 손실을 입게 된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외교적 원칙은 확고하다. 공격에는 몇 배의 철저한 응징으로 되갚는다는 것이다. 전략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다. 이번 일처럼 자신들이 먼저 저지른 일에는 더 약한 수위의 보복만을 감수하고 그 이상의 보복이 돌아올 때는 다시 재보복을 한다. 그런 점에서 엊그제 태국에서 발생한 이란 공작원들의 이스라엘 외교관 테러 실패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었지만 서글퍼 보이기까지 한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초정밀위성 및 스파이에 의해 주요 인물과 기관이 자세히 감시되는 상황에서 보복할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보복을 했다가 당할 지도 모를 이스라엘의 재보복이 두렵기도 한 것이다. 이란의 대통령 등 집권세력이 국민들에게 큰소리치는 것과는 별개로 국가의 안보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 국정책임자로서 책임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고민이리라. 더구나 현재 이란은 핵개발에 국가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최선의 전략을 선택해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유태인들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덜 통하는 나라들이 많아졌다. 미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생존력 강한 유태인들에게 아시아인으로서 해줄 조언은 딱 한 가지다. 자기네 조상들처럼 오만함에 빠져들지 말고 하루 빨리 이슬람권과 평화공존할 수 있는 해법과 타협점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정보 혁명은 정보를 독점하던 세력의 비교 우위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할 것이다. 결국 유태인들도 머지 않아 무슬림들에 의해 따라잡힐 것이고 그때까지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것은 곧 이스라엘에게는 파멸을, 세계에는 대혼란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2. 2. 16. 22:40
먼저 나는 나꼼수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진중권이 나꼼수에 대해 구체적으로 뭐라고 한 지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가 전혀 없고 오로지 한겨레21 기사(커버스토리 '陳의전쟁'편,만을 토대로 이 글을 쓴다.

기사를 보면 진중권은 자신이 일관된 사람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의 일이관지는 '합리성'이라는 근대적 가치에 함몰되어 오로지 '이성'에 입각한 비판만이 지식인의 사명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세상, 대중 혹은 권력의 작동원리가 합리성을 지향하고 또 가정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비합리적으로 움직인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에 만사에 냉소적이다. 간단히 바꿔 말하자면 그는 비합리적인 상황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기사에 드러난 나꼼수에 대한 그의 시각을 보자.

진중권도 <나꼼수>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나꼼수>가 주류 언론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누적된 상황에서, 좌절·분노·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정한 카타르시스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문자에 의존하지 않는 구술 메시지의 파급력도 높이 산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그 안에서 유통되는 과도한 음모론과, 대중의 열광에 편승해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나꼼수> 제작진들의 ‘정치적 욕망’이다. 진중권은, 자신의 비판이 <나꼼수>에 ‘놀이’ 또는 ‘오락 프로그램’으로서의 ‘제 몫’을 찾아주기 위한 차원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나꼼수의 긍정적인 면은 인정하되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의 행간에는 나꼼수가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팟캐스트라는 물리적인 방식이 아니라 과장된 음모론)에 대해 나꼼수의 대척점에 서 있는 대상들의 그것(조선일보 따위의 찌라시들)과 어떤 의미에서 유사하다고 보고 있는 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팟캐스트를 통해 대량으로 유통되는 나꼼수의 음모론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거기에 지나치게 열광하는 것은 '이성'의 눈으로 보자면 일종의 독이나 마약과도 같은 것이기에 당장의 대증적 효과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떤 부작용(?)으로 인해 부메랑이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따라서 누군가는 그런 예상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비판의 총대를 메고 나서 나꼼수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제한적으로 받아들이자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고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이라는 내용이다.

먼저 진중권이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너무 순진하다. 어리숙하다는 뜻이 아니고 비합리성을 세상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숙함(합리성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가 부족한 탓이 있다)을 일컬어 순진하다는 말이다. 세상에 눈을 뜬 이래 마지못해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불편해 하는 것이 바로 그렇다. 진중권이 속한 세대는 가장 극렬한 운동권들조차도 민주주의가 내면화되지 못한 채 민주주의를 어떤 수단으로만 여기면서 과장된 이념으로 포장하는데 그쳤던 사이비 민주주의자들(당시에는 그럴 필요가 있었다)이 곳곳에 끼어서 판치던 세대지만 그나마 진중권은 저런 순진함 덕에 그런 사이비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진중권의 순진한 유리알유희야 말로 앞으로 벌어질 도도한 권력의 이동을 방해하는 어깃장에 불과하다. '도리어 해가 되거나 자충수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오히려 나꼼수보다 더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대중을 이용하는 술수를 부리고 효율적이기만 하다면 나꼼수의 과장된 음모론보다 훨씬 더 심한 왜곡과 기만을 펼쳐야 한다. 거대한 지배세력의 카르텔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진실이라면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수백, 수천명이라도 자발적으로 가담하여 은폐하게 만들고 어딘가에서 찍어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창끝에 맹독을 거침없이 발라 찔러 죽이거나 폐인을 만들어 버린다. 이게 바로 생존의 현실이며 전략적으로 가장 탁월한 선택이다. 지배세력이 계속 지배권을 유지하는 이유는 생존에 가장 유리한 전략적 선택을 하는데 아주 능하기 때문이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 괴물이 되지 말자고 하는 진중권식의 비판은 정당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더 나은 괴물이 되길 바라는 게 최선이다. 유사 이래 세상에는 수많은 괴물들이 등장했고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괴물이 등장할 때마다 인류는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갔고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바로 그런 희망과 믿음이다. 당장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과욕이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숱하게 희생하면서 벽돌 한 장씩을 쌓아 올려 지금을 일궈낸 조상들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우리 세대 동안 단지 벽돌 한 장만이라도 쌓아 올리면 충분하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이성'의 반대는 '반이성'이 아니라 '생존'이다. '이성'과 '생존'의 대립은 '문명'과 '야만'의 대립이다. 진중권이 휘두르는 이성의 칼끝은 다음 세대를 향해야 한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이 되는 것은 언젠가는 괴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전략적 선택의 문제일 뿐이고 우선은 괴물과 싸워야 한다는 당위 자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에서는 '생존'보다는 '이성'이 우선해야 한다.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며 이성을 마비시켜 모든 문제를 생존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지배세력의 '교육기관 노예양성소화 전략'이 교육계로 침투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15년 정도 후면 민주주의가 내면화된 세대가 주된 기성 세대가 되고 현재의 지배세력도 '조금 더 나은' 지배세력으로 대체될 것이다. 신지호 같은 정신병자들이 자칭 386이랍시고 설치면서 찧고 까불 향후 10년 동안은 가망 없다.
2011. 12. 5. 03:40

1. 선관위 홈페이지는 디도스 공격이며 야당 또는 북한이 사주했을 수도 있다는 설 - 최구식 의원실 관계자

최구식 의원실 관계자는 "3명의 진범이 민주당이나 민노당 혹은 북한의 사주를 받아서 범행을 저지르고, 공씨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거짓말 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 않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조선닷컴(이 발언은 기사가 게재된 지 16분만에 기사에서 삭제됨)

2. 투표일 선관위 홈페이지 접속 오류 문제는 디도스 공격 탓보다는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설 - 김어준

"경찰은 모두 디도스라고 못을 박았지만, 실제 '원순닷컴'은 디도스 공격이 맞다. 그러나 선관위 홈페이지는 그렇지 않다"며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았던 것은, 주소를 입력해서 투표소를 찾는 '디비'만 끊겼던 것이다. 디도스 공격이면 선관위 홈페이지 모두 끊겨야 하는데, 특정 자료만 끊긴 것"  - '나는꼼수다' 콘서트 중에서 김어준 발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이와 관련 “(지난번 선관위의 대답은) 로그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로그를 공개하면 선관위 서버의 디렉토리 구조가 노출된다. 해킹이 우려된다 였다”면서 “그런데 서버 로그 말고 다른 로그가 있다. 서로 비교해 보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로그에는 디렉토리 요청이 안 된다. 이것도 핑계다”라고 주장했다.

또, 김 총수는 선관위의 발표 결과 (선관위 홈페이지) 사건 당시 당일 트래픽이 11기가라고 발표했던 것을 언급하며 “그전에 지금 선관위 서버가 KT의 IB센터에 있다. KT의 모 상무가 보안컨퍼런스에서 트래픽을 공개했다. 그때 당시 그래프도 공개했는데, ‘(트래픽이) 2기가가 발생했다’라고 했다”면서 “둘 중 한군데는 거짓말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총수는 “KT의 모 상무가 그래프까지 공개하면서 보안컨퍼런스에서 그랬기 때문에 이것이 디도스다. 하니까, 전문가들이 ‘2기가정도면 선거당일인데 그 정도는 발생할 수 있다’는 반론이 나오자 며칠 뒤에 선관위에서 11기가라고 때린 것”이라며 “뭔가 많이 이상하다”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디도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고 있는 건데, 선관위 홈페이지는 서버가 여러 개로 구성돼 있다. 그 서버가 특정 서버만 공격받을 수 있다”면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선관위에서 “특정 서버만 공격당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면서도 “디도스는 페이지 접속 자체를 막는 것이다. 특정 서버만 구분해 공격하는 건 디도스의 속성에 맞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어 김 총수는 “당일날 메인페이지와 주소를 찾는 페이지는 접속을 할 수 있었다. 접속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되는 경우도 많았다. 확실히 연결이 안 되던 것은 DB였다”면서 “DB하나만 공격하는 디도스는 없다. 선거정보는 열람이 됐다. 그 서버를 공격했다면 그 안에 있는 DB도 접속이 됐어야지”라고 주장했다.

또 김 총수는 “이제는 11기가에 해당되는 ip로그를 다오. 이건 서버 구조와 상관없다. ip로그는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서버 구조정보와 아무 상관없다”면서 “이걸 보면 역으로 이 ip가 좀비에서 나왔는지 아닌지 ip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진짠지 가짠지 찾을 수 있다. 11기가에 해당되는 ip를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출처] 조은뉴스(

3. 디도스 공격이든 뭐든 관심없고 최구식 의원의 비서는 야당이 심어놓은 X맨일지도 모른다는 설 - 전여옥

"의원과 보좌관은 운명공동체인데 한나라당이 170석넘게 얻으면서 경험있는 민주당이나 민노당 출신 보좌관들이 한나라당의 의원보좌관으로 많이 들어왔어요. 크게 생각할 일이지만 좀 걱정으로 전부터 됐었지요." - 전여옥 트위터

: 김어준 총수는 선관위 홈페이지 접속 오류 문제는 디도스 공격 탓이 아닌데도 경찰에서 원인을 디도스로 꿰맞추기 위해 억지를 쓰다 보니 말이 앞뒤가 안 맞고 ip도 공개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디도스 공격이 아니라면 문제의 ip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주장하는 듯 하다. 디도스 공격이 아니라면 선관위 홈페이지 서버의 관리자 권한을 가진 사람이나 해킹을 통해 그런 권한을 획득한 사람이 DB 접속을 차단했다는 뜻이 되는데 점점 더해가는 사태의 심각성과 함께 누가 또는 어떤 단체가 배후로 밝혀질지 더욱 궁금해진다.

: MBC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최소 수 억원의 자금이 들었을 거라고 하는데 일개 수행 비서가 아무 댓가도 없는데 자비로 수 억원을 들여 선거 방해의 목적으로 헌법기관 사이버테러라는 사상 초유의 범죄행위를 저지른다? 만약 경찰이나 여당에서 정말 이런 식으로 결과를 발표하고 국민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한다면 한나라당은 해산해야 한다.

: 진짜 아무 편견없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1) 이번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발각되지 않았을 경우)
 - 나경원 후보 캠프 > 한나라당 > 청와대

2) 이번 사건에 동원된 자금력+기획력을 감당할 만한 개인 또는 단체는?
 - 나경원 후보 캠프, 한나라당, 청와대, 국정원

: 당시 공씨의 범죄로 인해 예상되는 최대 수혜자는 나경원 후보 캠프고 최구식 의원이 나후보 캠프의 홍보기획단장이었으니 당연히 고가의 장비와 해커 세 명을 동원할 수 있었던 수 억원의 자금 출처는 나경원 후보 캠프나 한나라당일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한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테러든 조작이든 총괄 기획은 나이도 어리고 컴맹에 가깝다는 공씨가 단독으로 했을 리 만무하고 공씨는 일개 하수인에 불과할 확률이 높다.

: 지금이 고무신 나눠주면서 선거부정 저지르던 '못살겠다 갈아보자' 시절도 아니고 군대에서 부재자 투표 때 야당 찍으면 무효표 만들고 얼차려 주던 군사정권 시절도 아닌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저런 짓을 생각하고 있는 놈들의 뇌속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정말 궁금해지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2011. 11. 30. 02:16
2011. 11. 30. 00:57

'뼛속까지 친일, 친미(pro-U.S. and pro-Japan to the core)'라는 표현은 이상득과 전여옥이 미국산 쇠고기 시장 재개방을 위해 버쉬바우 전임 주한 미대사를 만났을 때 이상득이 했던 말이며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아래는 원본.

[위키리크스 원본 주소]

[경향신문 관련 기사] - 이상득 "이대통령, 뼛속까지 친일, 친미"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1087


E.O. 12958: DECL: 12/10/2018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1.  (C) SUMMARY: Over a lunch of U.S. beef, the Ambassador and Vice Speaker Lee, who is President Lee Myung-bak's elder brother, discussed solutions to the continuing controversy
over the planned reopening of the Korean market to U.S. beef.  Vice Speaker Lee and recently reelected lawmaker Chun Yu-ok were pessimistic the controversy would subside soon, but
optimistic that U.S. beef would soon reenter the market.  Lee suggested it might be politically better for the Lee government to delay the official opening until after the June 4 by-elections.  If not, a sweeping defeat for GNP candidates could damage future ROKG initiatives.  Because progressive,
anti-American, and pro-DPRK leaders had directed the ROKG and the Korean media for the last ten years, it was difficult now for President Lee to overcome media bias and well-organized
leftist groups to resolve the beef issue.  He thought, however, the situation would be easier once the
GNP-controlled National Assembly started its session in June.  Both the Vice Speaker and pro-MB lawmaker Chun Yu-ok acknowledged that President Lee had made some mistakes that had contributed to people's dissatisfaction with his Administration.  Most of the President's missteps they attributed to President Lee's lack of "political instinct." They both also expressed disappointment in Park Geun-hye and other conservative leaders for not supporting President Lee
on beef and other issues.  Lee emphasized that U.S. support was key to helping the ROKG overcome the beef problem. Vice Speaker Lee said that President Lee was pro-U.S. and
pro-Japan to the core
so there should be no questioning President Lee's vision.  Ultimately, President Lee would do right by the alliance and work well with both the U.S. and Japan.  Lee said that the main task in the new National Assembly would be to pass the KORUS FTA.  END SUMMARY.

아래는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미대사관 비밀문건 전문. 


2.  (C) During a pleasant lunch with President Lee's elder brother Lee Sang-deuk, the Ambassador asked if there was some way to diffuse the controversy surrounding the reopening of the Korean market to U.S. beef.  Vice Speaker Lee explained that the "386 generation" focused on anti-American, pro-DPRK, pro-Unification policies while younger Koreans are now protesting against U.S. beef with a different motive. Despite the different motive, the ideology of the 386-ers had
influenced the young people protesting the reopening of the Korean market to U.S. beef imports.  While ten years ago some felt that the U.S. was more of an enemy than North Korea, now young people are worried about finding a job.  While some worry that anti-beef sentiment could spiral into anti-U.S. sentiment, Lee thought that once U.S. beef was available in Korean stores, anti-beef protests would subside.  Eventually, as holdovers from the anti-American/pro-DPRK period
(1998-2008 Roh Moo-hyun and Kim Dae-jung presidencies) were pushed out of positions of power and influence, such issues would cease to be big problems.

3.  (C) Lee said he was concerned that if the beef agreement were finalized to allow imports of U.S. beef to begin entering Korea before the June 4 by-election, it could become the main election issue and cause GNP candidates to lose. This would deal a heavy blow to President Lee.  Therefore, waiting until after the election to finalize the agreement would be helpful.  The Ambassador said waiting until after the election would damage Korea's credibility in the U.S.
Congress since there had already been delays.  Lee replied that if there were trust between the governments, one more small delay due to real political concerns should not make much difference.  Rep. Chun disagreed with Lee and said she thought it would be better to keep the current date and start beef imports.  Lee conceded that he originally wanted the beef market to reopen as quickly as possible so people could eat U.S. beef but had changed his mind recently because of the potential loss in the by-election.


4.  (C) Lee said the conservatives won the December presidential and April National Assembly elections convincingly, but some conservatives were disappointed by President Lee's focus on pragmatism at the expense of traditional conservative principles.  Due to disappointment with Lee, many of the pro-U.S. conservatives, such as Park Geun-hye and her supporters, were not interested in helping Lee handle his latest crisis.  Representative Chun added that conservatives should thank President Lee for succeeding in changing the government.  She admitted, however, that Lee Myung-bak's over-emphasis on pragmatism was a mistake, and the disappointment of some conservatives was regrettable but understandable.


5.  (C) Because the April 9 National Assembly elections were just 45 days after Lee Myung-bak's February 25 inauguration, the public intra-party struggle was inevitable, Lee lamented. Compounding the issue, some Lee Myung-bak supporters had tried to monopolize power by dominating the nomination process.  Lee said he had put a brake on this movement, which led certain GNP lawmakers to sign a petition against his nomination.  These people have since apologized, Lee said. Chun said some were opposed to Lee Sang-deuk remaining in the National Assembly, but because Lee has an important role to play, she had defended the choice to nominate Lee.

6.  (C) Lee said that he was meeting traditional conservative leaders on behalf of President Lee to try to smooth over differences and convince them to support the President.  Both Chun and Lee were not optimistic, however, that the pro-Park lawmakers could assimilate well into the GNP and support
President Lee, even if their party membership were reinstated.  Chun said that the likely scenario would result in President Lee fighting not only the opposition party but also the pro-Park lawmakers within the GNP.  Chun said the reason she was pessimistic was that the pro-Park lawmakers
had been critical of the ROKG regarding the beef agreement.


7.  (C) Before President Lee settled into office and "found his place," there was a struggle over nominations and controversy surrounding beef, Lee said.  Compounding these problems, Lee appointed a group of rich, U.S.-educated Blue House senior secretaries and did not understand why Korean people would rally against such appointments.  President Lee kicked off his term without assessing the situation and making concessions as needed.  The reason for this, Lee said, was that President Lee has "poor political instinct" since he had not been directly involved in Korean politics for very long.  Worse still, many of President Lee's close aides had also never run for the National Assembly.  Therefore, neither President Lee nor his aides were able to imagine the problems that arose.


8.  (C) Lee said that the lack of outrage over the Chinese students who attacked some Koreans should not be a worry to the U.S. since Lee Myung-bak was not pro-PRC.  There is a broad base built up over the decades fighting the dictatorships in Korea and supporting pro-DPRK policies, Lee
said.  USG leaders should realize that it will take time for conservatives to unite and overcome this entrenched organization.

9.  (C) Chun pointed out that the ROK was closer to the U.S. than to China due to recent history and this explained why Koreans reacted more vehemently to the beef controversy than to the violence by Chinese students.  Chun pointed out that conflicts between close friends or family members can be the most severe.  Also, the fact that Japan belonged to the visa waiver program and the ROK did not contributed to sensitivity on all issues American.  Chun said her daughter recently returned from study in the U.S. and wondered why there was a debate over U.S. beef.  More Koreans needed to have the chance to go to the U.S. to dispel myths about the U.S. and
about U.S. beef, Chun concluded.

10.  (C) The Ambassador said that President Lee was respected, more in the U.S. than he was on April 18, when the beef agreement was signed, because people now see how difficult his decision was in light of the resultant domestic opposition.  The Ambassador assured Lee that the USG
appreciated President Lee's firm support of the U.S. and that the highest levels of the USG, especially President Bush, were sensitive to the political situation in Korea and would not press for controversial decisions while the situation remained difficult.  President Bush said during the summit
that no issue was a litmus test for the U.S.-ROK relationship since the USG understood there were domestic concerns influencing the handling of sensitive issues.

11.  (C) Representative Lee said that President Lee Myung-bak is pro-U.S. but there are still some pro-DPRK elements in the press and in business.  Therefore, the U.S. needs to help President Lee until these elements are replaced naturally over time.  Some doubted President Lee, but Lee said he knew Lee's fundamental views were pro-U.S. and pro-Japan.


13.  (C) Vice Speaker Lee is considered the most influential lawmaker in the National Assembly due to his relationship with President Lee and his status as the most senior conservative legislator.  The frustration with and criticism of his brother, however, reflected an underlying tension between the two.  National Assembly sources note that President Lee asked his elder brother not to run for National Assembly and was hurt when Lee ignored his advice and ran for a sixth term.  This could have contributed to President Lee ignoring the more politically astute Vice Speaker's views on
matters of personnel and politics.  A long-time proponent of compromise, Lee has the authority and know-how to help his brother address complaints about how he is running the country.  The big question is whether President Lee will accept the help.


[한국 관련 CRS 문건 리스트] (CRS = 미의회조사국)

[2011.8.30일 공개된 주한 미대사관 문건 리스트, 2010.2.25일 문건이 가장 최근 문건임] 

[FTA 관련 미의회조사국 보고서],_January_13,_2009

2011. 11. 29. 00:04

이국철 비망록에 대해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사

이국철은 비망록을 다섯 권 썼다고 하는데 이중 공개된 것은 신재민에 관한 것, 혜인스님에 관한 것, 검찰에 관한 것, 이렇게 총 세 권이다. 나머지 두 권은 어떤 내용일까. 그리고 이국철은 비망록 공개를 협상 카드로 사용한 정황이 분명한데 대체 그 협상의 카운터파트는 누구였을까? 아직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두 권에 그 사람이 있을 것인가? 저 위의 사진에서 이국철이 적은 내용처럼 검찰을 사유화하여 친위병으로 이용하고 대한민국을 개인의 나라로 만들고자 했던 살아있는 권력이 바로 그 사람일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검찰총장 후보들이 대통령한테보다도 더 잘 보이고 싶어했다던 그 사람, 각종 정보기관을 쥐락펴락하면서 민간인 사찰 및 같은 당 정치인 뒷조사의 최종 배후로 지목되었던 어떤 대군님이 떠오르지만...그건 아직 알 수 없는 노릇이다.

PS. PD수첩을 보면서 궁금했던 점
: 창원지검에서 시작된 기획수사는 누가 지시한 것일까?
: SLS 직원이 공개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수상한 언행은 무슨 의미일까?

2011. 11. 26. 20:17
검찰과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목 끝까지 차오른 느낌이다. 특히 그랜저 검사 사건에 이어 어제 불거진 벤츠 검사 사건을 보면 검사들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옷만 벗으면 처벌 받지 않는다는 게 점점 상식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나라도 권역별로 나누어 각 지역 검사장과 지방경찰청장에 대해서는 직선제를 도입해야 한다. 판사 출신 변호사가 한 권역을 책임지는 검사장이 되기도 하고 평생 현장에서 치열하게 봉직한 형사 출신도 지방경찰청장이 될 수 있는 그런 날이 와야 한다. 선거비용 걱정에 대해서는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도 큰 부담없이 출마할 수 있도록 선거공영제를 십분 활용한 선거제도를 고안해야 할 것이다.
2011. 11. 11. 12:52
1. FTA 반대 기사1 - 일본의 한 경제전문가가 한미 FTA를 '한국에 극도로 불리한' 협정이라고 표현하고 그 논거를 일일이 설명함.

[해외 시각] "한미 FTA, 한국에 극단적으로 불리한 '독만두'"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가운데 일본의 전 경제산업성 관료가 "한미 FTA는 한국에 극단적으로 불리한 '독만두'가 들어있는 협상"이라고 경고해 주목된다. 이 나가노 다케시 교토 대학 교수의 경고는 한미 FTA를 추종하는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과는 정반대다.

나가노 교수는 지난 2011년 10월 24일 일본 경제 잡지 <다이아몬드> 온라인 판에 실린 기고에서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TPP(환태평양 경제 제휴 협정)'를 지지하는 일본인은 "라이벌 한국이 한미 FTA에 합의했기 때문에 일본도 늦어서는 안 된다"고 선동해왔다"며 "한미 FTA의 무참한 결과를 보면 현실은 정반대"라고 설명했다.

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통합을 목적으로 농산물, 공산품, 금융·의료 서비스, 지적 재산권 등 모든 분야에서 무역 장벽을 철폐하는 높은 단계의 무역 협정이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에 이어서 미국 등이 추가 가입 의사를 밝히면서, 사실상 '미일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나가노 교수는 이 TPP의 전문가로 꼽힌다.

애초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10일 이 TPP 협상 참여를 결정하기로 했으나, 민주당 자민당 등 여야 의원이 강하게 반대해 결정을 하루 연기했다. 그러나 노다 총리는 "TPP 참여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혀 이르면 11일 중으로 TPP 협상 참여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사실상의 미일 FTA를 놓고 치열한 찬반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나가노 교수는 "한국은 미국에서의 별 실효성이 없는 미국에서의 관세 철폐를 보장받는 대신에 '역진 방지' 규정 '투자자-국가 소송(ISD)' 제도 등과 같은 두려운 조항을 받아들였다"며 "특히 ISD 제도는 각국이 자국민의 안전, 건강, 복지, 환경 등을 위해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결정하지 못하는 '치외법권' 규정인데,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 조항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나가노 교수는 "일본 정부는 ISD 제도가 '독만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며 "TPP 추진론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대해 성대한 환영을 베푼 것을 부러워하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자국의 국익을 미국에 내어준 대가로 미국에서 환영을 받는 것은 당영한다"고 이명박 정부를 조롱했다.

나가노 교수는 "일본도 TPP에 참가하게 되면 노다 수상도 미국에서 국빈 대접을 받을 것이고 정부, 매스미디어는 '일미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기뻐할 것"이라며 "그러나 그 과도한 어리석음의 대가는 엄청난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나가노 교수가 <다이아몬드>에 기고한 글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TPP 교섭에 일본이 참가할 것인가에 대한 결론이 11월 상순까지 나온다. 중대한 상황인데도 TPP에 관한 정보는 부족하다. 그러나 TPP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에 아주 좋은 분석 대상이 있다. 그것은 TPP 추진론자들이 선망하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이다.

한미 FTA가 좋은 참고가 되는 이유는 TPP가 실질적으로는 일미 FTA이기 때문이다. TPP 추진론자들은 "라이벌 한국이 한미 FTA에 합의했기 때문에 일본도 늦어서는 안 된다"고 선동해왔다. 그러나 한미 FTA를 보면, TPP에 참가하는 것이 일본에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도, TPP 추진론자도, 한미 FTA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미 FTA는 한국에 극도로 불리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미 FTA의 무참한 결말이 어떤 것인가를 일본이 처한 상황과 대비하면서 보자.

우선, 한국은 무엇을 얻었는가. 물론 미국에서의 관세의 철폐이다. 그러나 한국이 수출을 할 수 있는 공업 제품에 대한 미국 쪽의 관세는 이미 충분히 낮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겨우 2.5퍼센트, 텔레비전은 5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 게다가, 미국 쪽의 2.5퍼센트 자동차 관세 철폐는 만일 미국산 자동차의 판매나 유통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미국 기업이 판단하는 경우에는 무효가 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원래 한국은 자동차도, 전기 전자 제품도, 이미 미국에서의 현지 생산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관세의 존재는 기업 경쟁력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글로벌화에 의해 해외 생산이 진전되어 있는 현재, 제조업의 경쟁력은 관세가 아니라 통화 가치로 결정된다. 즉,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작금의 낮은 원화 가치 덕택이고, 일본 수출 기업의 부진은 높은 엔화 가치(円高) 때문이다. 더 이상 관세는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무의미한 관세 철폐의 대가로 자국의 자동차 시장에 미국 기업이 들어오기 쉽도록 제도를 변경할 것을 요구받았다. 미국의 자동차 업계가 한미 FTA로 인한 관세 철폐에 대한 대가를 미국 정부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은 배출량 기준 설정에 있어서 미국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과 함께 한국에 수입되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서 배출 가스 진단 장치 장착 의무나 안전 기준 인증 등 일정하게 부과되는 의무 사항을 면제해주었다. 즉, 자동차의 환경·안전에 관한 한국의 기준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또, 경쟁력 있는 미국산 대형차에 대한 세금 부담을 경감해주었다. 

한국은 쌀 자유화는 피했지만, 그 이외는 실질적으로 전부 자유화되었다. 해외 생산을 추진하고 있는 제조업에 있어서 관세는 무의미하지만, 농업을 보호하는 데는 관세가 여전히 중요하다. 따라서 제조업을 지키고자 하는 미국과 농업을 지키고자 하는 한국이 상호 관세를 철폐하면 그 결과는 한국에는 불리해지는 것으로 끝난다.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유일하게 자유화를 피한 쌀은 미국 최대의 쌀 생산지인 아칸소 주 출신 의원이 불만을 표명하고 있다. 미국 통상 대표도 금후 한국의 쌀 시장을 개방하도록 노력하고, 또 금후의 통상 교섭에서는 예외 품목을 설정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즉, TPP 교섭에서는 쌀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이밖에, 법무, 회계, 세무 서비스에 있어서 미국인이 한국에서 사무소를 개설하기 쉽도록 한국의 제도가 변경되게 되었다. 지적 재산권 제도는 미국의 요구를 전부 받아들였다. 그 결과, 예를 들어, 미국 기업이 한국의 웹사이트를 폐쇄하는 게 가능해졌다. 의약품에 있어서는 미국의 의약품 제조업자가 자기 회사 의약품의 가격이 낮게 결정되었을 경우, 그것에 불복해서 한국정부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농업협동조합이나 수산업협동조합, 우체국, 신용금고가 제공하는 보험 서비스는 미국의 요구대로 협정 발효 후 3년 이내에 일반 민간 보험과 동일하게 취급되도록 결정되었다. 원래 공제(共濟)라는 것은 직업이나 주거지 등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 자금을 분담해서 무슨 일이 있을 때 그 자금으로 돕는 상호부조 사업이다. 그것이 해체되고, 서로의 생활을 돕기 위한 자금이 미국의 보험 회사에 흡수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한미 FTA에는 래칫(역진 방지) 규정과 ISD 조항, 그 외에 두려운 조항이 들어있다. 래칫이라는 것은 한쪽 방향으로밖에 움직일 수 없는 톱니를 가리킨다. 조약 체결국이 나중에 무슨 사정으로 시장 개방을 과도하게 했다고 생각하더라도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규정이다. 이 래칫 규정이 들어가 있는 분야를 보면, 예를 들어, 은행, 보험, 법무, 특허, 회계, 전력, 가스, 택배, 전기 통신, 건설 서비스, 유통, 고등 교육, 의료 기기, 항공 수송 등 다양하게 걸쳐있다. 어느 것이라도 미국 기업에 유리한 분야들뿐이다. 덧붙여, 앞으로 한국이 다른 나라와 FTA를 체결할 경우, 그 조건이 미국에 대한 조건보다도 유리한 경우는 미국에는 같은 조건을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규정까지 들어가 있다.

또 하나 특기할 것은, 한국이 ISD(투자자-국가 소송) 조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ISD는 어떤 국가가 자국의 공공 이익을 위해 제정한 정책에 의해 해외 투자가가 불이익을 입은 경우에는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라는 제3기관에 소(訴)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ISD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ISD 조항에 기초하여 투자가가 정부를 제소하는 경우, 수명의 중재인이 이것을 심사한다. 그러나 심리(審理)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정책이 투자가에 어떤 정도의 피해를 주었는가"라는 점에 국한될 뿐, "그 정책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인가 어떤가"는 고려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심사는 비공개로 행해지기 때문에 불투명하고, 기존 판례에 의한 구속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 심사 결과에 불복할 점이 있어도 상소를 할 수 없다. 가령 심사 결과에 법 해석의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국가의 사법 기관은 이것을 시정할 수 없다. 이 ISD 조항은, 미국과 캐나다와 멕시코 간의 자유무역협정인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서 도입되었다. 그 결과, 국가 주권이 침범되는 사태가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는 어떤 신경성 물질을 연료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와 같은 규제는 유럽이나 미국의 거의 모든 주(州)에도 있다. 그런데, 미국의 어떤 기업이 이 규제로 불이익을 입었다고 해서 ISD 조항에 근거하여 캐나다 정부를 제소했다. 그리고 심사 결과, 캐나다 정부는 패소하여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이 규제를 철폐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어떤 미국의 폐기물 처리업자가 캐나다에서 처리를 한 폐기물(PCB)을 미국 국내로 수송하여 리사이클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캐나다 정부는 환경적인 이유로 미국에의 폐기물 수출을 일정 기간 금지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폐기물 처리업자는 ISD 조항에 따라 캐나다 정부를 제소했고, 캐나다 정부는 823만 달러라는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멕시코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그 지역에 어떤 미국 기업이 유해 물질 매립지를 세우려는 것에 대해서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그 허가를 취소했다. 그러자 이 미국 기업은 멕시코 정부를 제소하여 1670만 달러라는 배상금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요컨대, ISD 조항이라는 것은 각국이 자국민의 안전, 건강, 복지, 환경 등을 위해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결정하지 못하는 '치외법권' 규정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 조항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일본 정부는 어리석게도 ISD 조항이 '독만두'라는 것을 모르고 나아가려 하고 있다. 일본 정부나 TPP 추진론자들은 "교섭에 참가하여 룰을 유리하도록 하면 된다" "불리한 사항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면서 "우선은 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TPP 교섭에서 일본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미미한 것임에 비해서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은 허다하다. 그러한 일방적인 방어전이 될 교섭 과정을 통해서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한미 FTA의 결과를 보면 명확하다.

노다 수상은 한국 대통령처럼 미국에서 환영을 받으면 만족할 것인가? 이와 같이 무참하게 끝난 한미 FTA이지만, 한국 국민은 거의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상황도 현재 일본과 그대로 닮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대하여 성대한 환영을 베풀었다. TPP 추진론자들은 이것을 부러워한 나머지 일본도 TPP에 참가하여 일미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의 국익을 미국에 내어준 대가로 한국 대통령이 미국에서 환영받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도 TPP에 참가하게 되면 노다 수상도 미국에서 국빈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나 매스미디어는 "일미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도한 어리석음의 대가는 엄청난 것이 될 것이다.

2. FTA 반대 기사2 - 자신의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와 일관된 논리로 반대함.

2011-11-07 09:38 CBS 김중호 기자

"처음에 시작을 한 게 잘못이지만 지금이라도 안 한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가 한미 FTA 비준과 관련해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 장 교수는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체면 차린다고 그거(한미FTA) 비준했다가 나라의 앞길이 안 좋아진다면 도중에 안하겠다 하는게 더 맞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미FTA 비준이 결렬될 경우 국제적인 신뢰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미국이야말로 그런 국제조약을 의회에서 인준 안 해줘서 파기하는 경우가 제일 많은 나라"라고 일축했다.

그는 한미FTA 비준을 반대하는 이유로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수준이 높은 나라와의 FTA 체결은 장기적으로 손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었다. "우리보다 2배정도 되는 수준의 나라들하고 자유무역을 통해서 1:1로 경쟁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가 개발 못한 첨단산업들은 영원히 발전시킬 수 없게 된다"는 것. 1960년대 한국이 미국, 일본, 유럽하고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면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바꿔 말한다면 부품소재산업 등 미래 성장산업의 육성은 힘들어진다는 주장이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ISD조항에 대해서도 "한국, 미국 어느쪽에 이득이 되느냐 차원을 떠나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정부의 규제능력을 제약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과연 옳은 것이냐"고 지적했다.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을 경우 국제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도태론'에 대해서는 "양국간 자유무역협정은 순수한 자유무역이론으로 봐서도 맞지 않는데 우리가 먼저 나서서 국제 다자간 질서를 흐리고 나서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미국과 자유무역 협정을 맺어 미국산 쇠고기를 무관세로 수입하면 호주쇠고기를 차별하게 되고, 독일차를 무관세 수입하면 일본차를 차별하게 되는 역차별 효과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다만 "자유무역이라는 것이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하면 서로 자극도 되고 시장도 넓어지고 좋은데 수준이 안 맞는 나라들끼리 하면 후진국이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게돼 있다"며 "후진국하고 체결하면 우리한테 이익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장하준 교수는 한미FTA가 영구적으로 효력을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혼 못하는 결혼'에 비유하며 "취약 부분에 대한 육성책을 충분하게 마련해 놓고 그 뒤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3. 인터넷에서 한미 FTA의 독소조항으로 거론되는 조항들 - 거론된 사례들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고 지나치게 과장하여 극단적으로 묘사한 루머 수준의 글. 예컨대 2) Negative list 같은 경우 금융 분야의 파생상품을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면 루머가 아닌 독소 조항에 대한 적절한 예시가 됐을 것임.

외교통상부의 반박 자료가 있으나 모호하게 정리되어 있고 일방적으로 유리한 해석만 적어 놓아 루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 게다가 외교통상부의 홍보자료들은 FTA 체결로 인한 장밋빛 전망만 나열하거나 장점만 눈에 띄게 배치한 반면 불리한 점은 완곡하게 적어 놓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인상을 줌. 외교통상부 FTA 홈페이지 -

1) 래칫조항(톱니바퀴의 역진방지장치)
낚시할 때 쓰는 미늘 같은 것인데 거꾸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즉 한번 개방된 수준은 어떠한 경우도 되돌릴 수 없게 하는 조항이다. 선진국 및 산업국가 사이의 FTA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소조항 중 하나이다.

( 예 ) - 쌀 개방으로 쌀농사가 전폐되고 식량이 무기화되는 상황이 와도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인간광우병이 창궐하는 상황이 와도 수입을 막지 못함
- 의료보험이 영리화 되고 병원이 사유화 된 후 아무리 부작용이 나타나도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 전기, 가스, 수도 등이 민영화된 후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나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 교육 및 문화 분야가 사유화된 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2)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 (Negative List)
개방해야 할 분야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것(포지티브방식-Positive)이 아니라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을 적시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미래에 생겨날 새로운 서비스 시장은 무조건 모두 개방해야 한다.

( 예 ) - 온갖 도박장, 섹스산업, 피라미드판매업 등 미국의 서비스산업이 국내에 마구 들어오게 될 때 군말 없이 이것들을 수용해야 됨.

3)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 (Future MFN Treatment)
미래에 다른 나라와 미국보다 더 많은 개방을 약속할 경우 자동적으로 한미 FTA에 소급 적용하는 조항이다.

( 예 ) - 일본과 FTA를 체결할 경우, 농산물분야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더 강점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콩이나 보리를 개방했을 경우, 원래 한미 FTA에는 없던 콩이나 보리도 즉각 미국에게 개방해야 됨.

4) 투자자 - 국가제소권 (ISD)
한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제민간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투자자본이나 기업이 피해를 보았다고 판결나면 한국정부가 현금으로 배상해야 한다.(이 경우 당연히 한국보다 힘센 미국의 투기자본 및 초국적기업이 승리) 한마디로 초국적 투기자본이나 기업이 자신의 이윤 확대를 위하여 상대국가의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독소조항이다,

( 예 )- 이 제도로 인해 한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은 국내에서 재판받을 필요가 없음
- 오스트리아 등 미국과 FTA를 추진하거나 맺은 국가들 대부분은 이 독소조항을 채택하지 않았음
- 한국과 유럽의 FTA에 협상에서는 이 독소조항을 논의조차 하지 않음
- 대한민국의 헌법상의 주권 국가의 사법권이 무너짐
- 한국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포함한 공공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게 됨

5) 비위반 제소
FTA협정을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라도 세금, 보조금, 불공정거래시정조치 등 자본이나 기업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기대하는 이익’을 못 얻었다고 판단되면 국제민간기구에 상대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 예 ) - 자본이나 기업이 자신들의 경영실수로 기대이익을 못 얻었을 경우라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
- 국제민간기구에 제소해서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타낼 수 있음.

6) 정부의 입증 책임 (necessity test)
국가의 정책, 규정 등 상대 국가는 그것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지는 조항이다.

( 예 ) -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의 광우병쇠고기 반대여론 같은 경우, 과학적 입증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임
-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의 국제적 위상이 취약함

7)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상대국가의 정책이나 규정에 의한 직접적인 손해가 아니더라도 이를 통해서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상해야 하는 조항이다.

( 예 ) -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 한국은 토지공개념 등 사유를 제한하는 공동체적 법제를 가지고 있음(미국은 한국과 정반대) 그러나 이 독소조항으로 인해 한국의 모든 공동체적 법체제가 완전히 사라지게 됨
- 한미FTA가 한국정부의 모든 정책과 규정의 상위법인양 해석 되게 됨
- 대한민국의 주권이 유명무실해질 위험이 있음

8) 서비스 비설립권 인정
상대국가에서 사업장을 설립하지 않고도 영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내에 설립되지 않은 회사를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다. 따라서 서비스 비설립권 조항으로 인해 한국 정부는 이들 기업들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거나 불법사실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 예 ) - 미국은 각 나라와 FTA를 맺으면서 “FTA이행법”을 만들었음: 이 법에서“미국법률에 저촉되는 모든 FTA규정은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미국인에게 무효다”라고 선언했음(미국에서는 FTA가 단순한 행정협정 일뿐임)

- 한국정부는 한미FTA에 저촉되는 한국의 모든 법(30여개)을 고치려고 함(한미FTA가 조약이며 법률이라고 주장함)

9) 공기업 완전민영화 & 외국인 소유 지분 제한 철폐
한국의 공적이며 독점적인 공기업을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들에게 맛좋고 수월한 사냥감으로 던져주는 조항이다.

( 예 ) - 의료보험공단, 한전, 석유공사, 농수산물 유통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 도로공사, KBS, 중소기업은행, 도시가스, 수도공사, 우체국, 주택공사, 지하철공사, 철도공사, 국민연금, 공무원 연금 등 :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에게 넘어가 사유화 될 가능성이 농후함.

- 수도요금, 전기료, 지하철요금, 가스요금, 의료보험료 등이 대폭 인상되게 됨으로써 서민경제가 파탄 나게 됨

10) 지적재산권 직접 규제 조항 (Trips )
미국의 특허권자가 한국 국민이나 기업에 대한 지적단속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 예 ) - 고가의 오리지널 약보다 값싸고 효과 좋은 카피약 사용 불가능
- 미국의 경우 완벽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성인 1인당 1달에 70만원(700$)의 약값을 지출함(4인 가족기준 월200만원2000$지출)
- 카페, 블로그 , 개인 홈피 등 지적재산권 문제로 엄청난 분쟁을 겪어야 함

11) 금융 및 자본시장의 완전 개방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 더 한국 금융시장이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게 하는 조항이다.

( 예 ) - 외국 투기자본이 한국 내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은행업을 할 수 있게 됨.
-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은행의 주식을 100% 소유할 수 있게 됨
-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감소로 많은 중소기업이 떼부도를 맞게 됨
- 사채 이자율 제한이 없어지고 사채천국이 됨

12) 스냅백 조항 (snapback)
한국 정부가 미국과 약속한 자동차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부여한 자동차 특혜 관세혜택을 언제든지 임의로 일시에 철폐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 예 ) - 미국의 무역보복이 일상화되고 한국경제는 '막장'으로 내몰리게 됨


4. FTA 반대 기사3 - 몇 가지 중요한 쟁점에 대해서 대담형식으로 쉽게 풀어놓음.

美 의회 통과시킨 건 'FTA 협정안' 아닌 '이행법안'...그 이유 알아야 
- 한국은 FTA 협정문 1500페이지가 법, 美는 이행법안 100페이지만 법
- 미국이 FTA 안 지켜도 우리기업 美법원에 제소 못해
- 영리병원 못 막고, 골목상권 무너지고 학교급식(우리농산물) 타격
- 독소조항 고쳐서 통과 시켜야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송기호 변호사(국제통상전문가)

한-미FTA, 이제 공은 한국 국회로 넘어왔죠. 민주당 등 야당은 여전히 반대를 하고 있지만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10월중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대로 통과가 돼도 과연 괜찮은 건지, 선조치할 부분은 없는지 짚어보겠습니다. 국제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 연결을 해보겠습니다.

◇ 김현정> 우선 궁금한 게요. 우리 국회에서 지금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은 한미FTA 협정안 1500페이지 짜리인데요. 그런데 미국 의회가 지금 통과시킨 건 한미FTA 이행법안, 이게 한 100페이지짜리네요?

◆ 송기호> 네.

◇ 김현정> 같은 겁니까? 어떻게 되는 건가요?

◆ 송기호> 다른 겁니다.

◇ 김현정> 어떻게 다릅니까?

◆ 송기호> 우선 미국의 이행법안은 말씀하신 대로 한미FTA 협정문 자체를 그대로 옮긴 건 아니고요. 그 중에서 필요한 부분, 그리고 또 미국의 국내법 체계를 변화시키지 않아야 된다는 그런 내용을 달아서 별도의 법조항을 만들어서 미국은 이행법률안을 처리하는 거죠.

◇ 김현정> 그럼 우리는 그 협정안 서류 1500페이지 자체를 다 법안으로 만드는 것인데, 미국은 취사선택을 해서 100페이지로 추렸다는 이야기인가요?

◆ 송기호>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내용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이 있는데요. 지금 대표적으로 한두 가지 정도가 다릅니다. 하나는 미국법과 FTA 협정문이 다를 경우에 FTA 협정문이 무효다, 그 조항이 하나 있고요. 두 번째는 미국 정부가 FTA 협정문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 정부를 한국 기업이 미국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 이게 지금 법률안으로 들어가 있는 것인데요. 이런 것은 FTA 협정문에는 없는 서로 굉장히 다른 내용입니다.

◇ 김현정> 그럼 만약에 우리 기업이 미국 가서 뭘 하다가 우리 FTA에 어긋나는 어떤 불이익을 당했다, 그럴 경우에 미국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는 건가요?

◆ 송기호> 그렇죠. 미국 법원에 그런 걸 가져오지 말라, 이렇게 이행법안 102조에 나와 있는데. 그 이유는 미국 이행법안에 따르면 한미FTA 협정문 자체는 미국에서는 법이 아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FTA협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법원에 제소할 수 없게 그렇게 만들어놓은 겁니다.

◇ 김현정> 반면에 미국 기업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뭘 하다가 FTA 협정안에 들어 있는 내용으로 불이익을 당한다, 그러면 바로 우리 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것이고?

◆ 송기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인데. 우리는 애초에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1500페이지, 거기는 100페이지인데?

◆ 송기호> 애초 2006년, 2007년부터 그런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시민사회에서는 제기를 했죠. 그런데 미국은 이게 일종의 편법인데요. 미국 헌법에 따라서 정식 조약으로, 즉 우리처럼 우리 대한민국 국회가 하는 것처럼 협정문 자체를 조약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미국 상원의 3분의 2의 찬성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렇게 이행법률안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떤 일종의 미국 의회주의라고 할 수 있겠죠.

◇ 김현정> 그러면 지금이라도 우리도 미국처럼 100페이지짜리 취사선택한 이행법안 만들어서 통과시킬 수는 없는 건가요?

◆ 송기호> 지금 국회 다수당의 입장은 그런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협정문 자체를 우리는 다 그대로 법률로 통과시키겠다, 그런 입장인데요. 좀 더 나은 방법은, 제 생각에는 우리는 우리대로 협정문안 중에서 우리가 수용하기 어려운 또 우리나라 중소상공인이나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이른바 독소조항들을 고쳐서 그것을 통과시키는 것이 우리에게는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최소한의 독소조항이라도 걸러내자, 이런 말씀이세요. 지금 고치는 건 가능한가요?

◆ 송기호> 그럼요. 이게 150개 나라가 있는 그런 세계무역기구 협정이 아니고, 우리와 미국 사이의 1:1 협정이기 때문에 설령 미국 의회가 통과시켰다 하더라도 가령 우리 국회가 통과시키지 않고 있으면 이건 전혀 쓸모가 없기 때문에, 미국 의회가 결국은 한국 국회의 통과를 위해서라도 다시 이걸 재협상에 응할 수 있는 기본적으로 그런 구조인 거죠. 양자간의 1:1 그런 협정이니까요.

◇ 김현정> 미국은 이미 최종통과를 오늘 중으로 시켜놓을 텐데요. 우리가 이제 와서 재재협상을 하자고 하면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가 상당히 하락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렇게 보시는 분들도 계시던데요?

◆ 송기호> 그건 오랫동안 정부가 재협상을 무시하는 그런 전략으로 일관해온 것인데. 그러나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대한민국 국회에서 상임위원회까지 다 통과시켜놓고 또 그전에 서명까지 다 마친 것을 미국은 두 번이나 재협상을 관철 시켰거든요. 그러니까 국제외교관계에서는 결국은 양국 사이에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인 것이지, 어떤 객관적인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 김현정> 한 번 통과가 되고 나면 몇 년, 몇 백 년을 갈지 모르는 사안인데 철저하게 하고 가자는 말씀이세요. 최소한의 독소조항이라도 우리가 고치고 가자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부분으로 들어가 보죠. 구체적인 분야별 문제가 될 텐데. 특히 걱정되는 분야, 독소조항이라고 보시는 것은 어떤 건가요?

◆ 송기호> 우선 영리병원 문제가 있는데요. 한미 자유무역협정 부속서에 보면 일단 영리병원제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보건정책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런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지금 인천이나 경제자유구역 이런 데 한 번 영리병원이 들어와서 그 결과 우리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망가지고 나면 우리 대한민국 국회가 영리병원제도 자체를 폐지시킬 수 있는데, 한미FTA 체계가 들어서면 그게 FTA에 위반이 되거든요.

또 하나의 문제는 지금 골목상권이라든지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중소기업 적합업종도 우리가 도입하려고 하고 있고 또 사업조정제도, 또 전통재래시장 보호제도, 이런 것을 지금 도입하고 있거나 이미 도입중인데.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보면 그러한 유통업, 도매업, 소매업에 대한 규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놨거든요. 그 문제도 최소한 한국이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또 중소유통업자를 위해서 정책자율성을 갖는다는 것은 명시적으로 유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우리가 지금 동네빵집, 동네슈퍼, 동네의 조그마한 영세업자들 살리자고 여러 가지 법안 만들고 있는데, 그럼 이것들이 다 불법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 송기호> 그렇죠. 한미 자유무역협정에는 한국이 그러한 도소매업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조치, 지금 말씀하신 그런 동네가게를 살리기 위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집어넣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게 현재 들어가 있지 않은 거죠. 따라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구조상으로는 거기에 명시를 시켜놓지 않은 나머지 어떤 조치를 취할 수는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 김현정> 또 다른 건 뭐가 있을까요?

◆ 송기호> 결국은 우리가 많이 이야기해온 투자자국가제소문제인데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는 투자자국가제소라는 것을 넣어서 만약에 한국 정부의 어떤 조치가 한국에 들어와 있는 미국 기업의 이익을 해친다고 그러면 바로 뉴욕에 있는 국제중재에 한국 정부를 회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제도가 정말로 가동이 된다면 정책자율공간을 굉장히 크게 축소될 것이고요.

또 하나는 학교급식 문제를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우리 학교급식에 세금이 많이 들어가고 그래서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서울시도 그렇고 충남 등 그런데.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보면, 가령 농림부가 직접 관장하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시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또 학교가 관장하는 학교급식에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 점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계세요. 자동차나 전자 등 제조업분야에서는 상당히 이득을 볼 것이다, 이렇게 전망이 되고 있어서 미국 내에서 자동차업계에서 반발하지 않느냐. 협상이라는 것이 어차피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내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 어떻게 모든 걸 다 챙기면서 가겠는가 라고 하는데.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 송기호> 모든 걸 다 챙기자는 이야기는 아니죠. 제 말씀은 우리 사회가 그런 자동차, 자동차 부품 관련 분들만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고요. 또 하나의 문제는 지금 한EU FTA 체결되고 발효되고 100일이 지났는데,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정말 자동차 수출이 늘어서 경제가 좋아졌는가.

지금 미국이 90년대 소득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하고 있고 또 월가시위도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국제적인 경제위기에 자칫하면. 우리가 평균관세가 한 40% 되고 공산품의 경우는 8% 가까이 되는데. 우리만 이렇게 높은 관세를 한미FTA를 통해서 아주 극단적으로 낮춘단 말이죠. 그러면 국제경제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한국이 더 취약해지고 무역흑자는 줄어들 것이다, 그런 점을 우리는 전체적으로 다 보아야 되는 것이지. 자동차나 자동차부품 회사를 살리려고 우리가 국가 전체에 이런 제도를 운영할 수는 없는 거겠죠.

◇ 김현정> 이득 보는 것은 전자, 자동차, 이쪽 제조업밖에 없다고 보세요?

◆ 송기호> 그렇게 봅니다.

◇ 김현정> 일자리도 많이 생긴다고 하던데?

◆ 송기호> 문제는 그렇게 생기는 일자리라는 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1차적으로 우리의 농업이라든지 중소상공인 관련한 보호를 할 수 없는 과정에서 우리의 일자리도 감소될 것이고요. 그리고 과연 자동차나 자동차부품 쪽에서 늘어날 수 있는 일자리라는 게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점은 저희들이 좀 더 심층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한EU FTA 100일 지나서 과연 일자리가 얼마나 늘었는지 저희들이 좀 따져보고, 충분히 지금 국제경제위기가 돌아가는지 보고 여러 가지를 다 검토해야 된다고 봅니다

5. FTA로 인한 효과가 정부의 선전대로 나타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기사3

칠레산 와인의 가격거품이 심각하다. 한국 소비자들은 FTA를 체결해 관세가 전혀 붙지 않는데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을 치르고 칠레산 와인을 마시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 8일 발표한 국제 물가비교에서 칠레산 '몬테스알파' 카베르네 쇼비뇽 국내 판매가격(4만4000원)은 조사대상 18개국 중 가장 비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FTA로 관세 없어지고서 가격 오히려 올라

와인 소비자가격은 '수입원가+세금+통관·보관·운송비+수입상 마진+도매상 마진+소매상 마진(이윤)'으로 구성된다. N사가 수입하는 몬테스알파의 수입원가는 8370원(7.5달러)이다. 여기에 주세(酒稅)와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세금 3875원이 더해진다. 수입과정에서 발생하는 통관비, 보관비, 국내 운송비 등은 수입원가의 8% 정도. 이 모든 것을 더해도 몬테스알파의 국내 수입상 입고가격은 1만3000원이 채 안 된다. 그러나 소비자 판매가격은 4만4000원이다. 유통 과정에서 수입상과 도·소매상 등이 챙기는 마진이 3만1000원이나 되는 것이다.

2009년 칠레산 와인에 부과되던 15%의 관세는 완전히 없어졌다. 몬테스알파 수입원가(8370원)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와인 1병에 붙는 총 세금은 5711원에서 3875원으로 1836원이 줄었다. 그러나 몬테스알파의 판매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2008년 3만5900원에서 해마다 올라 올해는 4만4000원까지 뛰었다. 수입상·유통상들이 높은 마진율로 폭리를 챙기는 통에 정작 소비자들은 FTA로 인한 관세 인하의 이득을 전혀 누리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 와인 마진은 30~40%, 칠레산 와인은 최고 70%까지 폭리"

K사가 수입하는 칠레산 와인 '1865'도 비슷한 가격 구조다. 수입원가는 8달러 정도로 1만원이 채 안 되지만,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4만7000원이다. 1865나 몬테스알파 같은 인기 와인은 수입상들이 도매상에 물건을 넘기면서 50~70% 정도의 마진을 챙긴다. 한 와인 수입업자는 "칠레산 와인은 국내 와인 시장에서 가격구조가 가장 왜곡된 상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미국산 와인은 업체들이 30~40%의 마진을 남기지만, 칠레산은 50%에서, 심할 경우 70%의 마진을 남긴다"며 "가격을 높게 붙여도 장사가 잘되니 업체 입장에서 굳이 가격을 낮출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와인 전문가는 "2000년대 들어 칠레 와인이 국내에서 비정상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가격 거품이 생겼다"며 "국내에선 필요 이상으로 비싼 칠레 와인이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이상한 현상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소비자들은 '칠레 와인은 저렴하다'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고, 수입상과 유통상은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국내에서 칠레산 와인 소비는 크게 늘었다. 2001년 칠레산 와인 수입액은 65만2000달러에 불과했지만, 2010년 수입액은 프랑스산 와인(3598만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450만달러에 달한다. 10년 사이에 37배나 성장한 것이다. 올해 9월까지 칠레산 와인 수입액(2224만달러)은 미국산·스페인산·호주산 와인 수입액을 더한 것보다 많다. 와인업계에서는 "칠레 와인업자들은 한국 덕분에 먹고 산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대형 유통업체 와인 바이어 S씨는 "몬테스알파나 1865를 만드는 와이너리는 모두 한국에서 번 돈을 가지고 미국·일본 등 시장에 진출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몬테스알파M, 한국은 19만5000원-영국은 5만8000원

중저가 와인에 비해 수요가 적은 고가 와인에서도 칠레산은 가격거품이 심하다. 2005년 APEC 정상회담 만찬 때 사용된 '몬테스알파M'은 국내에 잘 알려진 프리미엄 칠레 와인이다. 국제 와인가격 비교 사이트인 와인리서처닷컴(에서 2006년산 몬테스알파M의 국가별 가격을 살펴보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한국 가격은 19만5000원으로 나오는데 영국에선 3분의 1도 안 되는 5만8000원이었다. 달러로 표시되는 가격을 10일 기준환율(원달러)로 환산해보니 홍콩(6만5000원)·그리스(7만9000원)·미국(8만8000원)에서도 국내의 절반 이하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와인이 상대적으로 비싼 중국(14만4000원)조차도 한국보다 5만원 이상 저렴했다.

'칠레산 와인이 과도하게 비싸다'는 비판에 대해 와인업계는 "높은 세금과 수입과 판매를 겸할 수 없는 유통구조적인 문제가 가격을 올리는 주요 원인"이라고 항변했다. 몬테스알파를 수입하는 N사 관계자는 "2년째 적자를 보는 마당에 수입업체가 폭리를 취한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인터넷 판매를 할 수 없어 인건비나 매장 유지비가 많이 드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화점 내 매장에서 나가는 수수료나 대형마트 판촉 등 판매관리비 부담도 와인 가격을 높이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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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론 : 우리나라의 정보가 너무 빈약해서 미국측 정보를 검토하고 싶지만 시간도 능력도 없어서 그냥 상식선에서 판단하기로 함. 즉, 아무리 경제위기라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경제위기 상황이니까 더욱, 미의회에서 미국에만 불리한 협정을 통과시켰을 리가 없음. 그런데 우리 정부에서는 홍보에만 치우쳐서 미국에 유리하고 우리에게 불리한 부분을 곧이곧대로 알려주지를 않고 있음. 다시 말해 외교통상부 자료를 보아도 그 자료만으로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힘듬. 그래서 객관적인 사실에 접근한 것으로 판단되는 1번과 4번 기사를 참고하여 2번 장하준 교수의 권위를 믿고 그의 의견(한국이 미국보다 자동차, 가전, 조선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후진국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의 자유무역협정은 불리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 - 게다가 1번 나가노 교수의 의견을 보면 자동차, 가전, 조선 등도 FTA를 통해 그렇게 크게 이익을 보는 것 같지도 않음)에 동의하기로 결론 지음. 한미 FTA 비준 반대함. 끝.

2011. 11. 10. 20:21
이명박의 공정사회는 '고소영'에서 시작해 '영포회'로 끝났다. 이번 경찰청 인사를 두고 나오는 무성한 뒷말들을 보니 이명박의 뻔뻔스러움에 정말 질리다 못해 참혹한 기분이다. 이명박의 챙기기 회전문, 정실 인사에 대해서는 이제 보수 언론조차도 입이 아파 말하기 싫을 정도가 됐다.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특징은 적반하장의 뻔뻔함이다. 전과 14범이 '법과 원칙'을 구호로 내세울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지만 - 참고로 판사출신이던 노무현의 참여정부 캐치프레이즈는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였다. 법조계에 오래 있었던 노무현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이라는 게 힘의 논리에 따라 강자의 지위를 공고히 하도록 동원되는 수단과 방편에 불과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고소영', '영포회', '유명환 외무장관 딸 사건', '인천공항 편법 매각 기도', '민간인 사찰, '정치인 도청' 등 불공정의 극치를 달리는 정권이 '공정사회'를 내걸고, 2MB18NOMA 아이디 사건(범죄불성립), 미네르바 구속사건(무죄판결 및 관련 법조항 위헌판결), FTA 관련 SNS 의견 구속수사 원칙 표명(여론의 뭇매), G20 쥐포스터사건(해외토픽으로 국제망신), 각 방송사에 하달된 방통위의 심각한 검열 지침 및 규제, 동영상 사이트 검열로 네티즌의 Utube로의 대규모 이동, 영진위/ 게임물등급위원회 등의 과도한 검열 증가 등 전방위에 걸쳐 표현의 자유(한국을 방문한 슈미트 구글 CEO가 대놓고 표현의 자유를 걱정할 정도니 할 말이 없다)를 억압하고 검열의 일상화를 위해 사력을 다하던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고, 대통령 연설도 다른 나라 로비업체에 대필 시키고 FTA 협정문 하나 제대로 번역을 못해 엉터리 번역문을 들고 협상하려했던 천박한 정권이 '국격'을 내세우고, 환율/ 부동산/ 세금 등 재벌과 상위 5%만을 위한 각종 정책만 내놓으면서도 재래시장에서 어묵 먹는 사진 한 컷으로 '친서민'을 내세우고, 뼛속까지 친일/ 친미인 대통령이 친일/ 친미에 목매단 뉴라이트들을 행동대장으로 쓰면서 '국익'을 내세우는 정권이 바로 이명박 정권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역사를 거슬러 거꾸로 가는 이런 정권을 지지할 수 있을까. 상식이 있다면 정말 이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안철수 교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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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24. 15:32
1955년 12월 1일, 목요일이었습니다.

미국 앨라배마 주의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여성이 퇴근길 버스에 올랐습니다. 잠시 후 비좁은 버스에 백인 승객이 오르자 버스 기사는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녀는 이를 거부했고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움직임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미국 흑인 인권운동에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흑인에게 법적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1870년이었지만, 흑인이 백인과 함께 버스를 타는 데는 그로부터 85년이 더 필요했고, 그 변화를 이끌어낸 힘은 바로 작은 '행동'이었습니다.

후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는 여느 날과 똑같은 날이었지만 수많은 대중들의 참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놓았다"'선거'는 바로 이런 '참여'의 상징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변화의 출발점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장선거는 부자 대 서민, 노인 대 젊은이, 강남과 강북의 대결이 아니고,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은 더더욱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선거만은 이념과 정파의 벽을 넘어 누가 대립이 아닌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누구의 말이 진실한지, 또 누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말하고 있는지"를 묻는 선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55년 전의 흑인여성 '로자 파크스'처럼, 우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놓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거 참여야 말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길이며, 원칙이 편법과 특권을 이기는 길이며, 상식이 비상식을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천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것이고 이른 아침 투표장에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하게 청합니다.


안철수 드림

"IT 혁명은 결국 정치를 통해 최종 완성될 것이며 '시민'과 '시민의식'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IT혁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면서 이제는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상태로 오프라인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IT혁명의 선구자이자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안철수 교수는 한국의 현실정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 편지에서 안교수는 그동안 진보vs보수, 서민vs부자 등 한국의 정치판을 규정해왔던 낡은 프레임을 모두 부정하면서 상식vs비상식, 원칙vs편법을 내세운다. 사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는 3김 정치를 종결시켰던 노무현 전대통령이 내건 기치였다. 조작과 왜곡으로 썩어문드러진 해묵은 틀을 거부하고 '상식과 원칙'을 가치판단의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했다는 부분에 안교수와 노전대통령의 접점이 있지만 구시대 매체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던 노전대통령의 때이른 시도와는 달리 안교수는 더 나은 상황인 것 같다. 재스민 혁명을 한번 떠올려 보자.

안교수는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닌 찻잔 자체를 깨뜨리는 변화의 출발은 '행동'이며 제아무리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과 연대가 활발하더라도 결국 오프라인 상의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질 때에만 IT혁명의 완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별이 아예 무의미해지는 때가 오면 이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따로 떼어 생각할 필요가 없을 테지만 '행동하는 양심'의 미덕은 그때가 되도 여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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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20. 15:08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투표일은 10월 26일 수요일입니다.

[나경원 후보 10대 의혹 & 논란]

1. 세금 탈루 의혹

【서울=뉴시스】박세준·안호균 기자 =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변호사 시절에 수임료를 본인이 아닌 직원 명의의 계좌로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겨레신문이 20일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나 후보는 2003~2004년 한나라당 운영위원으로 재직할 당시 서울 중앙지법 근처에 '나경원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사업용 계좌 대신 사무소 여직원 김모씨의 계좌로 일부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무 당국은 세무신고를 축소해 세금을 탈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변호사 사업등록자 계좌(사업용 계좌)를 본인 명의로 신고하고 해당 계좌로 수임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2003년 당시 이 규정은 탈세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으로 간주됐지만 2006년부터는 의무조항이 됐다.

당시 나 후보에게 사건을 의뢰했던 조모씨는 19일 한겨레신문에 "지난 2003년 친형이 공갈협박 혐의 등으로 기소돼 2·3심 형사사건을 나경원 변호사에게 맡겼고, 성공보수금을 포함해 3000만원을 김모씨 명의 계좌로 이체했다"면서 은행 계좌 사본과 메모지를 제시했다. 김씨는 나경원법률사무소의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2. 억대 피부관리실 출입 논란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강남 지역에서 초호화급(vvip급)으로 분류되는 피부 클리닉에 상시 출입해 온 사실이 < 시사IN > 취재 결과 확인됐다. 나 후보가 다니는 곳은 서울 강남구 청담사거리 골목에 자리한 피부관리 전문 의원인 'ㄷ 클리닉'이다. 강남 지역의 내노라 하는 부유층과 톱스타급 연예인들이 단골 고객이다. 재계에서는 ㅎ그룹 회장 부인, ㅋ그룹 회장 부인이 단골 고객으로 꼽히고 있다.

클리닉은 철저한 예약 등록제로 운영된다. 기존 회원의 소개나 병원장과의 친분이 없으면 상담조차 받을 수 없다. 이 클리닉의 병원장은 김아무개 박사. 세계 최초로 더모톡신(Dermotoxin) 주사요법을 개발했다고 선전해 온 인물이다. 더모톡신 주사요법이란 보툴리눔 톡신을 근육이 아닌 피부에 직접 주사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마, 코, 입술, 턱 등 다양한 부위에 주입해 '티 안 나는 성형'에 쓰이는 기법이다.

문제는 가격. 이 클리닉 회비는 1인당 연간 1억원선에 이른다. ㄷ클리닉에 다니는 한 회원에 따르면 3~5억원씩 선금을 내고 다니는 가족 단위 회원도 있다고 한다. 서민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초고가임에 틀림없다. 이곳에서 1억원을 선불로 내고 피부관리를 받고 있다는 회원 ㄱ씨는 "나경원 의원과 클리닉에서 세 번 마주친 일이 있다. 예약 날짜를 못맞췄는지 그냥 돌아가는 모습도 봤다. 억대 회비를 받는 이런 데 다니는 것을 보고 나의원이 돈이 좀 있구나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 시사IN > 이 만난 이곳 회원들에 따르면 1억원 회비는 누구도 깎을 수 없는 게 이곳의 철칙이라고 한다. 클리닉 측은 "항노화 프로그램이 들어가는 40대 이상은 한장, 피부 관리만 받아도 되는 20대는 반장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한장은 1억원, 반장은 5천만원을 말한다.

이에 대해 나경원 후보는 ㄷ클리닉에 다닌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액 회비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나 후보는 "김원장과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로, 바쁜 정치 일정상 피곤하거나 피부가 많이 상했을 때 찾아가서 클리닉을 주로 받곤 했다"라고 말했다. 또 '연회비 1억 회원이 맞냐'는 질문에는 "(김원장이) 나에게는 실비만 받아서 1억원과는 거리가 멀다. 가급적 건별로 계산하지만 모아서도 결제한다"라고 밝혔다. 억대가 아니면 얼마를 줬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프라이버시 때문에 액수는 못밝히겠다"라고 말했다.

나후보는 이어 "시장이 된다면 피부관리 클리닉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건강관리를 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3. 다이아몬드 등 재산 축소신고 논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다이아몬드' 축소 재산신고에 대해 나 후보측은 "재산신고에서 미흡했다"며 사실상 잘못을 시인했다

나 후보 캠프 관계자는 20일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직윤리위원회에 문의했을 때 보석류는 성실신고를 하면 된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나중에 법률을 살펴보니 감정평가액을 쓰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일부 언론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아몬드에 대한 재산신고가 축소됐다고 시인한 것이다.

나 후보는 23년 전 시어머니한테 받았다며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의 가격을 700만원이라고 신고했으며, 민주당에서는 최소 3천만원에서 최고 1억원에 달한다고 축소신고 의혹을 제기했었다.

나 후보측은 뒤늦게 법률을 살펴보다가 잘못된 점을 발견했다고 했지만, 서울시 선관위는 서울시장 후보자에 대한 재산신고를 받으면서 감정평가액을 기재하도록 이미 안내했다.

서울시 선관위 관계자는 "재산신고는 전년도 12월 30일을 기준으로 보석류는 평가가액을 쓰도록 하고 평가가 불가능하면 실거래를 적도록 안내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직자윤리법의 시행에 관한 중안선관위 규칙(대통령령 급)을 근거로 안내했다"며 "공직윤리위원회도 이와 같은 내용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산신고 축소는 '허위사실 유포죄'에 해당될 수 있지만, 실제 법원이 선거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진 신고에 대해 판결을 내린 경우는 거의 없다.

4. 홍신학원 임대료 특혜 의혹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10년째 이사로 재직 중인 학교법인 홍신학원(이사장 나채성)이 본원의 수익용 재산(수익을 내기 위해 사학이 운영하는 건물 등의 재산)인 홍신유치원으로부터 지난 3년간 평균 시세보다 임대보증금은 1/10 가격, 임대료는 절반 가격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특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지난 1998년~1999년 사이에는 임대보증금 2억원에 연간 임대료 200만 원을 받았다. 당시 홍신학원은 홍신유치원에 임대료로 월 16만6천 원을 받고 건물을 통째로 쓸 수 있도록 특혜를 준 것이다.

홍신유치원 부지는 토지 886㎡ 건물 680㎡(205.7평) 규모다. 5개 학급 기준 200명 규모로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인근에서는 가장 큰 사립유치원이다. 이 유치원은 1984년 나경원 후보의 어머니 정효자(70)씨가 설립해 22년간 원장을 역임했고, 2007년부터 현재까지는 나 후보의 여동생 나경민(45, 개명신청 전 나경미) 전 안양대 교수가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1년 서울교육수첩에는 원장 정효자, 교사 나경미로 적시돼 있다.

홍신유치원은 나 후보의 아버지 소유이자 나 후보가 현직이사로 재직 중인 홍신학원과 법적으로는 단순 임차인과 임대인 관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홍신유치원 홈페이지에는 학교법인 홍신학원 부설 홍신유치원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안민석(경기 오산) 민주당 의원실로부터 학교법인 홍신학원의 일반현황 및 연혁, 세입세출 결산서(2008-2010), 수익용 기본재산 보유현황 등의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서울교육청이 안민석 의원실에 제출한 학교법인 홍신학원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의 세입결산서를 분석한 결과, 홍신학원은 홍신유치원으로부터 건물임대수입으로 평균 4천200만 원을 받았다. 이는 주변 부동산 시세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건평 680㎡ 건물에 입주한 홍신유치원의 임대보증금은 2008년 3천262만 원(이자수익 132만 원), 2009년도 7천879만 원(이자수익 267만 원), 2010년 3천891만원(이자수익 11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월 임대료는 340만 원 수준이다.

(홍신유치원의 임대보증금에 대한 수입금액 계산시 적용된 이자율은 3.4%이다. 국세청은 매년 소득세법시행규칙 제23조 1항에 의한 이자율을 고시하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적용된 고시 이자율은 3.4%~5.0%를 오가며 변동했다. 다만, <오마이뉴스>는 계산의 편의를 위해 2009년 8월 고시된 이자율 3.4%를 대입해 홍신유치원 임대보증금을 산출했다. 홍신학원측이 구체적인 임대보증금액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임대보증금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오마이뉴스>가 19일 강서구 내발산1동 일대의 부동산 업자들을 취재한 결과, 이 지역에서는 홍신유치원처럼 200평대 규모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상가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이 지역 부동산 업자들에 따르면 현재 부동산에 나온 매물 중 건평 231.4㎡(70평) 기준으로 임대보증금은 1억 원에 월 임대료 2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홍신유치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5층짜리 상가의 경우, 198㎡(60평) 규모의 상가 임대보증금은 3천만 원에 월 150만 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 또 다른 상가에 위치한 148㎡(45평)의 학원은 임대보증금 2천만 원에 월 214만 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다. 인근 257㎡(78평) 규모의 상가는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230만 원을 내고 있다.

단순 비교하자면, 이 지역의 70평짜리 상가가 연간 임대보증금으로 1억 원을 내고 매월 200만 원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있으니, 205평 규모의 홍신유치원은 홍신학원 측에 3억 원의 임대보증금과 매월 600만 원 수준의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교육청이 안민석 의원에게 제출한 3년치(2008-2010) 홍신학원 세입결산서에 따르면, 홍신유치원은 2009년을 제외하고 2008년과 2010년 홍신학원 측에 임대보증금으로 3천만 원대를 지불했다. 2009에는 7천만 원대다. 임대료는 3년간 매월 340만 원을 냈다.

5.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서울=뉴스1 박정양 기자) 민주노동당은 19일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 "2007년과 2008년에도 교사들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받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며 나 후보의 해명을 촉구했다.

우위영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나 후보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부친 소유이자 자신이 이사로 재직 중인 '홍신학원(화곡중·화곡고·화곡보건경영고)' 교사들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받은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며 "나 후보는 '의원이 된 후 초창기에 일부 교사들이 낸 것으로 들은 적 있다'며 마치 자신이 연루된 사건이 공소시효가 지난 것처럼 얘기했다"고 말했다.

우 대변인은 "재단 이사장이 제왕으로 군림하며 교사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학의 특성을 감안하면 나 후보가 받은 교사들의 정치후원금이 부친 소유이자 나 후보 자신이 현직 이사로 돼 있는 사학 교사들의 순수한 자발성에 의한 것이라고 볼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소유주의 딸이자 현직 이사가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것만으로도 교사들이 받았을 압박은 충분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육계 일부에서 제기하듯이 학교 행정실에서 세액공제를 해 준다고 하면서 집단적으로 (불법정치자금을)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혀야 할 것"이라며 "나 후보는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지 말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진상을 낱낱이 밝히기 바란다"고 공격했다.

나 후보는 전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의정활동) 초창기에 일부 교사가 (후원금을) 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적은 있지만 집단적으로 냈다는 얘긴 전혀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6. 도우미 술접대 유흥주점 월세 수수 논란

"나경원, 도우미 술접대 유흥주점에서 월세 챙겼다."

13일 밤 서울 신당동의 한 상가건물 앞. 지하 유흥주점의 화려한 간판이 눈길을 끕니다. '도우미 30명 대기' '시설은 룸살롱, 가격은 노래방'이라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흘러갑니다. 노래를 부르며 도우미의 술접대를 받을 수 있는 이 유흥주점이 있는 건물의 주인은 지난해 1월 매각 전까지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였습니다. 나 후보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등록된 상태인 2004년 4월 12일에 남편과 공동명의로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이 건물을 17억 원 정도에 샀고 지난해 30억 원에 팔면서 13억 원 정도의 시세 차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 후보는 이 건물 입주 점포 5곳으로부터 월세 99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는 나 후보가 유흥주점에서만 월 200만 원 이상의 임대료를 챙겼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나 후보가 가지고 있을 당시에는 보증금이) 5천만 원에 월 200만 원 정도 했을 거 같은데요. 현재는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가 238만원 정도 하죠." - 인근 부동산중개사

지난 2007년 이명박 대선 후보가 소유했던 서초동 빌딩 지하 유흥업소의 성매매 의혹 논란이 벌어졌을 때 대변인이었던 나 후보는 "법적으로 보장된 임차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어서 대신 적법한 영업활동을 해줄 것을 여러 번 부탁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관할구청은 해당 유흥업소가 미성년자 고용이나 성매매로 적발된 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다니는 큰길가에 '도우미 항시 대기'라는 낯뜨거운 간판을 달고 있는 유흥주점을 계속 그대로 뒀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좋은 기분 안 들고 이상하고..." - 황현아 / 고등학교 2학년
"기분이 좋지 않죠." - 김○○(30) / 여성 직장인

이 유흥업소 반경 500여m안에는 광희초등학교, 성동고를 비롯해 무려 5개의 초중고교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나 후보는 '성매매 홍보 전단 단속 강화'라는 공약까지 발표한 상태. "주택가에까지 유포되는 음란 광고물 굉장히 많이 보셨을 겁니다. 보시면서 스스로 낯뜨거워지는 경우도 많았을 텐데요. 이러한 부분 정말 뿌리뽑도록 하겠습니다. 발주, 제작, 유포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24시간 수거반을 가동하는 등 유해 요인을 줄이겠습니다.판사 출신의 시장이 서울의 기초질서를 잘 지키게 해서 좀 더 안전한 서울을 만들겠습니다."

나경원 후보 측은 박원순 후보가 월세 250만 원을 내는 것에 대해 '호화월세'라며 도덕성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나경원 후보가 유흥업소에서 매달 200여만 원의 월세를 받은 것은 합법적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7. 오세오닷컴 허위학력 기재 논란

박원순 후보에 대해 허위학력 의혹을 제기해온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서도 허위학력 게재 의혹이 제기됐다. 박원순 선대위의 우상호 대변인은 19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오세오닷컴(의 나경원 후보 약력에 보면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로 기재되어 있다"며 "나경원 후보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의 학위를 가진 적이 없는데 오세오닷컴은 왜 이러한 학위를 기재하고 있는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오세오닷컴'은 법률정보 서비스 사이트로 유료회원에 가입하면 법률서비스와 법조인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특히 나 후보는 오세오닷컴 주식 3천500주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 대변인은 "보통 이와 같은 회사가 국회의원이나 공직자의 이력을 게재할 때는 해당 본인이나 보좌진에게 문의해서 약력을 기재한다.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라며 "나경원 후보 측이 박원순 후보의 학력문제를 제기한 것과 똑같은 관점에서 제기한다. 나경원 후보 측이 이러한 데이터를 오세오닷컴에 제공하지 않았는가? 도대체 오세오닷컴에는 왜 이러한 학력이 기재되어 있는 것인지 답변하기 바란다"고 나 후보를 압박했다.

8. 박원순 후보 벽보 훼손 의혹

서초구, 중구 등 서울 곳곳에서 18일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의 벽보가 훼손된 사실이 확인돼 선관위의 관리 감독 소홀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발단은 이날 오전 출근하던 한 시민이 서울 서초구 서초4동에서 박원순 후보 벽보만 빠진 10.26 재보선 벽보판을 발견하고 이를 찍어 트위터에 올리면서 비롯됐다.

이 시민은 "보고도 믿기 어려워서 출근길 버스에서 내려 10분을 되돌아갔습니다. 111018 07:30경 서초4동입니다. 외부 비닐의 훼손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라며 사진을 함께 올렸다. 실제로 사진에는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배일도 무소속 후보 두명의 벽보만 실려 있었다.

이를 본 트위터러들이 애당초 벽보판에서 박 후보 벽보를 뺀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 시민은 이어 올린 글을 통해 "애초에 붙일 때부터 저렇게 한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상당히 꼼꼼하게 작업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라며 "두번 접혀 있는 게 박원순 후보 포스터입니다"라고 부연설명했다.

그는 "바빠서 신고 못하다가 뒤늦게 서초구 선관위에 어렵게 연결이 되었는데 담당자 분이 방금 나가셔서 처리가 어렵고 한시간 후에 연락 달라십니다"라며 "아예 빼놓다기보단 누군가 훼손한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트위터에는 서울시 곳곳에서 박 후보 벽보가 훼손된 사진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시민은 서초구 방배4동 로고스 교회앞 횡단보도 건너편에서도 서초동과 마찬가지로 박 후보 벽보가 훼손된 장면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나경원 후보 지역구인 서울 중구에서는 박원순 후보의 사진이 한쪽으로 찌그러져 묶여 있는 벽보가 발견되기도 했다. 현행 선거법에서는 선거 벽보를 훼손하거나 철거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 원 이하 벌금형의 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9. 트위터 알바 고용 자작극 논란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 후보가 트위터에 자신을 지지하며 ‘자화자찬’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나경원 후보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nakw)에 “토론회를 보고 나경원 후보를 지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홈피에 들러봤습니다” “콘텐츠가 있는 공약과 정책 정말 멋집니다” 등의 글을 올렸다. 자신을 지지하는 트위터 글은 나경원 후보가 직접 자신의 글을 리트윗(재인용)해 댓글을 단 형태로 올라왔다.

예를 들어 나 후보는 지난 8일 서울시 장애인생활체육대회에 참석해 장애인 청소년들에게 인사하며 포옹하는 모습의 짧은 동영상에, “정말 저 친구들이 의원님 좋아하는 것 같아보여요. 지지합니다”라고 댓글을 달며 리트윗했다. 선거유세 중 한 시민이 음료수를 건네자 “제가 드려야할텐데”라고 말하는 동영상에는 “이거 정말 감동적인데요 ㅠㅠ”라는 글을 달아 내보내기도 했다.

이런 형식은 지지자 혹은 일반 유권자들이 올린 것으로 보였지만, 이글을 올린 사람의 아이디는 나경원 후보의 것이었다. 트위터 상에서는 “자신의 활동에 자화자찬. 북치고 장구치고인가” “나르시즘 나경원? 이게 뭐죠”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 후보가 트위터에 자신을 지지하며 ‘자화자찬’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나경원 후보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nakw)에 “토론회를 보고 나경원 후보를 지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홈피에 들러봤습니다” “콘텐츠가 있는 공약과 정책 정말 멋집니다” 등의 글을 올렸다. 자신을 지지하는 트위터 글은 나경원 후보가 직접 자신의 글을 리트윗(재인용)해 댓글을 단 형태로 올라왔다.

예를 들어 나 후보는 지난 8일 서울시 장애인생활체육대회에 참석해 장애인 청소년들에게 인사하며 포옹하는 모습의 짧은 동영상에, “정말 저 친구들이 의원님 좋아하는 것 같아보여요. 지지합니다”라고 댓글을 달며 리트윗했다. 선거유세 중 한 시민이 음료수를 건네자 “제가 드려야할텐데”라고 말하는 동영상에는 “이거 정말 감동적인데요 ㅠㅠ”라는 글을 달아 내보내기도 했다.

이런 형식은 지지자 혹은 일반 유권자들이 올린 것으로 보였지만, 이글을 올린 사람의 아이디는 나경원 후보의 것이었다. 트위터 상에서는 “자신의 활동에 자화자찬. 북치고 장구치고인가” “나르시즘 나경원? 이게 뭐죠”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나경원 후보 측 관계자는 트위터를 통해 “15일 나경원 후보 트위터에 후보 본인이 작성하지 않은 글이 올라와 혼동을 일으킨 일이 발생했다”며 “확인 결과 시스템 간에 충돌이 일어나 계정연동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오류를 바로 잡았다. 양해바란다”고 해명했다. 논란이 됐던 트위터 글은 16일 모두 삭제됐다.

네티즌들은 “나 후보 쪽 트위터 담당자가 나 후보의 아이디로 접속한 상태라는 것을 깜빡하고 동영상에 댓글을 달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 “트위터를 직접 운영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생들이 맡은 것 같은데 널리 퍼트리는 것까지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하면서 벌어진 일” “시스템간 충돌이 아니라 ‘알바’간 충돌이겠지” 등의 반응을 보였다.

10. 부친 사학재단 감사 제외 청탁 의혹

박원순 캠프의 공동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이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 출마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청탁 의혹'과 관련 "한나라당 의원이 저희 방을 찾은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저희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20일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과 인터뷰에서 "감사할 학교를 선정하는 와중에 저희 방을 찾았다는 것이 대단한 압박이고, 방을 찾아서 학교에 대해서 소상히 얘기했다는 것 자체가 명백히 청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며 이갈이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지금 6년 전이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교에 대해서 전교조가 이러저러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우리 학교는 사실은 그렇지 않고'라고 하는 것은 기억한다"면서 "이것을 넣어라, 빼라 하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학교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으기했던 것 자체가 감사대상이 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화곡중, 고등학교는 16대 국회때 국회에서 감사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하자 50일 끌다가 유일하게 감사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왜 제출하지 않았냐 그랬더니 행정실장이 감사 자료를 불태워버렸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학교가 이미 학교 운영이나 이런 것이 불투명하고 회계장부를 불태울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었던 학교"라고 강조하고 나 후보가 '아버지 학교'라고 말한 것과 관련 "나경원 의원이 큰 거짓말을 했다. 나경원 후보가 2001년부터 현재까지 이 학교의 이사로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임과 동시에 나경원 후보 자신이 이 학교의 이사"라고 거듭 밝히고 "(나 후보가)'나하고 무관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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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15. 05:58

한국은 다문화사회가 아니고 여전히 우리 고유의 문화가 지배적인 일문화사회이다. 다문화사회라고 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뿌리의 문화가 하나의 사회안에 공존해야 함에도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다문화'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된 계기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한 노동자들의 유입과 국제결혼을 통한 여성들의 이주가 급격히 증가하면서부터인데 이미 수십 만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주여성이 한국 사회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 중 자신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면서 한국에 정착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에 정착하고자 하거나 이미 정착한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한국 문화에 어떻게 하면 빨리 동화될 수 있는가에만 쏠려 있을 뿐이고 이들에 대한 각종 지원프로그램들도 적응과 동화에만 촛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가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는 국제결혼가정 자녀들은 한국인으로 태어나 온전한 한국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한국인으로 길러지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서 실질적으로 다문화를 접하며 자라는 경계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유럽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또렷하다. 유럽의 북아프리카나 터키, 또는 과거 식민지국가 출신의 이민자가정은 이민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지키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으며 주류 문화에 잘 동화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다른 문화를 비교적 쉽게 인정하며 용납하는 유럽인들의 관용과 배려가 작용한 측면도 있지만 대부분 가장 중심의 가정 단위의 이민 형태라는 점이 한쪽 배우자의 한국 가족에의 편입의 경우가 대다수인 우리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이민자 문제에 관해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버리고 주류 문화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는 가운데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에 대한 합의를 통한 사회적 '통합'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유럽의 우파는 이민정책의 실패를 주장하면서 그동안 유럽에서는 이민자들을 주류문화에 '동화'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하여 사회적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고 하는 반면, 좌파는 전면적인 동화보다는 민주주의, 세속주의(정교분리), 계몽주의, 인권, 시민사회 등과 같은 핵심가치만 서로 합의한다면 각자 상이한 문화의 공존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일문화/동화(assimilation)'와 '다문화/통합(integration)'의 대립인 셈이다.

요새 우리나라도 매우 흔해진 국제결혼가정 및 외국노동자와 관련한 대립과 갈등이 있다. 서유럽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대립과 갈등이다. 다문화에 반대한다는 기치를 내거는 쪽과 그런 반대가 터무니없다는 쪽의 대립이다. 근래 인터넷에서는 다문화에 반대하는 카페가 차려져 수만 명의 회원이 가입하고 많은 게시판과 언론 기사에서도 다문화주의가 문제라는 식의 댓글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 다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반다문화주의란 오로지 저급한 인종차별주의나 순혈주의를 의미할 뿐이다. 유전적 다양성을 거부하는 근친상간의 순혈주의나 시대착오적 인종차별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히 배격해야 하지만 사람들의 혼동을 유발하는 문제는 있다. 불법체류자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저임금 평준화를 통해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하는 자본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불법체류자 문제는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본, 정부, 불법체류자 중 누가 더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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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후보가 이기기를 바란다. 다만 후보 TV토론을 두어 차례 얼핏 봤는데 너무 수세적으로만 보여 약간 불안한 마음이다. 내용이야 어쨌든 나경원 후보가 박원순 후보보다 훨씬 교활하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상대 후보에 대한 온갖 유언비어성 음해는 신지호 같은 양아치나 알바들을 동원해서 유포하고 자기는 손에 오물을 안 묻히고 이미지와 정책에만 집중하는 식의 역할분담이 잘 이뤄진 것 같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도 다른 이들을 통해 에둘러 나경원 후보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네거티브를 할 수 있을 것인데도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마도 여성 후보라는 특성 때문에 지나친 공격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리 터무니없는 거짓말도 수십 번 반복해서 들으면 참말처럼 여겨지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를 앞둔 민심 속에는 능력(?)이 좋다는 핑계로 사상 최악의 범죄자급 인사들로만 정권의 주요 자리가 채워졌던 쓰레기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준엄한 채찍의 의미도 담겨져 있을 터인데 지금 청와대가 이명박 본인과 후안무치한 측근들의 구역질나는 비리들로 난장판임에도 박후보의 선거를 돕겠다던 민주당에서는 왜 여기에 일사분란하게 총구를 겨누지 못하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박원순 후보 캠프가 어떻게 꾸려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민변, 시민단체 출신의 실무자들과 박후보의 경기고 동문 출신 자문단 정도로만 이뤄졌다면 앞으로도 선거전략이 제대로 나올지 의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안철수 원장도 어떤 식으로든 선거에 개입할 것으로 생각되고 그때를 대비해 지금도 한참 열심히 궁리들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TV토론에서 보이던 박후보의 모습에 답답한 마음이 쉬이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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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17. 22:54

이거 혹시 합성사진일까...원래는 투표하려고 했는데 저런 생난리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투표하지 말라며 애쓰신 시장님의 1인 시위에 따르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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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5. 14:22
“한나라당에 대해 20대는 ‘재수 없다’, 30대는 ‘죽이고 싶다’, 40대는 ‘관심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특히 30대에겐 한나라당 간판도 내밀지 못한다. 나도 지역구 다니다가 30대만 보면 겁이 덜컥 난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여연) 신임 소장을 맡은 정두언 의원은 여권에 대한 심각한 민심 이반 현상을 이렇게 비유했다.

내가 30대라서 그런가, 정말 이명박 얘기만 들어도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어제 권재진, 한상대 인사청문회만 해도 그렇다. 저런 놈들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검찰 2인자 자리에서 지금껏 국정과 기소권을 농단하고 또다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까지 넘보고 있다니 욕지기가 올라온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민정수석실은 이명박과 이상득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정치인과 민간인을 사찰하고 청와대 측근과 여당인사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검찰과 경찰에 압력을 행사하는 그런 곳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곳의 수석비서관을 지낸 자가 법무부장관까지 하겠다고 나서니 도대체 기가 안 차는 노릇이다. 자기 아들의 병역비리와 관련해 영향력을 부당하게 행사한 정황이 곳곳에 드러나는 데도 이미 자체 검증된 사안이라며 정면돌파를 외치고 있다. 국민을 완전 호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아니...우리나라 국민들은 호구 맞다.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판에 한나라당 딱지를 붙인 나무토막을 갖다가 세워놔도 나무토막이 당선되고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저토록 재벌만 열심히 핥아주고 있는데도 최하위계층과 차상위계층에서 오히려 한나라당 지지가 더 많이 나오는 나라니 말이다.

정말 죽이고 싶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날마다 방송이며 언론을 통해 얼굴을 들이밀고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무력감과 절망을 선사하는 사기꾼놈을...

오늘도 대통령이라는 놈이 악마처럼 속삭인다...무슨 짓을 하든 돈이 많으면 최고라고...법이니 도덕이니 하는 따위는 멍청이, 병신들이나 지키는 거라고.

공정사회니 서민우선이니 말만 앞세워 교언영색하는 저 마귀의 세 치 혓바닥을 인두로 지져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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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ni는 상환방식이 독특한 학자금 대출 회사로 대출총액과는 상관없이 졸업 후 소득의 일정 비율로 약 120개월 동안 갚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캘리포니아의 저소득층 학생이 4,000 달러의 학자금을 대출받는다면 졸업 후 120개월 동안 자신의 월소득의 1.7%를 매월 갚는다거나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8,530달러의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이라면 졸업 후 117개월 동안 자신이 얻는 월소득의 14%를 매월 상환금으로 지불하는 식이다. (두 사례의 상환 비율 차이는 미국과 콜롬비아의 소득수준 차이 및 기대소득 차이 탓이다.) 
물론 졸업 후 취직을 하지 못해서 전혀 상환을 하지 못하더라도 약정된 기간만 지나면 계약상의 의무는 종료되지만 거액의 소득을 올리게 되더라도 약정된 비율로 약정된 기간만큼 더 많은 액수를 내야할 수도 있다. Lumni는 2005년 두 명의 콜롬비아계 미국인들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을 참고.

Lumni와 대학생 학자금 대출 문제에 관한 뉴욕타임스 기사는 아래에 무단전재함.

May 30, 2011, 8:25 pm

Instead of Student Loans, Investing in Futures

As the global economy has become more knowledge-based, the importance of a university education has risen dramatically. However, only 7 percent of the world’s population currently has a college degree. There are many reasons why people fail to reach college, including, of course, lack of access to quality primary and secondary schooling. But for millions of students who could succeed in college, the limiting factor is money.

At Fixes, we like to explore ideas that re-imagine how systems can work. Today, I’d like to look at the question of whether there may be a better way to pay for college than with scholarships, grants and loans. Is it possible to finance higher education the way we finance start-up companies?

That’s the approach taken by a social enterprise called Lumni that has raised $17 million to finance the education of a wide array of students in Chile, Colombia, Mexico and the United States. Lumni offers “human capital contracts” to people like Jairo Sneider, who grew up in a low-income, single parent family in Colombia.

Sneider’s dream was to attend college so he could become a nurse and serve his community. To do so, he needed $8,500 — a sum that is close to the average annual income in Colombia. The problem is that financial aid and student loans are far less abundant in Colombia than they are in the United States. Sneider, who was unable to provide collateral or a cosigner, had little hope of getting a loan from a traditional lender.

Here’s the deal that Lumni struck with him: In exchange for $8,530 in financing, Sneider agreed to repay 14 percent of his salary for 118 months after he graduated. At that point, regardless of how much he has paid, his obligation terminates. Although this might sound similar to a loan, an “income contingent” repayment plan like this is far less risky for a low-income student like Sneider. If he has trouble finding a job or switches careers and earns a lower salary than expected — very distinct possibilities — his payments will drop automatically. The terms are, in fact, determined based on his expected earnings. If he ends up earning the average salary for nurses in Colombia, he will end up paying the equivalent of an interest rate of 17 percent, which is the average rate in the country for a student loan. And if he ends up doing better, he will pay more, and Lumni will share in his success.

Lumni has made similar deals with 1,900 students to date. Fifty five percent of them are women and 90 percent are the first in their families to attend college. Most of these students would have otherwise been unable to pay for college. So far, the default rate is under 3 percent.

Education is a wise investment, but it carries risks. Many students fail to graduate. The attrition rate for university students in Colombia is over 50 percent. In the U.S., a third of college students fail to compete their degrees within six years; the most common reason is financial difficulty. But even those who graduate have no guarantees. Many graduates struggle to find work; others find that salaries are lower than anticipated. Today, as a result of the sluggish economy, many young people are defaulting on their student loans, something that can damage their future job prospects and make it difficult to buy a home.

Because of the risks, many students, especially from low-income families, are wary about taking on considerable debt. Millions underfinance their education. They live at home, go without meal plans, try to get by without purchasing text books, or work long hours — all of which make it less likely that they will complete their degrees.

So how do we finance something that is extremely valuable both for individuals and for society — something that, in most cases, should happen, but often won’t happen because the risks are too high?

The best way is to spread the risk. That’s how insurance works. In Lumni’s case, students share the risk with investors, who make more or less based on how well the students do. But they also share it with one another. Lumni pools its investments into funds to balance out the risks. They know that some students will run into difficulties, some will achieve average success, and some will do very well — but they don’t know in advance how any individual student will fare. And students don’t know this themselves. Through diversification, however, their funds can achieve stable returns.

What this means is that the students who have the biggest problems benefit the most. And, in effect, those who decide to become investment bankers end up subsidizing the ones who decide to become social workers. Since a good society needs many different roles fulfilled, everyone benefits.

That, at least, is the theory. Economists are skeptical about human capital contracts — which were first proposed by Milton Friedman in the 1950s — because they have many potential problems and little track record. But Lumni seems to be making them work — at least on a small scale. Whether it can succeed at a larger level remains to be seen.

Lumni was founded by two Colombians, Felipe Vergara, a consultant and entrepreneur who is based in Miami, and Miguel Palacios, an assistant professor of finance at the Owen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 at Vanderbilt University. Growing up in Bogota, Vergara had attended a subsidized private school, which accepted students from a variety of backgrounds. After graduating, he was saddened to discover that some of his close friends could not afford college. Later, he met Palacios, who had done research in human capital investments. Together, they saw an opportunity to address a pervasive problem. “The idea was to provide capital not based on a family’s financial situation,” explained Vergara, “but based on a student’s potential — and without requiring collateral or a cosigner.”

Krystal Shipley
(Courtesy of LumniKrystal Shipley, a sophomore at the University of Redlands, received financing from Lumni this year)

Lumni now has nine years of experience doing this. Vergara says that more of its students have been happily surprised by their earnings than unhappily surprised. Only 11 percent of its students in Colombia have dropped out of college — a rate 80 percent lower than the national average. Economists had warned that human capital contracts would be difficult to enforce. But so far repayment has been consistent across all four countries.

The biggest difficulties have been getting over regulatory hurdles and raising investment capital. Even though Lumni’s early funds were for-profit and performed well, investors remain tentative. However, one set of investors — so-called impact investors, who like to achieve a balance of profitability and “social return” — have embraced the idea. About 80 percent of Lumni’s investments have gone into non-profit funds that are targeted to achieve social goals like financing the education of students who come from indigenous communities, are disabled, or want to work as teachers in rural areas. These nonprofit funds can finance more students than scholarships or grants, because the money is replenished. They act like “pay it forward” scholarships.

Lumni has just begun making investments in the U.S. to provide gap funding to low-income students in California, whose average shortfall, after other sources, runs from $4,000 to $7,000 a year. Krystal Shipley, a sophomore at the University of Redlands, received financing earlier this year. Shipley, who is the first person in her family to attend college, couldn’t make ends meet. “I didn’t really know what to expect until I was actually in college,” she told me. She didn’t want to put more financial pressure on her mother, who had struggled with unemployment. Lumni offered her $4,000 in exchange for 1.7 percent of her income for 120 months after graduating. (Lumni says that this would be the equivalent of a 6.5 percent interest rate if Shipley hits her expected salary.) Shipley prefers this arrangement to taking on more debt. Like many sophomores, she is undecided about her major and has little sense of her earning potential. Whatever happens, Lumni’s payments won’t be oppressive.

To date, 300 of Lumni’s students have graduated and 70 have finalized their obligations. Some have become successful enough to become investors. “Our history is too short to say it can work on a massive scale,” says Palacios. Nevertheless he and Vergara expect that Lumni’s for-profit funds will soon outpace its nonprofit funds as the organization continues to amass data about the reliability of the contracts — and the students. (It took a quarter century for bankers to recognize that micro-loans were commercially viable.)

For Vergara, proving that human capital investments work is essential to unleash the talents of millions. Government subsidies and financial aid are insufficient to address the demand for college financing at the global level: private investors will need to jump in — but it won’t work if they simply offer students more high-interest loans, as they have in the past. To serve millions of low- and moderate-income people, college financing has to be redesigned so it brings less risk and fear.

“The most important asset in the world is people,” says Vergara. “But modern society hasn’t organized itself in a way to invest in most people. I like to think of Lumni as a springboard that allows people to pursue their dreams — it offers a way out of a situation where the ceiling is very close to your head.”

If you have a story to share about your student loan experience, please write in. On Friday, I’ll respond to comments, discuss how Lumni’s experiences have challenged the expectations of economists, and explain how Lumni works to maximize its students’ 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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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ornstein

David Bornstein is the author of “How to Change the World,” which has been published in 20 languages, and “The Price of a Dream: The Story of the Grameen Bank,” and is co-author of “Social Entrepreneurship: What Everyone Needs to Know.” He is the founder of, a media site that reports on social innovation.

2011. 5. 17. 20:50

"ROTC를 지원하게 된 동기가 뭔가요?"

"(씩씩하게)군인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특권을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성으로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은 좀 덜하지 않나요?"

"여성이라고 애국심이 덜하다는 건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ROTC를 지원한다니까 남자친구가 뭐라던가요?"


"절 버렸습니다."

* 제가 재미있게 묘사하는데 소질이 없어서 그렇지 이거 다시 보기 해보세요 진짜 재밌습니다...

2011. 4. 17. 21:44
다음은 "한국 IT 산업의 멸망"이라는 책을 간단히 요약 소개한 기사다.

책은 못 봤지만 기사만으로도 깊이 공감되는 내용이다. 왠지 베스트셀러가 될 듯한 느낌?
2011. 3. 21. 16:14

이번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에 대해 일본 정부가 약 13조원의 배상액을 책정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 배상은 '원자력손해배상법'이라는 법률을 근거로 이뤄지게 되는데 일본의 '원자력손해배상법'은 원자력 손해에 대해 무과실책임주의, 무한책임주의를 취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원전 사업자에게 과실이 있든 없든 원전 사업자(도쿄 전력)가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거대한 천재지변이나 사회적 동란(전쟁, 내란 등)으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원전 사업자의 책임을 면하게 한다(정부가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아무리 도쿄 전력과 같은 큰 회사라도 13조원 정도의 막대한 금액을 손해 배상하게 되면 비록 보험 가입이 법으로 의무화되어 있더라도 파산 위기에 처하겠지만 이번의 경우는 거의 재앙 수준의 천재지변이었기에 예외 규정인 단서 조항이 적용된 것이다. 다만 책임을 전부 면하기는 어렵고 일본 정부와 협의를 거쳐 도쿄 전력도 배상액의 일부를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나라에도 일본과 동일한 이름의 '원자력손해배상법'이 있다. 바로 일본의 법을 모델로 원자력 발전소가 우리나라에 막 도입되기 시작하던 1969년에 제정, 공포된 법이다. 초창기에는 일본의 '원자력손해배상법'과 거의 동일했지만 그동안 여러 차례 개정되어 일본법과는 내용이 많이 다르게 바뀌었다. 무과실책임주의는 동일하지만 일본의 예외 규정은 거대한 천재지변과 사회적 동란의 경우에 적용되는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간의 무력충돌, 적대행위, 내란 또는 반란(법 3조1항)에만 한정하도록 개정되어 이번 일본과 같은 천재지변의 경우에는 적용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천재지변의 경우에도 일본처럼 예외적으로 국가가 부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원전 사업자가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게다가 원전 사업자의 책임에는 한도가 규정되어 있어 사고 1건당 최대 3억 SDR(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 단위, 현재 1SDR은 약 1.476달러), 즉 약 5,000억원 정도까지만 배상 책임을 진다.

그런데 이번 일본의 방사능 누출 사고 뿐만 아니라 과거 미국이나 구소련의 원전 사고들을 보면 대개 그 피해 규모가 추산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천재지변의 경우 원전 사업자가 전부 배상해야 하고 그 배상액에 대해 약 5,000억 정도의 한도를 두고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물론 개정이 이뤄졌을 당시(2001년)에는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2011. 3. 20. 00:23
<사건 정리>

1. 조선일보에 아래 (1)의 기사가 실림

2. (1)과 유사한 (2)의 사건이 울산에서 있었고 맨 첫 줄에 있는 서울행 '동부 익스프레스'는 광주에서는 운행하지 않지만 울산에서는 운행하고 있다는 댓글이 달림.

3. 기사 수정을 통해 맨 첫줄에 있던 '동부 익스프레스'라는 표현만 삭제됨.

(1) 조선일보 기사

[Why] 불 꺼진 심야고속버스, 술 취한 손이 내 가슴을…
性추행·만취 난동 끊이지 않는 '달리는 범죄 사각지대'로 - 유일한 안전요원은 운전기사

[조선일보] | 정병선 기자, 한상훈 인턴기자(울산대 영문과 4년)| 입력 2011.03.19 13:50 | 수정 2011.03.19 13:55

지난 12일 자정 무렵 광주발(發) 서울행(行) 심야 동부 익스프레스 우등 고속버스 안. 버스가 출발한 지 10분 만에 한 여성이 소리를 질렀다. 막 고속도로에 진입한 버스는 갓길에 멈춰 섰다. 비명을 지른 20대 여성은 운전기사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했다. 여성 승객은 얼굴만 붉힐 뿐 이유를 얘기하지 않았다. 버스에 빈자리가 없어 운전기사는 여성 승객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고속버스가 다시 출발한 지 10분 정도가 지나자 또다시 비명이 들렸다. 버스는 재차 갓길에 멈췄다. 이 여성은 운전기사에게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가슴을 만졌다"고 말했다. 술에 취한 듯 보이는 남성은 잠든 척했다. 이후 남성의 성추행은 한 차례 더 이어졌고, 고속버스는 예정에 없이 고속도로 갓길과 휴게소에 3차례 정차한 후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했다. 50대 남성은 도착 후 유유히 사라졌고, 20대 여성 승객은 얼굴을 가린 채 울면서 황급히 자리를 떴다.

심야 고속버스에서 성추행·흡연·난동 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늦은 밤 편히 휴식을 취하며 빠른 시간에 목적지에 가려는 이들이 선호하는 심야 고속버스가 '달리는 범죄의 사각지대'가 된 셈이다. 문제는 술에 취해 조용한 버스 안에서 고성방가를 일삼고 성추행까지 저질러도 제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심야 고속버스는 출발과 동시에 전등을 끈다. 승객들의 취침을 위해 소등하는 것이 운전기사들에게는 의무처럼 돼 있다. 버스 안이 어두워 성추행이나 도난을 당해도 주변에서는 범행을 목격하기가 힘들다. 동부익스프레스 관계자는 "회사 모든 버스에 블랙박스를 설치했지만, 버스 내부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어 촬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설사 버스 내부를 촬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버스의 출발과 동시에 소등을 해 범행 현장 촬영은 불가능하다.

심야 고속버스에서 범행이 일어날 경우 제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운전기사가 유일한 안전요원이다. 버스 안에서 소란이 일어나거나 범죄가 발생하면 운전기사는 달리는 고속버스를 갓길이나 인근 휴게소에 세워야 한다. 한 버스 운전기사는 "취객이 버스 안에서 성추행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 여성이 항의하면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 순찰대에 연락해 조치를 한다"고 했다. 고속도로 치안을 담당하는 고속도로순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정시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달려야 하는 고속버스는 갓길이나 인근 휴게소에서 멈춰야 한다. 고속도로순찰대 관계자는 "심야 고속버스에서 종종 신고가 들어와 톨게이트나 휴게소로 출동해 범인을 인근 지구대에 인계한다"며 "순찰대가 30㎞마다 하나 정도 있다"고 했다.

고속버스 운전기사는 취객에 대한 승차 거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심야 고속버스에서 술에 취한 승객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복수의 고속버스 운전기사들은 "취객들에 대한 단속은 절실하지만 승객을 한명이라도 더 태워야 하는 회사의 입장이 우선시되면서 승차거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고속버스와 경쟁 관계인 KTX·새마을호 등 철도의 경우 국토해양부 소속 철도특별사법경찰대 대원들이 심야시간 등 취약시간에 직접 열차에 탑승한다. 이들에겐 수갑·포승·가스분사기 등의 용품과 함께 범인을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2) 2006년도에 실제 발생했던 사건

[헤럴드생생뉴스] | 기사입력 2006-02-24 10:32 

서울 동부경찰서는 24일 고속버스 옆좌석 20대 여승객을 성추행한 혐의(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로 김모(5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오전 1시50분쯤 울산발 서울행 고속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눈을 감을채 쉬고 있던 A(25)씨의 몸을 더듬어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잠시 선잠이 들었들데, 잠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깨 보니 김씨가 내 몸을 더듬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그러나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다. 나 역시 잠들어 있었을 뿐”이라고 부인한 뒤 “혹시 그런 의심을 받았다면 잠결에 뒤척이다 그랬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3) 조선일보 기사에 달린 지역감정조장 댓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