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archives.snu.ac.kr/main/cyber/histo/monu/419_statemen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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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천명하는 바이다.
임을 단정한다.
'종이로 만든 호랑이' 같은 헤슬픈 것임을 교시(敎示)한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성의 혜안으로 직시한다.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가고 있다. 자유의 전역(全域)은 바야흐로 풍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의 불빛을 무시한 전제 권력의 악랄한 발악으로 하여 깜빡이던 빛조차 사라졌다. 긴 칠흑 같은 밤의 계속이다.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裸像)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1캄캄한 밤중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打手)의 일익(一翼)임을 자랑한다.
보라! 현실을 뒷골목에서 용기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 1960년 4월 19일,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학생 일동 - |
보라색으로 표시된 글귀들은 49년이 지난 지금도 별 무리없이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중 '현실을 뒷골목에서 용기없는 자학으로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라는 문장만 '모두가 뒷골목에 웅크려 앉아 용기없는 자학으로 현실을 되씹는다'로만 바꾸면 되겠군. 이 글을 쓰던 당시의 사람들은 얼마나 순수했을까?
* 이건 약간 충격적일 수도 있는 내용인데 이 글을 작성한 당시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2학년 이수정씨(2000년에 작고)는 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주도한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 때 문화공보부에 근무하면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허문도, 권정달 등 다른 다섯 명과 함께 강제해직된 언론인 94명에 의해 1996년 검찰에 고소를 당했다(무혐의로 종결됨). 그는 그때 부역을 한 대가였는지는 몰라도 6공화국 후반기에는 군사정권의 마지막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고 그 당시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한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에게 불출마를 회유, 읍소했다는 얘기가 이주일 자서전에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다(결론은 이 글을 쓴 사람이 오히려 후일 지독한 언론 탄압의 선봉에 섰고 장관이 되자 정치공작에까지 앞장섰다는 얘기).
* 이수정씨가 1960년 당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그가 신진회라는 서울대 문리대의 좌파 동아리의 회원이었기 때문인데 신진회는 1957년 당시 회원이던 류근일(전 조선일보 주필)씨가 '모색-무산대중을 위한 체제에로의 지향'이라는 공산주의 찬양 논문을 발표했다가 검찰에 구속 기소되는 필화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일시 해산되었다가 다시 재건되었고 이후 4.19 혁명 때 서울대 문리대에서는 이 신진회가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참고로 현재 우리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고 부르는 신입생 환영회는 1961년 서울대 문리대에서 최초로 도입하였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신진회에서 신입생들을 포섭하기 위한 좌파 운동권 전술의 하나로 강력히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 표현은 일제 시대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주축을 담당했던 시인 임화의 시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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