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20. 17:09
[文化]
어렸을 때 개한테 물려서 두툼한 살점을 뜯긴 적이 있다. 나보다 서른 살 넘게 나이가 더 많은 육촌 형님 집의 개였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것만 믿고 새끼를 낳은 지 한 시간도 채 안 된 상황에서 겁없이 새끼들을 만지려고 하다가 물린 것이다. 그 때가 아마 일곱 살 때쯤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어떤 광고업자 사무실에 볼 일이 있어 들렀는데 사무실 구석에서 안주인인 듯한 여자와 놀고 있던 시츄 한 마리가 나를 보자마자 꼬리를 살랑거리며 쪼르르 달려왔다. 그리고는 내 발치에 배를 내놓고 벌렁 드러눕더니 내 바지자락에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댔다. 얼른 피하기는 했지만 주인이 기겁을 하며 달려와 내게 사과를 하긴 하는데 자기 개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개들이 배를 드러내 놓고 눕는 행위는 그야말로 비굴한 복종의 표시인데 만약 자신이 키우는 개가 처음 보는 손님에게 이런 짓을 했다면 그것은 주인이 개를 잘못 키웠다는 뜻이 된다. 주인을 멀쩡히 놔두고도 복종할 대상이 없다고 느낄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개라면 차라리 주인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키워졌어도 낯선 사람을 보고 으르렁댈 줄 아는 개만도 훨씬 못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실내에다 개를 가둬놓은 채 야외 산책조차도 거의 시키지 않는 한심한 개주인들 덕분에 이런 일을 자주 겪어본 나로서는 당할 때마다 불쌍한 개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는 생각에 빙긋 웃고 말지만 개들에게 개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잃게 하고 결국 살아있는 박제나 인형으로 만들어 버린 개주인들께서 자신들의 우행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개를 키우거나 동물과의 교감을 중요시한다면 한 번쯤은 Jack London의 '야성이 부르는 소리(The Call of the Wild)'라는 책을 읽어 보는 것이 어떨까? 티컵 강아지처럼 인간의 오만한 욕심과 허영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품종에는 열광하면서도 보신탕이 창피하다는 둥 문화일방주의적 편협한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서 되뇌이곤 하는 개주인들이라면 더욱더 읽어 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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