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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20. 16:51
'영웅본색(英雄本色, A Better Tomorrow)'

생각컨대 난생 처음으로 나를 눈물 짓게 만들었던 영화가 바로 이 영웅본색이다. 당시엔 꼴에 남자라고 함께 극장에 간 친구들에게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숨을 죽여가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련하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하여 새출발을 다짐한 아호(적룡)가 자신의 복수를 하다 다리에 총을 맞고 불구가 된 소마(주윤발)의 비참한 모습을 목격할 때, 아호가 경찰인 동생 아걸(장국영)의 이름을 부르자 경관님이라고 부르라고 소리칠 때 등이 사춘기 소년의 눈물샘을 강하게 자극했던 장면들이다. 이 영화를 본 이후 머릿속이 황홀하도록 멋있게 느껴졌던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에 대한 환상은 한동안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던 것 같다. 또 그땐 집에서 형과 잦은 다툼으로 상당히 고달팠던 때라 동생을 아끼는 아호(적룡)의 애틋한 모습 또한 부럽기 짝이 없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냉정한 30대가 된 지금의 내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어떤 느낌을 주는가?

일단 가장 극악무도하다고 생각되는 소마(주윤발)는 거의 연쇄살인마 수준의 범죄자로 자신이 저지른 숱한 악행의 댓가를 제때에 제대로 치루지도 않고 살다가 아무 죄의식없이 허무하게 총격전 와중에 죽는 캐릭터다. 영화는 그저 아호에 대한 저급한 개인적 의리를 지키려는 노력과 아성에 의한 비열한 배신을 부각시킴으로써 소마의 캐릭터를 정당화시키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싸이코패스일 뿐이다.

아호(적룡)는 조직의 두목급 간부로 오르기까지의 과거의 구체적인 행적이 묘사되지 않아 역시 착시효과를 일으키지만 영화 곳곳에 깔린 복선은 그가 중범죄자였음을 암시한다. 다만 어떤 명목으로든 3년의 실형을 억울한 마음없이 살고 나왔고 줄곧 개과천선을 꿋꿋이 다짐하면서 자신의 참회와 사회적응에 대한 각오가 진실된 것임을 내비친다. 그러나 인간적인 고뇌나 망설임으로 시달리는 장면이 전혀 삽입되지 않고 고집스럽게 정의에 집착하는 모습만 강조되면서 지나치게 작위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아걸(장국영)감상적인 철부지로서 경찰학교를 마칠 때까지도 마치 자신의 형이 어떻게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신의 학비를 댔는지 전혀 몰랐던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다 아호가 속한 조직 내부의 알력 때문에 아걸의 집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아버지가 사망한 일을 계기로 아호를 원망하게 되는데 직업이 형사이고 가정까지 꾸린 가장임에도 유치한 언행과 사리분별이 어두운 모습만 그려지면서 영화 내내 보호가 필요한 불안정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성을 죽여 악연을 끝내고자 하는 아호에게 아걸이 총을 건네 소마의 복수를 하게 함으로써 도드라지는 사필귀정과 형제간의 화해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지만 이는 마땅히 있을법한 진실한 정의와 가족애의 승리가 아니라 보기 싫고 생각하기 싫은 것들은 잠재의식에 영원히 가둬두려는 인간 내면의 맹점(Scotoma)을 적절히 활용한, 현실과 유리되고 왜곡된 이미지와 환상의 승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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