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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6. 19:30
아까 솜사탕같은 구름들이 넘실거리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잠깐 배운 적이 있어서 천자문을 웬만큼 외우는 편인데 누구나 곧잘 따라서 할 정도로 유명한 천자문 첫 구절은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르 황' 이렇게 시작한다. 말 그대로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뜻이다. 내 눈에 비치는 하늘은 퍼렇디 퍼런데 천자문에서는 대체 왜 검다고 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보니 역시 비슷한 의문(참 쓸데없는 의문)을 품었던 사람이 꽤 있다.

인터넷 검색에 따르면 천자문에서 하늘이 검다고 한 이유에 대해 대체로 검을 현(玄)에서 검다는 것은 시각적인 색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들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그 근거로 玄이라는 글자가 갖는 다양한 의미, 즉 오묘하다거나 심오하다는 등의 뜻을 갖고 있음을 내세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아예 아래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지난 이천년간 우리의 선조들은 하늘을 현색(玄色)으로 표현하였다. 서구의 지식과 교육이 들어온 이래 하늘은 더 이상 현색이지 못하고 서구의 시각에서 설정된 푸른색에 고정되어졌다. 이제 아무도 하늘이 검을 현이 되는 우리의 사고를 기억하지 못하고 타자의 사고와 시각으로만 생각하고 푸르게 칠하고 있을 뿐이다.('이영희 전 - 한국색읽기, 오색무지개' 설명 중에서)

그렇지만 위의 인용문은 그냥 수긍하며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다. 비록 내가 과문하지만 옛 문헌에서 하늘을 검다(玄天)고 표현했던 글보다는 푸르다(靑天, 碧天, 蒼天)고 표현했던 글이 훨씬 보편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당장 내 눈에도 파랗게 보이는데 우리 조상들 눈에라고 하늘이 검게 보였을 리가 있나. 상식적으로도 왠지 마음속에 저항감이 생긴다.

현(玄)이라는 글자를 놓고 동양의 철학이나 정신을 운운하는 얘기도 있지만 주역의 팔괘를 따져 봐도 하늘을 의미하는 '건괘(乾卦)'의 색깔은 검은색이 아니라 파란색이고 음양을 나타내는 태극에서도 검은색은 음(陰)과 땅을 상징하므로 하늘이 검다는 것은 과거 동양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가 아닐까.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현(玄)이라는 글자에 그 자체로 '하늘'이라는 뜻이 있고 특히 해가 뜨기 직전 신비로운 분위기의 거무스름한 하늘을 나타내기 때문에 오묘하다는 뜻까지도 함께 담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그렇게 해석하면 玄天과 黃地가 과연 어울리는 대구가 되는가 하는 의문이 또다시 일긴 한다. 단순히 천자문이 원래 고대 중국에서 만든 문헌이기 때문에 우리가 읽기 편하도록 땅 지를 따 지라고 하듯이 당시 성조나 발음 각운 등을 고려해서 현 자를 골랐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에이 그냥, 빛의 산란현상 때문에 하늘은 파랗게 보이고 암흑물질(dark matter)로 채워진 우주는 그 태초의 빛들이 우리가 충분히 밝다고 느낄 만큼 지구에 동시에 도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주는 검고...이렇게 설명하면 편하네? 잡념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