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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검'에 해당되는 글 2건
2010. 4. 24. 00:00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사람이 돼지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감을 자극하는 산해진미에 홀려 주인이 자리를 비운 남의 가게 음식을 함부로 게걸스럽게 먹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돼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우화는 탐욕 앞에 무릎 꿇고 탐욕에 지배당할 때 인간은 결국 짐승과 다름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준다.

사실 인간은 적당한 욕심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나라처럼 무한경쟁체제가 공고히 자리잡고 천민자본주의의 황홀한 부추김에 끊이지 않고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모든 인간이 개돼지로 변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절제할 수 있도록 문화와 교육이 기능을 하고 있고 절제력이 약해졌거나 절제를 익히지 못한 사람에게는 법과 제도가 이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은 절제된 욕망만을 강요당해서도 살아갈 수 없다.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처럼 일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실존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세상과의 관계에서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긍지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먼저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있은 후에 비로소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자발적인 절제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자각을 통한 주체성 회복보다는 다른 이를 짓누름으로써 상대적으로 느끼는 거짓 자존심과 이방인을 배척하는 편협한 민족주의와 같은 거짓 긍지가 어느새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게 고작 쉴 새 없이 다른 이와 비교하거나 재물이나 권력과 같은 덧없는 것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면 이것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왜냐? 덧없는 것에 의지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함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가 말하기를 인생의 목적은 행복에 있고 유종일은 행복이란 불안함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했다. 폭력적인 비교를 통해서 얻는 긍지는 일시적일 뿐더러 저열하기 그지없다. 불안을 씻어낼 수도 없다. '長江後浪推前浪'나 '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있질 않은가.

피리소리를 따라 동족들과 함께 서로 앞다퉈 강으로 향하는 쥐떼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나름 각고의 노력을 통해 고시라는 좁은 신분상승의 문을 뚫고 지배계급에 편입된 검사들에게 장삼이사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되풀이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부끄럽고 비참한 일인가. 하지만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검사 아니라 검사 할애비라도 가르침이 부족하면 가르침을 줘야 하고 강제가 필요하면 강제를 해야 한다.

앞서 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한번 돼지가 된 인간은 스스로 깨달아 인간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미야자키 하야오도 암시하고 있질 않던가. 온갖 재물과 권력의 유혹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세계에 대한 순수한 인간의 마음을 지켰던 치히로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세계가 결국 돼지가 된 치히로의 부모들을 인간으로 되돌렸던 것이다.
2009. 4. 20. 16:03
미네르바에 대한 무죄 판결을 보고 과연 기뻐할 수 있을까?

검찰에서 이런 결과를 예상치 못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검찰은 미네르바를 일단 구속시킴으로써 첫째 더 이상 아고라에 그의 글이 올라오는 것을 막았고, 둘째 미네르바를 본보기로 내세워 여러 달 동안 괴롭힘으로써 아고리언들을 비롯한 네티즌들에게 위하의 효과를 충분히 달성했으며, 셋째 권력의 충실한 시녀로 정권과의 막후 조율과 교감이 잘 이뤄진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어냄으로써 이어진 정권비판세력 탄압(예컨대 MBC 압수수색 시도 등)에 탄력을 얻을 수 있었다. 즉, 미네르바가 풀려난 게 당연히 잘 되고 기쁜 일이긴 하지만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속으로 희희낙락하고 있을 검찰과 이를 사주한 정권핵심세력을 생각하면 웃고만 있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조중동 프레임으로 세상을 재단하려드는 뉴라이트와 한나라당 졸개들은 미네르바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를 향해 벌써부터 '좌파 판사'니 '전라도 출신'이니 하는 인신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조선일보에서 지난 10년간 사법부에 좌파 법관들이 많이 진출해서 우려스럽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씨부려 놓은 덕분인지 고스란히 조선일보를 받아 쓰는 일부에서는 '좌파 판사'라는 말을 별 거부감없이 사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특정한 판결에 대해 그 판결을 내린 법관에 대해 '좌파 판사'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해당 판결이 대법원에 의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법리에 반하도록 판결의 취지가 변경된 것으로서 합리성과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고 이러한 판결취지의 변경이 법적인 논리보다는 이른바 '좌파 성향'으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될 때에만 그를 '좌파 판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좌파 성향'이 어떤 의미인지 별론으로 쳐야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선고한 판사의 고향이 어디인가를 따져 판결의 당부를 묻는 것은 논할 가치조차 없는 형편없는 저질 수작이고, '좌파 판사'라는 비난 또한 이번 판결이 법리에 매우 충실한 판결이었다는 점에서 전혀 근거가 없을 뿐더러 소가 웃을 만한 상식 이하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 위와 같은 의미에서 공공연히 상식 이하의 주장을 사실처럼 퍼뜨리고 다니는 저질신문 조선일보가 신문업계 1위라는 사실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음을 대변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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