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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센이치'에 해당되는 글 1건
2008. 8. 25. 12:17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 ほしの せんいち)"

<언론에 보도된 호시노 발언 모음>

1. 2007년 2월 3일 이승엽이 산마린스타디움에서 훈련 중 일본대표팀 감독자격으로 방문했을 때 이승엽의 훈련 모습을 지켜본 후 발언
: "(타격이) 좋다! (이승엽을) 일본대표팀 선수로 가지고 싶다"

2. 2007년 12월 2일 베이징 올림픽 1차 예선 한국전 승리 후
:"(투수)명단이 완전히 달라져 깜짝 놀랐다.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 한국 쪽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달라"
:*이날 경기 후 김경문 감독은 "앞으로 바뀌어야 하는 아마대회의 잘못된 규정"이라고 유감을 표명.

3. 2007년 올림픽 1차 예선 당시 한국 대표팀 수석 투수 코치였고 호시노가 주니치 감독 시절 제자였던 선동열 감독이 대표팀 보직을 사퇴한 것과 관련한 발언
:"성실하고 정의감이 강한 그(선동열)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을 보더라도 역시 그 사건(위장 오더)에 의해 사퇴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국제 대회의 성격상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기고 싶은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일본은 '교활한 술수를 써서 이겼다'란 말을 듣기 싫다"

4. 2007년 11월 26일 화제가 됐던 대만 언론의 일본대표팀 혹평에 대한 발언
:"장타력? (야구는) 불알 대결이 아니다. 하긴 저쪽(대만)은 그것(불알 대결)도 지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200m짜리 홈런 쳐서 1점을 뽑든 러닝홈런으로 1점을 뽑든 똑같은 1점 아닌가. 경기를 한 다음에 이야기하고 싶다"

5. 2008년 3월 13일 올림픽 2차 예선에서 한국이 5경기 만에 전승으로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발언
:"한국이 (2차 예선 참가팀들 가운데에서) 가장 세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다"

6. 베이징 출국 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 발언
:"한국이란 나라는 다른 나라하고 할 때는 의외로 약하면서 어떻게 일본하고 붙을 때만 그렇게 강하냐"

7. 베이징 출국 전 "신경쓰이는 한국 선수는 없느냐"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한국 선수 중 특별히 신경쓰이는 선수는 없지만 오더나 바꾸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위장 오더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8. 국제야구연맹이 베이징올림픽 개막 직전 특별한 이유없이 타순을 뒤바꾸면 벌금 1천 달러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시행세칙을 발표한 후 발언
:"(위장 오더에) 벌금은 충분치 않다. 아예 3-5경기 출장 정지를 시켜야 한다. 일본은 정정당당하게 하겠다. 한국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9. 2008년 8월 11일 베이징에서 코치와 선수 등 일본대표팀 전원을 이끌고 한국식 불고기집을 찾아 가 불고기를 먹으며 한 발언
:항간에는 "한국을 잡기 위해 불고기를 먹었다"는 발언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실제로 호시노 감독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은 없다. 호시노 감독 및 일본대표팀이 베이징에서 불고기집을 찾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두고 일본 산케이 신문의 온라인 자회사 ZAKZAK에서 '호시노 감독이 한국전 승리를 위해 불고기를 먹었다'는 자의적인 내용의 보도를 한 것뿐이다.

10. 2008년 8월 12일 베이징에서 열린 감독자 회의에서 선발명단 변경문제가 '경기 1시간 전 선발오더를 교환한 이후에도 2명까지 선수를 바꿀 수 있다'는 쪽으로 결정났을 때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 발언
:"경기규칙을 설명하는 내내 한국(김경문 감독)은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바보 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11. 2008년 8월 12일 베이징에서의 기자회견 당시 출사표 발언
:"노리는 것은 금메달 밖에 없다. 9전 전승으로 우승한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의 새로운 역사를 새기고 싶다. 기본에 충실하게 정정당당히 싸우겠다"

12. 2008년 8월 16일 한국과의 본선 첫 경기에서 패배 후 발언
:"할 말이 없다. 오늘은 양쪽 투수들이 (모두) 잘 던졌다" "한국은 아직 지지 않은 강한 팀이다"

13. 2008년 8월 20일 예선 3-4위를 결정짓는 미국과의 경기 전 발언
:"최선을 다해 미국을 이기겠다"
:"준결승전은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전을 반드시 이겨 자존심을 지키겠다. 쿠바를 만나도 상관없다"

14. 2008년 8월 20일 고의 패배가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던 미국과의 경기 패배 후 발언
:"투수는 좋았지만 타선에 문제가 있었다. 긴장이 좀 풀린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15. 2008년 8월 21일 일본전 선발이 김광현으로 예고됐다는 한국 기자의 얘기에 대한 발언
:"김광현이 선발로 내정된 것인가. 믿지 못하겠다"

16. 8월 21일 "(한국의) 4번(이승엽)이 이대로 잠들어 있기를 바라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그게 누구냐?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있는 타자를 4번에 계속 두고 있다니 대단하다."

17. 8월 22일 한국과의 준결승전 시작 전 발언들
:"(예선에서 한국에 당한 패배를) '복수'하겠다. 한국과는 투타 모두에서 좋은 승부가 될 것"
:"한국은 우리처럼 투수력으로 1점차 승리를 따낼 수 있는 야구를 한다"
:"(일본) 투수진은 문제가 없지만 타격이 걱정, 타선에 불안이 남아 있지만 선수를 믿을 수 밖에 없다"

18. 8월 22일 한국과 준결승전 패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의 발언들
:"이제부터는 한국이 우리보다 약하다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 한국은 매우 강하다. (앞으로는) 한국이 약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를 보셨겠지만 오늘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는 나쁘지 않았다. 좋은 경기를 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진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든 3-4위 결정전에서 이겨 메달이라도 갖고 돌아가고 싶다, 그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좋은 리듬으로 경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8회 실점에서 선수들이 자제력을 잃거나 한 일은 없었다. 23일 3-4위 전에서 꼭 승리해 동메달을 따내겠다"
:"좋은 리듬으로 왔는데 후반에는 접전이었다. 이승엽의 투런 홈런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야구는 마지막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스포츠다. 어떻게든 메달을 들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19. 8월 22일 준결승전 패배 직후 "예선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와세를 중요한 순간에 등판시킨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그건 내 방식입니다. 당신은 한국인이니까 결과적으로 잘 된 것 아니냐?"

20. 8월 22일 한국과의 준결승전 패배 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발언들
:"졌으니까 패인은 어딘가 있겠지만 이제 와서 말해 봤자 무엇하냐."
:"이런 결과가 되어버렸지만 선수들은 잘 싸워줘서 정말로 좋은 경기를 만들어 줬다."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 메달을 획득할 수 밖에 없다."

21. 8월 24일 일본 귀국 당시 기자회견
:"야구팬과 일본 스포츠팬에게 죄송하다"
:"선수들의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부상자도 많았지만 전력을 베스트로 꾸리지 못한 건 내 책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싸워줬다. 힘의 차이는 그리 없었지만 올림픽에서는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하다는 걸 느꼈다"

22. 일본의 한 쇼프로에 출연해 2007년 12월 2일에 치뤄진 한국과의 올림픽 1차 예선 경기에 대해 했던 발언들
사회자: "한국팀이 배터리(투수-포수)를 자주 바꿨잖아요. 그건 괜찮은 건가요?"
호시노: "약삭빠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호시노: "원래는 한국의 오른손 투수였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불펜에서 왼손 투수가 던지고 있는 거야. 17번 선수였죠. 연습을 하고 있더라고."
호시노: "'아 교체 투수를 준비시키는 거구나, 실제 투수는 뒤쪽에서 연습하고 있겠지'하는 감각이었어"
호시노: "(그런데) 멤버표를 받아봤더니 7명이 다 다른 거야. 사실을 말하자면 1시간 전에 일본 선발 멤버랑 한국 선발 멤버를 제출합니다."
호시노: "그건 시합 전에 바꿔도 된다는 룰이 있어요, 아프거나, 부상을 입었거나 그럴 때는 급하게 바꿔도 된다는 룰은 있지만 7명이나 바꾸고 더군다나 선발 투수까지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사회자: "(그래서) 항의했습니까?"
호시노: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심판은 규정집만 생각해요. 예의에 관한 거니까 안된다는 게 특별히 실려 있진 않아요 하지만 다들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자: "한국팀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일본 팀을 이길 수 있을지를 신중하게 생각한 결과이지 않았을까요?"
호시노: "바로 그거야"
호시노: "이번 일로 우리들 일본인은 위기관리 의식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호시노: "'이게 일본의 상식이고 매너다'라고 생각하고 대응하면 큰 오산이에요"
호시노: "룰 범위 안에서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 중국이나 한국에는 있더라구"
호시노: "좀 더 일본인도 심술궂지 않으면 안 돼" "(어쨌든) 이겼으니까 됐어"

<2007년 6월 9일자 중앙선데이에 실린 호시노 감독 관련 기사>

"일본 야구 속에 선명한 '한국혼'"  - 김 식 JES<1586@joongang.co.kr> | 제13호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34). 지난해까지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뛰던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이적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3번 타자가 됐다. 매스컴은 4번 타자 이승엽(31)과 오가사와라를 묶어 ‘O-L포’라고 부른다. 오가사와라의 부릅뜬 두 눈과 치켜올라간 짙은 눈썹, 서슬퍼런 스윙은 일본 무사를 연상시킨다. 니혼햄 시절 그의 별명은 ‘홋카이도의 사무라이’였다. 하지만 그는 ‘한국계’ 선수다.

오가사와라가 '한국인' 선수에서 한국계 선수가 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삿포로에서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일본 나가시마 시게오 대표팀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귀화했다. 한국인의 귀화를 위한 행정절차는 최소 6개월, 보통 1년이 걸린다. 그런데 오가사와라는 이틀 만에 서류가 정리됐다.

'외국인 등록증'을 가진 선수들

김성한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이 1996년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코치 연수를 갔을 때의 일.

당시 호시노 센이치 주니치 감독은 김 전 감독을 따로 불러 함께 식사했다. 드문 일이었다. 김 전 감독은 "호시노 감독이 팀 내의 한국계 선수와 코치들을 하나하나 얘기해 줬다. 그 양반도 한국계라는 소문이 있던 터라 용기를 내서 물었더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호시노 감독이 자신이 한국계라고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몇 해 전 NHK 해설위원에 지원했을 때 이력서에 '한국계'라고 썼다고 한다. 호시노 감독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자 일각에서는 "한국계 감독이 일본 대표팀을 맡아도 되는가" 하는 반론이 일기도 했다.

일본 야구에서 한국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 이상이다. 사실은 대단히 많다. 현역 선수 중 20% 이상이 한국계로 추정된다. 귀화한 선수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포함된 수치다. 히로시마 카프는 마무리 투수 나가카와 가즈히로를 비롯해 30% 이상의 선수가 외국인 등록증(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기량으로 보면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한국계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계임을 드러내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일본 미디어도 야구 스타들의 뿌리를 굳이 파헤치지 않았다. 합의된 침묵이었다. 그런데 최근 스스로 한국인 또는 한국계임을 밝히는 선수가 나오고 있다. 한신 타이거스의 가네모토 도모아키(김지헌)가 대표적이다. 세상이 달라져가고 있는 것일까.

"어라? 너도 한국계야?"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은 재일동포 2세로 42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고향은 경남 진양. 김 감독은 59년 재일동포 고교선발팀 선수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다. 그는 고교 시절 한국인의 얼굴을 가진 친구들과도 '핏줄'에 대해 얘기하지 못했다. 한국에 와서야 서로 "너도 한국인이었지?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일본 지바 롯데 머린스 코치로 있을 때 재일동포 2, 3세 선수들로 가상의 라인업을 만들어 봤다. 김 감독은 "재미삼아 한번 써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 이 선수들이면 세계 최강급 팀을 만들 수 있다"며 웃었다. 재일동포 사회와 일본 야구계의 속내를 잘 아는 그의 '증언'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재일동포 드림팀'에는 우선 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ㆍ마쓰이 가즈오(콜로라도 로키스) 등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포함된다. 뉴욕의 마쓰이는 증조부가 한국인으로 알려졌고 콜로라도의 마쓰이는 2001년까지 북한 국적을 유지했다. 기요하라 가즈히로(오릭스 버펄로스)ㆍ오가사와라 등 일본 무대의 스타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퍼시픽리그 최고의 투수 사이토 가즈미(소프트뱅크ㆍ2003년 귀화)ㆍ아라이 다카히로(히로시마)ㆍ모리모토 히초리(니혼햄ㆍ森本稀哲;한자 '희철'을 '히초리'로 발음)ㆍ미야모토 신야(야쿠르트ㆍ일본 선수노조 회장)ㆍ하야시 마사노리(요미우리ㆍ한자이름 林昌範) 등을 더하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색없는 강팀이 된다. 김 감독은 "뉴욕 양키스의 이가와 게이도 한국계"라고 단언했다. 

전설이 된 두 이름

그동안 야구선수가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히는 대표적인 '한국인 선언' 방법은 일본 대표팀 발탁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일본 야구의 간판급 타자ㆍ투수인 기요하라와 사이토는 끝까지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사양했다. 뉴욕의 마쓰이가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를 끝내 고사한 것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일본인들이 있다.

기요하라는 태도가 분명하다. 그는 자신과 같은 오사카 출신인 한국계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아키야마 요시히로)의 경기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2005년 추성훈이 오사카에서 K-1 데뷔전을 할 때는 세컨드를 맡았다.

지난해에는 안면이 전혀 없는 이승엽에게 불쑥 방망이 한 자루를 선물하고는 "우리 생일이 비슷하니 함께 파티를 열자"고도 했다.

일본 야구의 전설이 된 한국인ㆍ한국계 선수가 있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유일하게 통산 400승을 기록한 김정일(가네다 마사이치)과 통산 3000안타를 돌파한 장훈이다.

김정일은 1950, 60년대 일본 야구를 평정한 왼손투수. 400승 외에 4490탈삼진, 12년 연속 2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의 등번호 34번은 요미우리에서 영구 결번됐다. 일본에 귀화했지만 한국인임을 숨기지는 않았다.

일곱 차례 타격왕, 불멸의 3085안타에 빛나는 장훈은 '하리모토 이사오'라는 이름으로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지만 여전히 '외국인'으로 산다. 그는 58년 한국에서 열린 한ㆍ일 고교 친선 야구대회에 참가해 처음으로 고국땅을 밟는다. 그때 만난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손을 잡고 "조국을 잊지 말라"고 한 당부를 잊지 못하고 있다.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 ほしの せんいち)"

본명 이선일, 한국 출신의 조부모를 가졌지만 야구를 위해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호시노 감독은 자신의 뿌리인 한국이 비열하게 승부하려 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승엽이 누구냐고 물었던 16번 발언도 1번 발언과 비교해 보면 왜 그렇게 못하고 있느냐는 책망으로 들린다. 물론 일본대표팀 감독으로서 일본의 승리를 위해 그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누구보다도 한일간의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한 사람이 바로 호시노였기에. 하지만 동시에 그의 무의식의 한켠에서는 한국이 약하다는 소리가 듣기 싫었던 것 아닐까?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며 그가 느꼈을 분노와 좌절, 고독과 상실감을 생각하며 이토록 멋지게 잘 살아온 인간 호시노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싶다.

<약력 - 위키백과 호시노 항목 참조>

1947년 오카야마 현 구라시키 시에서 태어나 메이지 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드래프트 1순위로 주니치 드래곤스에 입단, 투수로 활약.

1974년 10세이브를 기록하여 센트럴 리그 최다 세이브를 기록하여 동시에 사와무라상을 수상하였고, 1975년에는 7할7푼3리의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

통산 성적 146승 121패 34세이브, 3.60의 방어율을 기록하여 1982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고, 은퇴 후 1983~1986년까지 NHK 야구해설위원을 지냄.

1987년~1991년, 1996년~2001년까지 주니치 드래곤스에서 감독으로 지내면서 센트럴리그 2회 우승, 이후 2002년부터 2년간 한신 타이거스 감독을 맡아 2003년 센트럴리그 1회 우승.

2003년에는 한신을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끈 공로로 일본 야구계 최고의 상인 쇼리키 마쓰타로상을 다이에 호크스의 오 사다하루(왕정치) 감독과 함께 공동 수상.

*'이야기 일본 프로야구('지성사' - 조해연 지음)라는 책의 목차에서는 "9장 일본 프로야구 속의 한국인 - 가난과 차별을 딛고 우뚝 선 재일 한인들의 생생한 기록. 한국계 감독 1호 가네다 마사야스, 열혈 투장 주니치의 호시노 센이치, 선동열과 배터리를 짜고 있는 주니치 안방마님 나카무라 다케시, 최고연봉의 기요하라 가즈히고, 히로시마 타선의 축인 가네모도 도모야키 등, 그리고 국내무대에서도 뛰었던 장명부, 김일융, 김무종, 고원부의 활약상."이라는 항목을 볼 수 있다.

*전재한 글의 저작권과 관련한 문의는 방명록을 통해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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