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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14. 03:55
프린터를 고쳤다. 고장의 원인을 알게 되서 십 년 묵는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용자 매뉴얼에 '카트리지 교환시 반드시 앞 덮개를 완전히 여시오'라는 문장 하나만 있었어도 프린터로 골치 썩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앞 덮개를 완전히 열지 않으면 카트리지가 잠금 상태가 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늘 앞 덮개를 2/3 정도만 열고 카트리지를 교환하고자 했던 내게는 그토록 카트리지가 잘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무식하게 힘을 이용해 억지로 빼내다 보니 그 잠금 장치가 망가졌고 망가진 잠금 장치 덕분에 카트리지를 다시 넣었음에도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삼월 첫날 술을 잠시 끊겠다고 했는데 지난 2주 동안 딱 한 번, 어쩔 수 없이 마신 것 빼곤 잘 지킨 것 같아 대견스럽다. 딱 한 번 마련됐던 술자리도 평소보다 서너 시간은 일찍 끝날 정도로 매우 간소하고도 절제된 자리였다. 술을 권하던 이들에게는 흐릿해진 정신을 맑게 하겠다는 핑계로 시치미를 딱 뗐었는데 취기가 없어도 좀처럼 생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직 독기가 채 다 빠지지 않은 탓이리라. 이제는 정말 웬만큼 발효가 됐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눈에서는 형형한 안광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사람들에게 나는 일말의 두려움 없이 왕의 주단을 밟고 한 치의 거리낌 없이 왕관도 받아 쓸 그런 사람처럼 보이나 보다. 지하도 입구에서 엎드려 구걸이라도 해야 할까. 하긴 그리되면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겠지.

11시쯤엔 잤어야 되는데 시계는 벌써 4시를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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