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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27. 07:52
얼마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했다는 '영어 몰입교육' 도입 정책이 온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이나 정책의 구체적 목표, 배경 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엘 가보았으나 관련 자료를 전혀 찾지 못하겠기에 그저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만을 토대로 술자리에서 오고 갔던 얘기들을 남은 술기운을 빌어 여기 적어 본다. 실제로 시행될 새 정부의 교육 정책으로서 어떤 현실적인 고려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가의 문제, 즉 선생이 있느니 없느니 또는 2년 내에 되니 안 되니, 아니면 사교육이 정말 줄어들까 말까 하는 등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포스트들이 다루고 있으므로 한국에서의 영어, 그 자체에 대해서 서투르지만 몇 줄 적어 볼까 한다.

우선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영어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와 사례들을 열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지나친 영어 열풍이 사회적 병리현상의 일종이라는 지적에도 쉽게 수긍하는 것 같다. 편의점 알바를 뽑는 데도 토익 성적을 따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어떤 직업을 갖든지 간에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영어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불안과 우려의 심리가 만연한 반면 영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따낸 사람들도 취직 이후엔 가끔 잘난 체 하는 용도로 쓰는 것 외엔 정작 생활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는 용도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영어에 대해 실질보다 지나친 가치가 부여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형편없이 부족한 지경인데 영어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다니 대체 무슨 말이냐라고 반론을 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이런 사람들이 드는 예들을 보면 대개는 '외국인 관광객이 와서 시내에서 택시를 탔는데 말 한마디도 똑바로 못하고 못 알아듣더라, 이게 바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주소다.' 라거나 '대학의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햄버거를 주문했는데 Here or to go?(여기서 드실 건가요 아니면 갖고 가실 건가요?)라는 말 한마디를 못 알아들어서 Excuse me?(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실래요?)를 대여섯 번씩 반복해야 했다더라, 이 얼마나 엉터리 영어교육이냐.'라는 식이다.

이런 사례들은 일견 일리있게 들릴 수 있지만 실은 명백히 잘못된 지적이다. 어떤 분야든 손만 댔다하면 뛰어난 두각을 보이는 한국 사람들이 왜 영어만은 그렇게 엄청난 공과 노력을 들이는 데도 이렇게도 못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먹고 사는데 영어가 실제로 필요하거나 영어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살면서도 그런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예컨대 이태원이나 동대문 상인들을 떠올려 보자. 많은 외국인들을 접하면서 물건을 팔기 위해 당장 외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 사람들은 제대로 영어 교육을 못 받은 이들이 많지만 자신들이 필요한 한도 내에서 의사 소통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심지어 영어 뿐만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까지도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물론 거래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그렇기 때문에 앞의 햄버거 가게 사례는 FOB(Fresh Off the Boat, 외국에서 갓 건너온 사람에 대해 발음 등이 이상하다며 미국인들이 얕잡아 이르는 말) 주제에 겨우 햄버거 가게 점원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우리나라 영어교육을 탓하며 'Pardon me?'나 'Excuse me?'만 반복하며 허세를 부릴 것이 아니라 'Please speak slowly, so that I can get you right(알아들을 수 있게 천천히 말해 주세요)'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며 택시 기사의 사례도 인천 국제공항에서 외국인만을 주로 상대하는 택시 기사들은 초짜가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 자신들의 영업에 필요한 영어나 일본어 만큼은 가능할 테지만 그들과는 달리 일 년에 외국인 한 번 태울까 말까 하는 택시 기사들한테는 영어구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택시 기사들 같은 경우는 가령 그분들을 한 달 동안 가둬놓고 2MB식 '영어 몰입교육'을 시킨다 해도 외국인 태울 기회가 없어서 안 쓰면 금방 잊어버리는 게 또 정상이다. 그게 바로 언어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답을 두고도 본말을 전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관광을 예로 들어 보자. 위에서 택시 기사의 사례도 언급했지만 영어가 안 통하기 때문에 영어권에서 관광 오기를 꺼려한다는 주장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보다 영어가 더 잘 통하는 필리핀은 영어권 관광객이 영어 때문에 훨씬 많이 찾아 오나? 우리나라보다 영어가 더 안 통하는 일본은 영어 때문에 영어권 관광객이 훨씬 더 적나? 아예 싱가포르나 홍콩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나라 영어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사람들은 영어가 네 가지 공용 언어(중국어, 영어, 말레이어, 타밀어) 중의 하나인 싱가포르는 영어가 공용어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드는 국제 무역허브로서 큰 장점을 갖고 있고 마찬가지로 홍콩도 비슷한 이유로 국제 금융, 무역허브로서 기능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정말 영어 때문인가? 아니 영어가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렇게 따진다면 서울과 비슷한 환경을 갖춘 도쿄는 어떤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도쿄도 영어 때문, 아니 영어가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어는 그저 다른 주된 요소에 옵션(선택사항)으로 따라붙은 하나의 어드밴티지(장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하는 이유이다.

서론이 길어지는데 본론은 일단 한숨 자고 다음 글에서 술 좀 깨면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