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그림은 다음의 댓글을 그림으로 갈무리한 것인데 사실 이곳 뿐만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온라인 게시판 곳곳에 '노예'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더니 위의 댓글들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유행의 정확한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아마 DC, 루리웹, 파코즈, 엽혹진 같은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사용하면서 차츰 퍼졌을 것이다. 그런데 저 '노예'라는 표현을 저런식으로 사용하면 맑시즘의 입장에서 노동자를 바라보던 것과 완전히 일치하게 된다. 즉 부르주아 국가를 노동자의 사회적 노예화를 위해 조직된 공적 폭력이자 계급독재의 도구로 보았던 맑스와 저 부분에서 만큼은 동일한 인식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야만적인 계급적 억압과 착취가 아무 거리낌없이 이뤄지던 19세기 맑스의 초기 자본주의 시대나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21세기 대한민국이나 계급간 이해상충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 댓글에서 보이는 자기 계급에 대한 자각(스스로 노예라고 칭하고 있다)과 그러한 자각이 이뤄지게 된 계기를 떠올려 보면 인위적으로 억눌린 사회적 불만과 분노가 어떤 식으로든지 응축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안철수, 박경철 같은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얘기를 반대로 뒤집어 보면 수위만 적절히 조절되었지 결국 이와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방아쇠가 당겨지면 크게 한 번 터질 날이 있을 테지. 얼마전 영국에서 일어났던 폭동에서 보았듯이 SNS의 폭발적인 전파력은 이를 배가시킬 것이고...
대기업의 승자독식과 고환율정책, 대기업의 부당한 하도급 관행과 서민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던 중소기업의 자생력 상실, 자영업자들의 몰락과 대기업의 자영업 영역 진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법의 이중잣대, 조세정의의 실종, 전과 14범 대통령과 그에 못지 않게 위장전입과 군미필은 필수라는 대통령의 졸개들,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대한 재벌 3세들의 장난질과 개미 목에 빨대꽂기, 사행성 도박과 한탕주의의 만연, 개신교 목사들의 배금주의 숭배와 포교, 걸핏하면 20대들이 차안에 모여 연탄불을 피우거나 목을 매다는데도 나만 돈 많이 벌면 그만이라는 이놈의 세상에서 적당히 맞춰주며 산다는 게 참 곤욕스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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