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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12. 17:19

다음은 2006.8.14일자 연합뉴스에 실린 기사이다.

K대학을 졸업하고 토익 905점을 받은 K씨. 그는 대학에서 영어듣기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비교적 높은 토익점수 덕분에 회사에서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영어에 자신이 있던 그였지만 햄버거 가게에서부터 벽에 부딪혔다. 종업원이 영어로 "갖고 갈래요, 아니면 여기서 드실래요?"(Here or to go?)라고 묻는 말을 단번에 못 알아 듣고 다섯 번이나 "다시 말해 주실래요?"(Pardon me?)라는 말을 반복했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 그 말을 하는 종업원은 "히어로고"(Herogo)로 웅얼거리며 빠르게 발음했기 때문에 햄버거가게에 생전 처음 들어간 그가 그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은 당연했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식은땀을 흘렸다. 중고등학교에서 6년간 영어를 공부했고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햄버거 하나 사먹게 하지 못하는 한국의 영어교육에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분이라면 이 기사를 보고 선뜻 고개를 끄덕거릴지도 모르겠다. 또 영어 듣기와 관련하여 인구에 회자되던 유명한 일화로는 "Freeze!"(꼼짝 마)와 "Please!"를 구분하여 알아듣지 못하고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유학생의 얘기도 있지만 이 기사에서처럼 이런 개인적 경험들과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밑그림을 연관지으려 하다가는 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더욱이 요즘 개나 소나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국가경쟁력'에는 듣기, 말하기 보다는 읽기, 쓰기가 훨씬 더 중요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왜일까?

사업(Business)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미국의 햄버거가게에서 햄버거 주문할 일이 더 많을까, 아니면 한국의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Ebay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아 주문할 일이 더 많을까? 물건을 수출한다고 치자. 물건을 팔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목록(catalogue), 설명서(manual), 계약서(contract document), 신용장(Letter of credit)이나 각종 라이센스(license) 등 온갖 서류들이 아니던가? 물론 바이어를 직접 만나 상담하고 접대할 일도 있겠지만 보통의 상황이라면 결국 서류들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라면 말은 좀 어눌해도 문서로 된 준비(paperwork)들이 확실한 쪽에 더 신뢰가 갈 것 같다. 말도 유창하고 문서작업도 잘 해낸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말이다. 요즘 이메일을 통한 각종 서류나 서신, 파일들의 교환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읽기, 쓰기의 중요성은 여전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햄버거가게에서 주문하는 것 따윈 미국의 거지(homeless)들도 유창하게 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동대문이나 이태원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또 필요한 만큼의 수준까지는 영어, 일어, 러시아어, 중국어도 문제없이 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중에서 어떤 분야에 무엇이 얼마나 실제로 필요한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노릇이다. 진짜 실용주의라면 말이다.